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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20대는 20㎞, 60대는 60㎞?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나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것”이라고 했던 소요학파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말을 절감할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쏜살같은 시간에 관해 한마디씩 남겼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에센 바흐), “시간을 최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하는 데 일인자다.”(장 드 라 브뤼에르)

시간을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썼다고 알려진 러시아 곤충분류학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라면 시간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단 1분도 빠뜨리지 않고 시간통계를 기록한 노트를 남겼다니 징그러울 정도다. 그에게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나쁜 시간, 빈 시간, 필요 없는 시간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류비셰프의 지론이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그다.

흔히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로 달리고, 40대에는 40㎞로 흐르며, 60대가 되면 60㎞로 달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어떤 시간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그 사람의 삶의 길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열 살짜리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고, 쉰살의 남자는 50분의 1로 느낀다고 한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코리브르)에서 이 의문의 수수께끼를 풀어준다.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는 멋진 표현으로 책을 여는 드라이스마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망원경 효과’다. 망원경으로 물체를 볼 때 실제 물체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과거를 기억할 때 일어났던 사건의 시기보다 더 나중의 일로 여겨지는 현상이다. 현재와 가까운 일처럼 인식하는 효과로 인해 ‘시간 축약’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회상 효과’다. 노인들의 기억을 테스트할 때 정상적인 망각곡선에서 20대 전후 부분이 돌출되는 효과다. ‘내가 처음 ○○했을 때’처럼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억의 표지’가 많은 부분이 기억에 오래 남으며 중년 이후에는 이런 표지들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려지는 ‘생리시계’다. 미국 신경학자 피터 맹건은 나이에 따라 시간에 대한 감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9~24세, 45~50세, 60~70세 연령대별로 3분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게 했다.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은 3분을 3초 이내에서 정확히 알아맞혔지만 중년층은 3분16초, 60세 이상은 3분40초를 3분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자리한 인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시간을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해 설명한다.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은 계곡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지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강둑에 드러누워 버리지만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지은이는 프랑스 철학자 장 마리 귀요의 말을 빌려 제언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로 시간을 채워라. 신나게 여행을 다녀오거나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 한층 젊게 살아라.” 너무 쉽고 평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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