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3-23 16:01:01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조지프 E 스티글리츠 외|지식의숲
조지프 E 스티글리츠가 쓴 책에선 대개 봄날 같은 따스함이 배어나온다. 최신작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도 예외는 아니다. 흔히들 경제학을 ‘차가운 학문’이라고 단칼에 베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따뜻하다. 마치 무성한 숲 같은 수염 사이로 묻어나는 그의 미소처럼.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아 센에 버금간다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제목이 시사하듯 ‘공정성’이다.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가 ‘효율성’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단(異端)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슴없이 ‘공정성’에 저울추를 하나 더 올려 놓는다. 이 책에서도 그는 대부분의 경제학 논문이 ‘효율성’이라는 용어를 옹호하기 위해 ‘공정성’이란 낱말을 기피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공정성’을 소리높여 역설하면서 시종일관 약자인 개발도상국 편에 선다. 그게 어째서 공정하냐고? 책을 읽어가다 보면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계적 균형론으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쯤에 서야 공정할 법하다. 그럴 경우 개도국에 한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스티글리츠의 관점이다.
개도국들은 협상 능력과 여건에서 선진국과 견줄 수 없다. 선진국과 개도국은 권투나 레슬링에 비유하면 애초부터 체급이 다르다. 돈과 인력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달리는 개도국은 협상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면 스티글리츠가 개척한 새로운 경제학 영토이기도 하다. 2001년 노벨상을 받은 공로가 바로 ‘비대칭 정보의 시장이론’ 창안이다. 정보가 중요한 까닭은 무역협상이 지난날과는 달리 단순한 ‘흥정’이 아니라 ‘기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선진국들의 허점투성이 주장을 안성맞춤의 사례를 들어 깨부순다. 우선 미국 농촌지역 출신 상원의원의 억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는 몇 안 되는 미국 면화 농가에 매년 40억달러를 보조금으로 줘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올린다. 그러면서 면화 농가들이 손해를 보는 면화 농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단다. 그 면화는 미국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할 수 있다. 미국은 예산적자가 엄청나지만 농민들에게 엄청난 돈을 퍼붓는다. 농민이라고 해봤자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다.”
또 다른 선진국인 유럽연합 국가들도 실상은 흡사하다. “유럽연합 전체 노동력의 2퍼센트만 종사하는 비효율적인 산업을 지원하는 데 집행위원회 전체 예산의 40퍼센트를 쓴다. 부자 나라들은 매년 자국 농민들에게 2000억 달러를 지급하며, 값싼 외국 식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관세를 높게 유지한다. 유럽은 10년 동안 경기침체를 겪었고, 첨단기업 육성 경쟁에서 전면적인 패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럽은 농업정책을 개혁할 생각이 없다.”
개도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럽의 소가 정부보조금으로 받는 것과 똑같은 하루 2달러 안팎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무역자유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선진국들의 가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티글리츠는 자유무역과 무역협정의 효용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권장한다. 다만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절차적 공정성’과 더불어 ‘결과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무역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은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rade for All)’과 영어 약자가 똑같은 FTA이듯 명(名)과 실(實)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점에선 앞서 쓴 책 ‘세계화와 그 불만’과 흐름을 같이 한다. 세계화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도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세계화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지닌 세계화’를 외쳤던 것과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다.
그는 세계무역의 활성화 덕분에 생기는 수천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전세계가 골고루 누리도록 하자고 호소한다. 세계무역기구의 ‘도하 라운드’만 해도 선진국 입장만 주로 반영한 ‘싱가포르 이슈’ 때문에 개도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질타한다. 저자들은 개도국이 단지 약자이니까 도와주자고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론적 분석과 실증적 검토 방법을 동원해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런 다음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무역협정의 개혁방안과 원칙을 제시한다. 자칫 딱딱하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초심자나 비전문가들을 위한 배려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11쪽에 걸쳐 책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 설명을 붙인 것이다. 이 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 정부 협상팀과 당국자들이 먼저 일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송철복 옮김. 1만9800원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제목이 시사하듯 ‘공정성’이다.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가 ‘효율성’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단(異端)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슴없이 ‘공정성’에 저울추를 하나 더 올려 놓는다. 이 책에서도 그는 대부분의 경제학 논문이 ‘효율성’이라는 용어를 옹호하기 위해 ‘공정성’이란 낱말을 기피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공정성’을 소리높여 역설하면서 시종일관 약자인 개발도상국 편에 선다. 그게 어째서 공정하냐고? 책을 읽어가다 보면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계적 균형론으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쯤에 서야 공정할 법하다. 그럴 경우 개도국에 한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스티글리츠의 관점이다.
개도국들은 협상 능력과 여건에서 선진국과 견줄 수 없다. 선진국과 개도국은 권투나 레슬링에 비유하면 애초부터 체급이 다르다. 돈과 인력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달리는 개도국은 협상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면 스티글리츠가 개척한 새로운 경제학 영토이기도 하다. 2001년 노벨상을 받은 공로가 바로 ‘비대칭 정보의 시장이론’ 창안이다. 정보가 중요한 까닭은 무역협상이 지난날과는 달리 단순한 ‘흥정’이 아니라 ‘기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선진국들의 허점투성이 주장을 안성맞춤의 사례를 들어 깨부순다. 우선 미국 농촌지역 출신 상원의원의 억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는 몇 안 되는 미국 면화 농가에 매년 40억달러를 보조금으로 줘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올린다. 그러면서 면화 농가들이 손해를 보는 면화 농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단다. 그 면화는 미국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할 수 있다. 미국은 예산적자가 엄청나지만 농민들에게 엄청난 돈을 퍼붓는다. 농민이라고 해봤자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다.”
개도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럽의 소가 정부보조금으로 받는 것과 똑같은 하루 2달러 안팎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무역자유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선진국들의 가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티글리츠는 자유무역과 무역협정의 효용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권장한다. 다만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절차적 공정성’과 더불어 ‘결과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무역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은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rade for All)’과 영어 약자가 똑같은 FTA이듯 명(名)과 실(實)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점에선 앞서 쓴 책 ‘세계화와 그 불만’과 흐름을 같이 한다. 세계화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도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세계화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지닌 세계화’를 외쳤던 것과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다.
그는 세계무역의 활성화 덕분에 생기는 수천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전세계가 골고루 누리도록 하자고 호소한다. 세계무역기구의 ‘도하 라운드’만 해도 선진국 입장만 주로 반영한 ‘싱가포르 이슈’ 때문에 개도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질타한다. 저자들은 개도국이 단지 약자이니까 도와주자고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론적 분석과 실증적 검토 방법을 동원해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런 다음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무역협정의 개혁방안과 원칙을 제시한다. 자칫 딱딱하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초심자나 비전문가들을 위한 배려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11쪽에 걸쳐 책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 설명을 붙인 것이다. 이 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 정부 협상팀과 당국자들이 먼저 일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송철복 옮김.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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