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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日 국민의 냉엄한 심판

1998-07-15
한나라의 포괄적 건강상태를 단숨에 읽어내는 수단으로 증권시장을 능가하는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정치·경제적 민심 감지에는 더욱 그렇다. 한결같이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는 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외환시장을 추가하면 그만일 듯하다.엊그제 끝난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에 대한 일본 국민의 생각도 주가와 엔화에 거의 그대로 투영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자민당의 참패 직후 주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반등세를 나타냈다. 엔화 역시 초기엔 약세를 면치 못하다 회복세로 돌아섰고 하루가 지난 뒤엔 좀 더 강세로 접어들었다.

하루 이틀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국은 단기적으로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의 사임 발표가 국민에게 기대감을 높여준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일본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가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참패만으로는 당장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한때 세계 최고였던 일본의 경제나 정치상황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차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일본 선거결과가 주는 귀감(龜鑑)은 어느 나라에나 적용된다해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처럼 개방사회에서 경제를 망치면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기 힘들다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먼저 실감나게 입증됐다. 나라밖에서 인기가 있고 외교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내 경제정책에서 실패하면 국민이 참을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지만 하시모토총리에게도 들어맞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꼼수를 쓰거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하려는 정치 지도자가 깨어 있는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이번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였던 이른바 「영구감세(永久減稅)」를 둘러싸고 하시모토총리가 보여준 2중적인 태도는 선거에 관심조차 없었던 「잠자는 유권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정도를 넘어 격노(激怒)를 사고 말았다. 영구감세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하시모토와 자민당은 당초 선거 때만 얼렁뚱땅 넘겨 보겠다는 얕은 꾀를 썼던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서야 세 불리를 깨닫고 영구감세추진방침을 전격 발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리어 국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경제개혁에 주저하는 하시모토의 내심을 꿰뚫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그런 민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국민의 정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투표율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만 알고 표를 오산(誤算)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일본 국민의 하시모토 후임에 대한 관심도 누가 참된 개혁노선을 갖고 있느냐에 쏠려 있는 것은 선거결과를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일본보다 더욱 철저한 개혁이 절실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가장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더구나 요즘엔 정치에서도 「복잡계 이론」의 한 예인 「나비효과」가 거론돼야할 만큼 작지만 중요한 징후들을 알아채기는 힘들다. 남미에서 펄럭이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북미대륙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고 보면 정치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