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우라를 지닌 정치인으로 꼽힌다.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추어올린 한 종합편성채널의 낯 뜨거운 아부가 외려 희화화했으나,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인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후광을 받았지만, 스스로의 아우라가 이를 극복해 가고 있다는 주장도 마냥 부인하긴 어렵다.
박근혜의 아우라는 진보진영에서도 일정 부분 수긍한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다. “박근혜한테는 묘한 미망인의 아우라가 있어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의 아우라죠. 적어도 공개적으론 미국 언론이 재클린에 대해 비난하지 않습니다. 박근혜도 양친 모두를 비명에 보낸 가련한 딸이죠. 그런 정서적 지지의 기반을 정책이나 윤리로 쉽게 무너뜨릴 순 없을 겁니다.” 올해 중반 진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대담에서 한 발언이다. 김어준은 ‘박근혜의 아우라와 대적할 유일한 대항마’로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을 꼽으면서도 ‘아우라’라는 낱말을 동원했다.
진보 일간지의 한 중견언론인도 아우라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묘사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유럽 순방에서 그가 선보인 의상들은 패션쇼 출품작을 방불케 했다. 이미지 정치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그저 그런 검은 양복에 넥타이 하나로 겨우 멋을 내는 기존 정치인들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신뢰’ ‘원칙’ ‘애국심’이라는 세 개의 기둥이 그를 받치고 있다.” ‘안철수 돌풍’이 불기 전에 쓴 글이다.
진보성향의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도 흡사한 진단을 내렸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가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역시 진보성향인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다른 차원의 아우라를 언급한 적이 있다. “박근혜는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도 없이, 비이성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신화적 아우라에 감싸인 채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신화의 살아 있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우라가 있는 정치인은 인기 관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후광이나 광채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아우라’는 원래 종교의 예배 대상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함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산들바람의 여신으로, 로마 신화에서는 새벽별빛의 여신으로 전해 내려온다. 독일 사회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라고 개념화하면서 아우라는 예술이론으로 진화한다. 아우라가 특정 인물의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신비스러운 빛’으로 통용된 것도 벤야민 덕분이다. 이렇듯 아우라는 신비감이 뒤따라야 한다. 유력한 대권후보 반열에 올라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그런 점에선 박근혜와 공통점을 가졌다. 아우라는 콩팔칠팔 떠벌리는 부박한 정치인들과는 거리가 먼 장르다.
정치인의 아우라는 예술작품과는 달리 복제하기 쉽지 않다. 아우라는 대중에게 착시효과를 유도하기도 한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처럼 아우라 조작에 능한 독재자들이 대표적인 실례다. 탄탄한 콘텐츠는 없이 이미지 정치만 한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누군가는 조작된 아우라는 조명을 끄면 사라진다고 했다. 신비주의적인 면모와 언론의 생리가 맞물려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권력이 사라지고 나면 허상만 남는다는 뜻이다.
지리멸렬한 한나라당은 박근혜의 아우라를 ‘구원의 최종병기’로 여기는 듯하다. 예술과 정치는 차원이 다소 다르지만, 벤야민은 아우라의 파괴를 진보적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아우라가 붕괴된 사회인지도 모른다. 한 지도자의 아우라에만 의존하는 정당은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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