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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침을 열며> 이젠 정부 차례다

2004-05-05
지난 몇달동안 우리는 국회와 정치권을 원없이 타매하고 지탄했다. 구태에 찌들대로 찌든 거대야당들이 이끄는 16대 국회가 '우선멈춤'을 모르고 과속하다 자기 목이 날아가는 광경을 목도했다. 위대한 국민의 분노는 물갈이를 넘어 판갈이로 징치했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라는 국민의 긴급명령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른 여야 대표 회담과 다짐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사상 초유의 '여야 협약'이란 형식도 만들어냈다.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국회보다 월등히 힘센 골리앗 같은 정부를 잠시나마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 정부야말로 온 국민이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1순위임에도 사실상 자율에만 맡겨 두었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상태여서 얼마간의 동정심도 실렸을 법하다.

따지고 보면 정부는 몸집 자체는 물론 집행하는 예산도 국회의 400배에 달하는 공룡급이다. 올해 국회 예산이 3천억원을 조금 넘는 데 비해 정부 예산은 추경을 감안하지 않고도 무려 1백18조원 규모다. 하나같이 국민의 피와 땀방울인 세금이다. 세계가 알아주는 정치과잉에 사로잡힌 우리 국민은 이런 행정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정부를 다그치는 일이 정치의 거대담론보다 매력이 떨어지는 탓도 적지 않다.

국회보다 힘센 골리앗
정부혁신.지방분권을기치로 내건 참여정부는 개혁적이고 탈권위적인 정부 만들기에 들이는 공력이 달라 보이지만, 정부의 속성은 고금과 동서를 가릴 것 없이 감시망이 소홀하면 개혁은커녕 궤도를 이탈하기 십상이다. 너무나 방대한 조직이어서 도처에 지뢰밭까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곳곳에서 공직자의 도덕성 해이와 함께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는 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온다. 국민이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이다. 나라를 지키는 최전선의 군조직마저 크고 작은 비리혐의로 시끌벅적하다. 비리혐의로 전역한 고급장교를 요직 후보로 추천하고도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생뚱맞은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군인정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정부 조직의 실핏줄은 풀어진 기강으로 경화증을 앓고 있지만 심장부는 말이 없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건강보험공단의 노사가 나눠먹기 잔치를 벌여 국민의 정신건강에 압박을 가하고 있어도 감독관청은 꿀먹은 벙어리 같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에서는 한술 더 떠 낙하산 감사가 한패거리가 되다시피 한다는 우울한 소식이 쉼없이 들려오지만 걱정하는 목소리는 모기보다 못하다. 그나마 언론이 호루라기를 불지 않으면 국민은 알지도 못한다. 정치권과 국회에 대한 채찍은 추상같이 드는 시민사회도 정부에 대해선 왠지 주춤하고 무심해 보인다. 공기업의 연간 예산은 1백조원을 넘는다. 정부와 산하기관의 누수는 수백억원대의 차떼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규모일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단체로 확대해 보면 점입가경이다. 봉투와 향응을 받다가 들켜도 끄떡없는 조직이 온존한다.

‘감시의 눈’ 정부로
그나마 정부를 감시해야 할 언론 취재시스템은 폐쇄회로에 막혀 있는 곳이 많다. 우리 공직자들은 이제 언론의 웬만한 문제제기와 비판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두마디로 변명하면 그만인 일이 부지기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가난은 제도 탓이요 나라 탓'이라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데도 공복들에겐 먼나라 얘기 같다.

국민과 시민사회의 부엉이 눈이 정부로 향해야 할 때다. 정부에 대한 사주경계의 눈초리는 아무리 매서워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와 정치권에서도 여전히 시선을 떼기엔 이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다. 정부는 나라 장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선봉에 서있기 때문이다. 촛불을 켜드는 정신은 여기에도 필요하다.

김학순 본사 미디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