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새 한지에다 불과 몇 달 전 인쇄한 것처럼 보이는 저 두루마리 책이 1천 년 전의 것이라니. 서울대학교 인근에 있는 호림박물관에서 100권에 가까운 초조대장경 인출본(印出本·인쇄본)을 본 첫 느낌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게다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한데 모은 불교 경전 총서이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교지식의 총람이라는 대장경의 1천 년 전 인출본이라는 점을 떠올리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격 때문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대부분 변색이나 훼손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전이었다. 훼손된 인출본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탓이다.
종이와 먹
1천 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초조대장경 인출본이 지금까지도 마치 새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 비밀은 뭘까, 그것부터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초조대장경 인출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호림박물관의 박준영 큐레이터가 그 수수께끼의 일부를 풀어주었다. 결정적인 열쇠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고려 종이에 있었다.
고려 종이는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주재료로 삼아 100번 이상 두드려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제지기법인 ‘흘림뜨기’로 종이를 떠서 더 질기며,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다듬어서 윤기가 나고 매끄러운 종이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려 종이는 섬유 사이의 공간이 밀착돼 마치 ‘코팅’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고려 종이가 내구성이 뛰어나 1천년 세월이 지나도 색깔이 변하지 않고 만들 당시의 광택까지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런 재질과 제작 방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 종이는 중성을 띠고 있어서 공기와 빛에 노출되어도 오래 간다고 한다.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는 옛말처럼 전통 한지의 우수성은 잘 알려져 왔다. 특히 고려의 종이는 자존심이 강한 중국에서도 최고의 종이로 평가 받았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는 “고려의 닥종이는 빛깔이 희고 사랑스러워 백추지(百錘紙)라고 부른다. 고려 종이는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능라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소중히 여겨진다. 이는 중국에도 없는 귀한 물건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중국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자 송나라 시대 최고의 시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도 고려 종이와 고려청자를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초조대장경 대보적경 권59, 국보 제246호>
최근 영구임대 형식으로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儀軌)는 수백 년이 지났어도 종이 상태나 화질 등 보존상태가 뛰어나 눈길을 끌었다.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왕이 보는 ‘어람용(御覽用)’에 쓰인 종이는 ‘초주지(草注紙)’라는 고급 한지다. 고려 종이는 조선의 왕이 쓰던 이 초주지보다 더 뛰어난 종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초조대장경 인출본 종이의 전체적인 비밀은 초조대장경 복원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팀이 밝혀냈다. 2010년 8~11월 남 교수와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 스님)가 공동으로 수행한 ‘초조대장경 종이 및 장정 분석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이 연구팀은 현존하는 초조대장경 인출본의 종이,축, 배접, 장정, 풀, 표지 등의 비밀을 캐냈다 현존 초조대장경의 크기, 두께, 색상, 종이를 뜨는 발의 형태, 종이의 도침(두드림)정도, 종이표면 등을 밀도조사와 섬유종류분석을 통해 알아냈다. ‘초조대장경 종이 및 장정분석 결과보고서’는 2011년 11월 이후 고려대장경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릴 예정이다.
남 교수는 “닥나무가 주원료인 한지는 특별한 외부영향이나 손상의 원인이 없는 한 2천 년은 너끈하게 유지되는 우수한 종이여서 지금으로서는 1천 년이란 시간의 비밀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종이 못지않게 인쇄에 사용한 먹에도 빼놓을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를 일컫는 ‘관솔’을 태워서 나오는 그을음을 모으고, 이것을 아교와 섞어 만든 ‘송연묵(松煙墨)’이 비밀의 핵심이다. 이렇게 만든 먹으로 인쇄하거나 쓴 글씨는 검은 빛이 바래지 않고 생생하게 1천 년을 넘어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배접
이어 붙인 두루마리 책이 1천 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비결은 탁월한 접착제에 덕분이다. 장(page)과 장을 이어 붙이는 ‘배접’에는 천연곡물인 밀을 3~10년씩 삭힌 것에다 약재를 섞어 만든 풀을 사용했다. 지금까지도 종이 사이가 들뜨지 않고 매끄러운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비법이 여기에 있다. 풀로 이어 붙인 연결 부분이 불과 2~3㎜ 밖에 안 되는데도 튼실하게 고착돼 있는 게 무척이나 신기해 보인다.
초조대장경의 종이는 인출(인쇄) 시기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국내의 전본들은 대체로 두께가 두껍고 흰색을 띠고 있는 반면, 일본 난젠지(南禪寺) 등에 보존돼 있는 종이는 얇고 엷은 황색을 띠고 있으며 도침도 국내 전본들보다 잘된 상태라고 남 교수는 말한다. 한 종류의 종이를 이용한 인출본과 여러 종류의 지질을 같이 사용한 인출본이 혼재되어 있다.
<대방광불 화엄경>
소장 현황
호림박물관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보급, 보물급 초조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다고 박준영 큐레이터는 귀띔한다. 국보급 판본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2(국보 266호),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毗達磨識身足論) 권12(국보 267호), 아비담비바사론(阿毗曇毗婆沙論) 권11(국보 268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佛說最上根本大樂金剛不空三昧大敎王經) 권6(국보 269호)이 눈에 띈다. 호림박물관은 초조대장경 판각을 시작한 천 년을 기려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 특별전을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5월18일~8월31일)과 관악구 신림분관(5월30일~10월31일)에서 열어 일반인들이 국보급 초조대장경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초조대장경은 다른 기관 전시에서 한두 점 선보인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대규모로 전시하기는 처음이다. 국보급과 보물급 등은 제본의 양식과 보존 상태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림박물관과 더불어 국내에서 초조대장경 소장본이 가장 많은 성암고서박물관은 유일한 초조본 판화(版畵)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1권이 그것이다. 어제비장전 판화는 초조대장경에만 있는 희귀본이다. 어제비장전은 불교 교리의 깊은 뜻을 읊은 약 1천수의 게송(偈頌·五言詩)으로 된 일종의 불교시집이다. 판화는 모두 상운(祥雲)이 감싸고 있는 수려한 산수를 배경으로 불도(佛道)의 수행과 비법을 전수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이나 바위 등의 지형, 구름과 강물, 각종 나무들의 다양한 모습, 건물, 인물 등의 요소들이 치밀한 각선으로 장엄하게 구사된 고려 초기의 뛰어난 불교 판화다. 이 판화는 초조대장경 개판 당시인 11세기 후기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초기의 회화는 희귀한 실정이어서 고려 초기의 산수화와 불교 경판화의 변상도 양상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보통 불교회화를 변상(變相)이라 하고, 이 변상을 찍을 수 있게 판각한 것을 불교판화라 한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인근에 자리한 한국 유일의 고서박물관인 성암고서박물관에는 고려시대에 각필(角筆)로 표시한 경전이 있어 값어치를 더욱 인정받는다. 각필이란 뾰족하고 단단한 매체로 경전의 본문 가운데 해석하는 순서나 뜻, 토 등을 부호로 눌러 표시한 것을 말한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고 빛을 경사진 각도로 비추거나 기기를 사용하여 판독한다. 성암고서박물관은 현재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다.
국내의 초조대장경 인출본은 호림박물관과 성암고서박물관 각각 100권에 가까운 수량을 소장하고 있으며, 두 곳의 소장본이 전체의 83%를 차지한다. 이밖에 계명대도서관 5권, 국립중앙박물관 4권, 호암미술관 4권, 가천박물관 4권, 구인사 3권, 청주고인쇄박물관 3권, 연세대 도서관 3권, 서울역사박물관 2권, 영남대 2권, 팬아시아종이박물관 2권, 경기도박물관 1권, 명지대 박물관 1권, 삼성출판박물관 1권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가운데는 최근 세상을 떠난, 인기 영어참고서 저자 송성문씨가 기증한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국보 271호)이 있다. 1992년 국보 지정 당시 전문가들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라며 흥분했던 경전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 인출본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남 교수는 추정한다.
초조대장경 인출본은 이처럼 국내에 약 300권이 현존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과는 달리 일본에는 난젠지(南禪寺)와 쓰시마(對馬島) 역사민속자료관 등에 무려 2400여 권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본을 모두 합하면 2,700여 권인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초조대장경 관람객>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된 국내 소장 초조대장경 중 국내에만 소장하고 있는 초조대장경은 78종 154권으로 확인되었다. 난젠지 소장본과 동일본은 50종 66권, 쓰시마 소장본과 동일본은 1종 8권이다. 국내에 보존된 초조대장경 가운데 일본 현존본들과 같은 경전, 같은 권차를 지닌 것이 약 70여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경전은 3본이다. 이는 초조본을 완성한 뒤 부분적으로든 일괄적으로든 3번 이상 찍었음을 의미한다. 또 같은 권차의 책이라도 일본본과 국내본을 비교하면 같은 면에서 서로 다른 판각 부분이 있는 20여종 발견된다고 전수조사에 참여했던 남 교수가 전했다. 이는 초조대장경을 완성한 뒤에도 부분적인 수정을 계속했거나 보관상의 문제로 다시 판각해 보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내용이 달라진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인출 형태
초조대장경 인출 형태를 보면 경판을 찍은 종이를 여러 장 길게 붙여 두루마리로 만든 권자본(卷子本) 형태로 제작되었다. 도서장정(圖書裝幀)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책이다. 현재 책의 수량단위 중 ‘권’(卷)이라는 것은 권자본에서 남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초의 책 장정이 권자본이다. 인출본의 표지는 짙은 쪽빛(감색)으로 염색한 한지, 혹은 일반 한지를 사용하여 제작했다. 감지(紺紙·검은빛이 도는 짙은 남색으로 물들인 종이)를 사용한 경우에는 금으로, 한지를 사용한 경우에는 먹으로 경전의 이름을 적었다.
초조대장경의 글씨체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보다 더 명필이라고 박준영 큐레이터는 말한다. 이같은 초조대장경에서 ‘살아있는 천 년의 지혜’가 그윽하게 느껴진다. “대장경을 조성하는 것은 1천 년의 지혜를 모아 1천 년의 미래로 보내는 일”이라고 했던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 일본에 남아 있는 초조대장경 인쇄본
현존 초조대장경 인출(인쇄)본이 한국보다 일본에 더 많이, 그것도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국민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다. 일본에는 교토의 난젠지(南禪寺)와 쓰시마(對馬島) 역사민속자료관 등에 무려 2400여 권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보다 8배 이상 많은 셈이다.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인 가치도 높다.
특히 난젠지 소장본은 전체 초조대장경의 3분의 1이 넘는 1800여 권에 이른다. 그것도 알려진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같은 시기에 동시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남권희 교수는 말한다. 한국의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만이 유일하게 난젠지본보다 이른 시기에 인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송나라 때의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971~983)을 바탕으로 간행한 고려 초조본의 체제와 내용이 고려의 당시 상황은 물론 중국 송나라 판의 체계 연구나 복원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난젠지본은 내용면에서도 매우 값지다. 송나라판이 전 세계에서 10여 권밖에 보존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난젠지 소장본 중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권7은 국내본과 더불어 각필(角筆)이 있는 중요한 경전이어서 한문의 경전 풀이, 한국어 연구 등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어제소요영>(御製逍遙詠) <어제불부>(御製佛賦)는 대형 판화를 수록하고 있는 희귀본이다. 전체 20권 가운데 1권이 결본이지만 약 100판의 웅장하면서도 정밀한 판화를 보여준다. 중국의 개보판 판화는 1권이 겨우 남아있는 실정이다.
난젠지 소장 초조본의 종이는 한두 종류가 함께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나, 여러 종류의 지질을 같이 사용한 경전도 더러 있다.
난젠지본 초조대장경의 존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전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일본학자들에게도 제한적인 공개가 됐을 뿐 한국학자들이 조사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1960년대 이후 김두종 박사가 조사한 몇 권과 천혜봉 성균관대 교수가 조사한 몇 권이 제한적으로 처음 알려졌다.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 등에도 600권 정도의 소장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소장본은 원래 쓰시마 인근 이끼섬(壹岐島)의 안코쿠지(安國寺)와 쓰시마의 조쇼지(長松寺)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안코쿠지는 14세기 전반까지 팔만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는 한국의 해인사(海印寺)와 같은 이름이었으나 후에 일본 전국과 2개 섬에 사찰과 탑을 세워 전란으로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국가의 평안을 빌기 위해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안코쿠지에 있었던 <대반야경>(大般若經) 중 초조대장경본이 219권이었으며, 그 중 6권에 고려국 김해부호장(府戶長) 겸 예원사(禮院使) 허진수( 許珍壽)가 정종 12년(1046년) 국가의 안녕과 어머니 수복(壽福),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경전을 찍어 봉안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초조대장경의 확실한 인출기록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이때 허진수는 경상남도 김해 인근 서백사(西伯寺)라는 사찰 불복(佛腹) 2개에 초조대장경을 공양했다고 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불복 두 곳 중 한 곳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몽땅 약탈돼 일본으로 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쇼지 구장본(舊藏本)은 대장경의 내용 중 맨 앞에 위치하면서 전체를 대표하고, 분량이 가장 많아 ‘600반야’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난젠지 소장본 1800여권 중에는 <대반야경>이 1권도 포함되지 않아 일본으로 동시에 전래됐던 것이 여러 곳으로 나누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난젠지 소장본 중 뒷면에 김해부에서 작성된 문서의 일부가 기록된 것을 보면 같은 단위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안코쿠지본도 원래 일본 나가사키 부근에 있던 것이 옮겨진 것이다. 역사민속자료관이 관리하고 있는 대장경은 조쇼지와 안코쿠지가 각각 소장했던 것이다.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은 이 대장경이 고려 수도였던 개성의 동쪽 장단도호부에 있던 천화사(天和寺)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사와 신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천화사는 12세기 초 창건돼 15세기 무렵 없어진 사찰이다. 역사민속자료관 측은 대장경 오서(奧書 사본 등의 말미에 베낀 사람의 이름, 제작일자, 제작경위 등을 적은 글)에 천화사에서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개성의 사찰로 추정한다.
안코쿠지본은1980년대에 도난당해 33권밖에 남아 있지 않고 도난당한 일부가 한국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2005년 쓰시마에 있던 대장경 일부가 국내로 반입돼 학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국내로 반입된 유물이 문화재 등록 과정에서 서지학자들에게 발견됐고, 일부는 문화재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 유물은 일본 문화청이 자국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어서 반환을 요구해 놓은 상태이다.
(남권희 교수팀은 일본에 있는 인출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겨울?여름 방학을 이용한 조사 때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 냉난방장치도 없이 겨울에는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살 속으로 파고드는 오한을 견뎌내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여름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덧버선, 마스크, 방진복 등을 착용해 눈만 내놓은 상태에서 일본의 습한 더위를 참고 한두 시간 마다 바깥공기를 마시는 작업을 5년 동안 계속했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영문잡지 KOREANA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 Special Feature--Ancient Wisdom Preserved in Scrolls of Goryeo Mulberry Paper Kim Hak-soon
I just could not believe that this scroll, which looked like it had been printed only recently on fresh Korean paper (hanji), was actually one thousand years old. I was filled with wonderment the moment I set eyes on the nearly 100 volumes of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on display at the Horim Museum, near Seoul National University. My heart pounded with the realization that these were thousand-year-old prints from the Tripitaka Koreana, a comprehensive compendium of all the Buddhist scriptures and teachings of Sakyamuni Buddha as well as all concerned texts. Most of the prints are perfectly maintained, with no discoloration or distortion. There was an occasional flawed print but it was due to the fact that the preservation efforts required enormous caution.
Paper and Ink
What piqued my curiosity was the mystery of how these prints were able to survive one thousand years in such pristine condition. Curator Park Jun-yeong of the Horim Museum, which houses the largest collection of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in Korea, offered an answer to this riddle: the key is the paper of Goryeo, which was undoubtedly the world’s finest at the time.
Goryeo paper was made from fibers of the paper mulberry tree, which were pounded over hundred times. Then the fibers would be immersed in a vat of liquid, and then a porous frame was repeatedly dipped into and out of this liquid until layer upon layer of fibers accumulated on the surface, which contributed to the paper’s durability. The sheets were then laid out on a fulling block and pounded thoroughly to produce a smooth, lustrous paper. The fibers adhered so tightly to each other that it seemed like the paper was coated with a special finish. The secret behind the paper’s incredible durability and its original color and sheen remaining intact lies in its special materials and production methods. In addition, Goryeo paper is pH neutral, so it can last for centuries, even when exposed to air and light.
The superiority of traditional Korean paper has long been well known, as indicated by the old saying: “Paper lasts a thousand years, silk lasts five hundred years.” Goryeo paper in particular was widely recognized for being of the finest quality, even by the prideful Chinese. There is a Chinese reference that reads: “Goryeo mulberry paper is fair and lovely in color and is called ‘white beaten paper.’ Goryeo paper contains threads from silkworm cocoons and thus is glossy and durable like silk, and when it is used for calligraphy it takes the ink well and so is highly prized.” According to legend, Su Shi (1037-1101), one of the eight masters of Song and Tang and the foremost poet of the Song Dynasty, expressed his desire to possess Goryeo paper and Goryeo celadon.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or uigwe, which had been stored at the Outer Gyujanggak on Ganghwa Island, are remarkably well-preserved in terms of the outstanding condition of the paper and clarity of the content. The copy that was prepared for the king was produced on the highest quality paper available, but experts are confident in stating that Goryeo paper was superior to that of Joseon.
The unique qualities of the paper used for making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have been brought to light by the research team of Professor Nam Gwon-hui, of the Department of Library Information and Science at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Nam and the Research Institute of the Tripitaka Koreana (directed by Venerable Jongnim) carried out a project, dubbed “Analysis of the Paper and Binding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in the second half of 2010. They uncovered the secrets of the paper, rollers, backing paper, binding, adhesive, and covers of every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 in existence. The findings were based on detailed analyses of the size, thickness, and color of the paper, as well as the shape of frames used to make the paper, extent to which the paper was pounded, and density of the paper. The research results are scheduled to be posted on the institute’s website in November 2011.
“Korean paper made from the paper mulberry tree is perfectly capable of lasting for 2,000 years, barring external factors or causes of damage, so there is no real point in talking about the secret of how it lasted for 1,000 years,” says Professor Nam.
No less important than the paper’s unique properties is the specially prepared ink. The ink was made by combining a kind of glue with the soot obtained by burning pine branches and knots with high resin content. Ink prepared in this way can maintain a vivid blackness, when used for printing or calligraphy, for over one thousand years.
Naturally Fermented Adhesive
The ability of these scrolls to retain their original form for 1,000 years is related to the exceptional adhesive that was used in their preparation. The backing paper, which connects one page of the scroll to the next, was affixed with a glue made from natural wheat, which had been aged for up to ten years and then combined with medicinal herbs. Thanks to this meticulous process, the pages remain adhered to the backing and the scrolls have maintained their original shape for all these centuries. There is only two to three millimeters of overlap between the pages, so it is truly amazing that they have remained so firmly in place.
The paper used for making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shows significant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period when the printing was undertaken. Professor Nam says that the existing prints in Korea are mostly on thick sheets of white paper, while those housed at Japan’s Nanzen Temple and other places are on thin and yellowish paper.
Print Collections
Curator Park Jun-young notes that Horim Museum keeps the largest collection of national treasure and treasure-level original Tripitaka Koreana volumes in Korea. Among these, the second volume of the Avatamsaka Sutra (Buddhavatamsaka Mahavaipulya Sutra, National Treasure No. 266), 12th volume the Discourse on Consciousness Body (Abhidharma Vijnaya-kaya Pada Sastra, National Treasure No. 267), and 11th volume of the Commentary on Higher Teaching (Abhidharma Vibhasa Sastra, National Treasure No. 268) are especially impressive.
To commemorate the thousand-year anniversary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Horim Museum staged a special exhibition entitled “1011-2011, Thousand-Year Wait: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at its Sinsa branch, in Gangnam-gu (May 18-August 31), and its Sillim branch, in Gwanak-gu (May 30-October 31), in Seoul, so that the general public could view the first edition prints. At this large-scale exhibition, the prints were grouped into various categories, such as national treasures and treasure-level relics, depending on the style of binding and condition of the prints.
Meanwhile, the Sung Am Ancient Book Museum is well-known for its original Tripitaka Koreana woodblock prints of the Northern Song imperial commentary titled Yuzhi micangquan, the only such volume still in existence. The text itself is a kind of Buddhist poetry anthology, containing some 1,000 poems that praise the Buddha and delve into the profound meaning of his teachings. The prints depict figures teaching the principles of Buddhism against a background of graceful landscapes wreathed by auspicious clouds. These exceptional works from the early Goryeo period depict elaborately formed topographical features, such as mountains and rocks, flowing clouds and rivers, trees in all their varied forms, buildings, and people.
The prints are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late 11th century, when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were carved. With extant paintings from the early Goryeo period being so rare, these prints are precious works of art that offer a glimpse of early Goryeo landscape paintings and sutra illustrations.
The Sung Am Ancient Book Museum also houses sutras from the Goryeo period that have been marked with a stylus, which enhances the value of its collection. A stylus was made from a hard material, like ivory or wood, which would be carved to a point for marking the paper to indicate the order in which a sutra should be read, or to provide an explanation or commentary of the sutra. The marking can be difficult to see clearly with the naked eye, but it can be discerned when viewed from an angle or with special equipment.
The Horim Museum and Sung Am Ancient Book Museum each house nearly 100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accounting for 83 percent of all such prints in Korea. Additional volumes are at Keimyung University (5),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4), Ho-Am Art Museum (4), Gacheon Museum (4), Guin Temple (3), Cheongju Early Printing Museum (3), Yonsei University (3), Seoul Museum of History (2), Yeungnam University (2), Pan-Asia Paper Museum (2), Gyeonggi Provincial Museum (1), Myongji University Museum (1), and Samseong Museum of Publishing (1).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ts copy of Acclamation of the Scriptural Teaching (Prakaranaryavaca Sastra, National Treasure No. 271) was donated by the late Song Seong-mun, the author of popular English study books. When this volume was designated a national treasure in 1992, experts were abuzz with excitement, calling it “the oldest Tripitaka Koreana print to retain its original form.” Professor Nam suspects that there are other people who might own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but prefer to keep it a secret.
Today, some 300 volumes from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are known to exist in Korea, but the number in Japan is about 2,400. Most of these volumes are housed at Nanzen Temple and Tsushima Folk History Museum. As such, the total number of existing volumes in Korea and abroad amounts to some 2,700.
According to survey results thus far, there are 154 volumes (78 titles) from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that exist only in Korea. There are 66 volumes (50 titles) at Nanzen Temple, and eight volumes of a single title at the Tsushima Folk History Museum. Among the prints in Korea, some 70 are from the same sutras and the same volumes as those in Japan. This includes one sutra with three copies, involving at least three printings, either in whole or in part, after the completion of the original set of woodblocks.
Professor Nam notes that even in prints from the same volumes, some 20 differences have been found after comparing the Japanese and Korean versions. Even after comple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the caretakers of the canon continued to make partial revisions to the texts or needed to replace woodblocks due to problems with their storage.
Scroll Volumes
The Tripitaka Koreana prints were bound in scroll form by joining together a number of woodblock-printed sheets. This is the oldest known method of producing books, and indeed the first books in Korea were in scroll form. The covers of the prints were made of paper dyed in dark blue, though some were left uncolored. Gold ink was used to print the name of the sutra on the dark blue covers, while regular black ink was used for plain covers.
Curator Park Jun-young says that the calligraphic style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is of a higher quality than the second edition.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seems to exude a palpable “living wisdom of a thousand years.” Suddenly, I recall the words of National Preceptor Uicheon of Goryeo: “The crea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is the gathering of the wisdom of one thousand years and sending it one thousand years into the future.”
■ Majority of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Preserved in Japan Kim Hak-soon
As a citizen of Korea, I could not be more disappointed with the fact that a large majority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prints are held in Japan, rather than in Korea. It has been found that 2,400 or so Tripitaka prints are housed in Japan, mainly at Nanzen Temple in Kyoto and the Tsushima Folk History Museum. Not only is this amount eight times greater than the number in Korea, many are of a higher quality as well.
Nanzen Temple is home to some 1,800 volumes, or more than one-half of all extant prints of the Tripitaka Koreana. Professor Nam Gwon-hui says that these volumes are presumed to have been printed from the earliest of the woodblocks, all around the same time. Only the Acclamation of the Scriptural Teaching (Prakaranaryavaca Sastra), at the Seoul Museum of History in Korea, has been confirmed to be older. The prints at Nanzenji are highly valued for their content as well.
Since the structure and content of the original Goryeo Tripitaka Koreana are based on China’s Kaibao edition (971-983) published during the Northern Song Dynasty, the prints are a precious resource for research into the situation of Goryeo, and for efforts to reconstruct the Chinese version, of which only a handful of volumes still exist. The seventh volume of Discourse on the Stages of Concentration Practice (Yogacarabhumi Sastra), along with a version extant in Korea, is an especially important sutra that includes stylus notations, which makes it a key reference for the interpretation of classical Chinese sutras and research on historical Korean.
In addition, Yuzhi micangquan, Yuzhi xiaoyao yong, and Yuzhi fofu are rare editions that contain large woodcut print works illustrating imperial poetic commentaries of Northern Song. Although one of the 20 original volumes has been lost, they feature some 100 elaborate woodcut prints with intricate details. Only one volume with woodcut prints remains from the Chinese version.
The printed volumes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at Nanzen Temple are mostly made with one or two types of paper, but some have papers of varying quality. Their existence had been known prior to the 1930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Korea. However, even for Japanese scholars, they were made available only on a limited basis, while Korean scholars had no opportunity to view the volumes. When Dr. Kim Du-jong and Professor Cheon Hye-bong of Sungkyunkwan University were able to study a few volumes in the 1960s, it marked the first-ever experience of the kind for Korean researchers.
Some 600 volumes are also housed at the Tsushima Folk History Museum and other locations in Japan. These prints were originally stored at Ankoku Temple on the island of Iki, near Tsushima, and Josho Temple in Tsushima. Ankoku Temple once had the same name as Haein Temple in Korea, where the second edi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is maintained, but changed its name in the first half of the 14th century, when Japan built temples and pagodas across the country to console the spirits of those who had died in war and to pray for the nation’s welfare. (The temple’s current name means “Temple of the Peaceful Nation.”)
Among the Maha Prajnaparamita Sutra at Ankoku Temple, 219 volumes are from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and of these, six contain notes indicating that they were printed and enshrined in pagodas in 1046 by Heo Jin-su, an official of Goryeo who served in Gimhae, as a plea for the peace of Korea, longevity of his mother, and repose of his departed father. This is the only definitive record of the printing of copies of the original Tripitaka Koreana. It is said that Heo offered the printed volumes to the Buddha at Seobaek Temple near Gimhae. Korean scholars believe that some of these volumes might have been looted by Japanese invaders and taken back to Japan.
The prints at Josho Temple are from the very inception of the Tripitaka and thus represent the whole. Being the largest in content, they are called the “600 Prajnaparamita,” which are regarded as the most important sutras.
Of the 1,800 or so volumes at Nanzen Temple, there is no copy of the Maha Prajnaparamita Sutra, so it is thought that these volumes may have been brought to Japan at the same time and later distributed to various locations. Since some of the Nanzenji volumes have documents prepared in Gimhae on their backside, it is also possible that they were all from the same lot. The volumes at Ankokuji were originally maintained near Nagasaki and thereafter taken to the temple. The Tripitaka volumes at the Tsushima Folk History Museum were originally held at Josho and Ankoku temples.
It is believed these volumes were created at Cheonhwa Temple, located to the east of the Goryeo capital of Gaeseong, based on bibliographical information of the Tripitaka volumes, which indicates the temple where they were printed. According to records of “The History of Goryeo” (Goryeosa) and the “New Augmented Survey of the Geography of Korea” (Sinjeung dongguk yeoji seungnam), Cheonhwa Temple was founded in the early 12th century and existed until sometime in the 15th century.
The Ankoku Temple prints were stolen in the 1980s, leaving a remainder of only 33 volumes. It is said that some of the stolen volumes were later discovered in Korea. In 2005, some of the Tripitaka prints that had been held in Tsushima were brought to Korea, which created quite a stir among the domestic academic circles. Relics brought back to Korea through improper means have been discovered by bibliographers during the process of registering the items as cultural properties. And some of these volumes had indeed been designated as cultural properties. However, because these relics had previously been registered as Japanese cultural properties, Japan is currently calling for their return.
(Professor Nam Gwon-hui made note of the immense hardship that he and his team endured while conducting their study of the Tripitaka prints in Japan. The research was carried out during the summer and winter breaks in rooms without windows or any air conditioning or heating facilities. As such, in winter they had to endure biting cold that chilled them to the bone, no matter how many layers of clothing they wore. And in summer, wearing masks and protective clothing that left only their eyes exposed, they suffered greatly from the oppressive humidity, which required them to take frequent breaks. Still, they continued with their research for five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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