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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다시 읽는 세계최초 추리소설

 

생일인 1월19일이면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웨스트민스터홀 교회에 있는 그의 무덤에 검은 옷을 입고 은장식 지팡이를 든 신비의 인물이 수십 년 동안 어김없이 나타나 반쯤 마신 코냑병과 세 송이의 붉은 장미를 헌정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 더욱 널리 알려진 작가 에드거 앨런 포. 전직 광고인인 90대 노옹이 그 옛날 교회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2007년 여름에 고백하는 바람에 신비로움이 사라져 버렸지만 포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올해도 이 이벤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올해는 그의 사망 1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포는 보들레르를 낳고,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자들을 낳고, 상징주의자들은 발레리를 낳았다.”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불리던 남미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포에게 바친 헌사다. 보르헤스가 중남미판 환상문학 장르를 만들어낸 게 포의 단편소설을 탐독한 덕분이라고 했던 건 췌언이나 다름없다.

포의 소설을 번역해 모국인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욱 주목받도록 무한 애정을 쏟아부었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극존의 찬탄을 보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이미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 포의 천재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사실 보들레르, 스테판 말라르메 등에 의해서였다. <목신의 오후>의 시인 말라르메는 “검은 재해의 벌판에 떨어진 조용한 운석(隕石)”이라고 포의 불우했던 삶을 애도했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퍼즐 미스터리를 만들었다면 애거사 크리스티는 퍼즐 미스터리 장르를 완성했다”는 평자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포가 없는 스티븐 킹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 드 모파상, 안톤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히는 포는 추리문학의 아버지이면서 공포문학의 어머니로도 불린다. 일본에서는 포를 존경하다 못해 그의 이름을 따서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본명 히라이 다로)로 지은 작가가 있을 정도다.

포의 단편소설을 모은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은 그의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담아내고 있다. 847쪽 분량을 한 권으로 집대성했지만 <에드거 앨런 포 소설전집>이라 해도 괜찮을 듯하다. 포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제외한 거의 모든 단편소설이 담겼으니 말이다.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로 꼭 읽어야 할 추리작품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모르그가의 살인>을 비롯해 <검은 고양이> <도둑맞은 편지> <황금 곤충>처럼 널리 읽힌 작품은 물론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것들도 모두 모았다. 총 58편의 단편을 작품 성향에 따라 환상, 풍자, 추리, 공포 편으로 분류해 놓은 것은 작은 편의제공으로 보인다.

짧은 소설마다 소재의 창발성에 놀라고, 때론 광기어린 감정 묘사에 혀를 내두르고, 때로는 기발함에 멈칫하게 된다. 몽상적인 소재들이 많아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난, 음주, 광기, 마약, 신경쇠약, 술집에서의 사망 등 더없이 굴곡진 그의 삶만큼이나 작품들이 이채롭다. 포가 만들어낸 ‘뒤팽’이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아르센 뤼팽 전집>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촌평도 내려져 있다. 추리소설가로 각인돼 있지만 영미 시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맨틱 시인이자 미국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질 만큼 시, 평론, 산문 등 다양한 장르의 빼어난 문학 유산을 남긴 포는 상상력의 천재다. 심리학, 형이상학, 과학, 수학, 천문학을 비롯해 경계를 넘나들지 않은 분야가 없는 그의 해박한 지식은 실로 경이롭다. 다독가인 논픽션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문학가의 상상력이 살아있는 현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알게 되었기에 시간 낭비라는 게 이유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단순히 시간낭비라면 모르겠으되 포의 상상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평가를 고수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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