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4-13 15:36:27
▲미래의 물결…자크 아탈리|위즈덤하우스
“엉터리 예측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동전을 던져라.” 미국 경영컨설턴트 윌리엄 A 서든은 미래학자들에게 이처럼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미래학자들이야말로 동전을 던지는 것보다 못한 50% 이하의 적중률로 뭇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예언가들이라고 매섭게 몰아친다. 미래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면서 실명까지 들먹인다.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비트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도 그의 지적 살생부 예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선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피터 드러커 같은 이는 미래에 대한 놀라운 혜안을 지닌 미래학자로 추앙받지만 ‘미래예측’이란 낱말을 싫어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대표적인 ‘빗나간 미래예측’ 다섯 가지를 소개해 세계적인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잘못된 미래예측이라도 이는 인류를 재난으로부터 구조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반론을 펴는 용감한 문명사학자도 있다. ‘총·균·쇠’ ‘문명의 붕괴’ 등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바로 그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천재 지성’이란 평판을 얻은 자크 아탈리의 신작 ‘미래의 물결’은 예측에 관한한 다이아몬드와 취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이 책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저 그런 미래예측서는 물론 아니다. 원제부터 비교적 겸손하다. ‘미래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Une breve histoire de l’avenir)라는 제목과는 달리 400쪽에 약간 못미치는 분량이 결코 소홀하지 않다.
아탈리는 미래 예측에 앞서 인류 문명과 역사의 흐름을 나름의 분석 틀과 잣대로 법칙성을 정립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 예측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른다고 전제한다. ‘그리스-히브리적 이상’이 낳은 시장민주주의의 상업적 체제를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라고 이름지었다.
그는 우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아홉 개의 ‘거점’을 분석 틀로 삼았다. 아탈리의 첫번째 ‘거점’은 보통사람들에겐 생소한 벨기에의 ‘브루게’이다. 그후 베네치아, 엔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등 유럽 도시가 중심이 되었다. ‘거점’의 옥좌는 19세기 후반 대서양을 건너 보스턴, 뉴욕을 거쳐 현재는 로스앤젤레스가 지키고 있다. 미래의 열번째 ‘거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예측을 유보한 채 확률이 높은 지역의 장·단점을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탈리는 2035년 무렵 미국이 세계 제국의 왕좌에서 물러나면서 여러 지배세력이 공존하는 ‘다중심적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남아 있겠지만 지배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다중심적 체제의 11대 강국에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가 오른다.
그렇지만 이 체제 역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종국에는 국가 개념마저 사라진 ‘하이퍼 민주주의’가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한 시장을 중심으로 가상의 ‘하이퍼 제국’이 등장하고 ‘하이퍼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개연성이 높지만 시장과 민주주의는 결국 하이퍼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아탈리의 전망이다.
하이퍼 민주주의 시대의 전위부대는 아탈리가 새로이 개념화한 ‘트랜스휴먼’과 ‘관계 위주의 기업’이다. ‘트랜스휴먼’은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이타적인 지구시민이다. 트랜스휴먼들은 상업적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예술적 혁신을 이끌어 가는 ‘창조적 계급’을 형성한다. ‘트랜스휴먼’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 ‘관계위주의 기업’은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으면서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관계의 경제’ 활동을 펴나간다.
이 책은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데이터에 바탕을 두고 객관성 있게 보여주려 하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한층 역설한다. 한국에 대한 충고에서도 이 점을 빼놓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국의 첨단 사례를 들며 얘기를 풀어나가 기분 좋게 읽힐 때가 적지 않다. 게다가 번역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원본에 없는 한국 부문을 별도의 장에 추가한 것도 눈에 띈다.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온 그는 이 책에서도 예찬 일변도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복지예산 확보를 전제로 깔았다. 특히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한 가족정책, 교육과 이민정책 개혁 등 세 가지를 주문한다.
읽고 나면 탁월하고 냉철한 분석과 예측이 뇌리에 오래 남지만 ‘낭만적 사회주의자’ 아탈리의 가슴이 동시에 느껴진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말 첫 출간되자마자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한 것만 봐도 책과 저자의 지적 성가는 짐작할 만하다. 양영란 옮김. 1만7000원
그래선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피터 드러커 같은 이는 미래에 대한 놀라운 혜안을 지닌 미래학자로 추앙받지만 ‘미래예측’이란 낱말을 싫어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대표적인 ‘빗나간 미래예측’ 다섯 가지를 소개해 세계적인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잘못된 미래예측이라도 이는 인류를 재난으로부터 구조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반론을 펴는 용감한 문명사학자도 있다. ‘총·균·쇠’ ‘문명의 붕괴’ 등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바로 그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천재 지성’이란 평판을 얻은 자크 아탈리의 신작 ‘미래의 물결’은 예측에 관한한 다이아몬드와 취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이 책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저 그런 미래예측서는 물론 아니다. 원제부터 비교적 겸손하다. ‘미래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Une breve histoire de l’avenir)라는 제목과는 달리 400쪽에 약간 못미치는 분량이 결코 소홀하지 않다.
아탈리는 미래 예측에 앞서 인류 문명과 역사의 흐름을 나름의 분석 틀과 잣대로 법칙성을 정립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 예측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른다고 전제한다. ‘그리스-히브리적 이상’이 낳은 시장민주주의의 상업적 체제를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라고 이름지었다.
그는 우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아홉 개의 ‘거점’을 분석 틀로 삼았다. 아탈리의 첫번째 ‘거점’은 보통사람들에겐 생소한 벨기에의 ‘브루게’이다. 그후 베네치아, 엔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등 유럽 도시가 중심이 되었다. ‘거점’의 옥좌는 19세기 후반 대서양을 건너 보스턴, 뉴욕을 거쳐 현재는 로스앤젤레스가 지키고 있다. 미래의 열번째 ‘거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예측을 유보한 채 확률이 높은 지역의 장·단점을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탈리는 2035년 무렵 미국이 세계 제국의 왕좌에서 물러나면서 여러 지배세력이 공존하는 ‘다중심적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남아 있겠지만 지배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다중심적 체제의 11대 강국에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가 오른다.
그렇지만 이 체제 역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종국에는 국가 개념마저 사라진 ‘하이퍼 민주주의’가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한 시장을 중심으로 가상의 ‘하이퍼 제국’이 등장하고 ‘하이퍼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개연성이 높지만 시장과 민주주의는 결국 하이퍼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아탈리의 전망이다.
하이퍼 민주주의 시대의 전위부대는 아탈리가 새로이 개념화한 ‘트랜스휴먼’과 ‘관계 위주의 기업’이다. ‘트랜스휴먼’은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이타적인 지구시민이다. 트랜스휴먼들은 상업적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예술적 혁신을 이끌어 가는 ‘창조적 계급’을 형성한다. ‘트랜스휴먼’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 ‘관계위주의 기업’은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으면서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관계의 경제’ 활동을 펴나간다.
이 책은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데이터에 바탕을 두고 객관성 있게 보여주려 하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한층 역설한다. 한국에 대한 충고에서도 이 점을 빼놓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국의 첨단 사례를 들며 얘기를 풀어나가 기분 좋게 읽힐 때가 적지 않다. 게다가 번역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원본에 없는 한국 부문을 별도의 장에 추가한 것도 눈에 띈다.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온 그는 이 책에서도 예찬 일변도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복지예산 확보를 전제로 깔았다. 특히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한 가족정책, 교육과 이민정책 개혁 등 세 가지를 주문한다.
읽고 나면 탁월하고 냉철한 분석과 예측이 뇌리에 오래 남지만 ‘낭만적 사회주의자’ 아탈리의 가슴이 동시에 느껴진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말 첫 출간되자마자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한 것만 봐도 책과 저자의 지적 성가는 짐작할 만하다. 양영란 옮김.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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