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5-25 16:09:19
▲소크라테스씨, 질문 있어요!…크리스토퍼 필립스|민음사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책상에 앉아 진중하게 독서하는 모습에 비유한다면, 크리스토퍼 필립스의 ‘소크라테스씨, 질문 있어요!’는 소파에 드러누워 편하게 읽는 자태를 상상하면 좋겠다. ‘현학적 철학자들의 난해한 사유하기’가 아닌 ‘보통사람들의 쉽게 철학하기’라고 보면 안성맞춤의 그림이 그려진다.
우선 저자 자신이 거리의 철학 전도사다. 대학교정이 아닌 저잣거리의 보통사람들에게 ‘철학적으로 생각하기’를 전파하고 나선 지 오래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전매특허인 ‘소크라테스 카페’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흥겹게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광경이 선하게 떠오른다.
철학이 묻고 대답하고, 다시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현대판 소크라테스의 ‘대화’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대화법인 산파술을 통해 답변을 이끌어내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자신이 소크라테스가 된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보통사람들과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스스로 깨우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저자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이 책을 덮으려는 순간 차원이 조금 다르지만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노숙자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이색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철학책답지 않게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며 읽을 수 있지만 주제는 한결같이 철학적 원론을 다룬다. ‘○○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은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여섯 가지 덕목에 따라 진행된다. 덕, 절제, 정의, 선, 용기, 경건함이 그것이다. 원래 제목도 ‘Six Questions of Socrates’이다.
저자는 왜 여섯 가지 질문만 던졌을까. “나는 인간의 뛰어남을 철학적으로 알아보려면 이 여섯 가지 질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주제에 대해 현대적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면 그 여섯 가지 질문이 이상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스, 한국, 일본, 멕시코, 스페인, 미국 등 여섯 나라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카페’의 대화에서 나온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멍석 위에 먼저 펼쳐 놓는다. 시작이 언제나 주제 덕목에 관한 근본 질문으로 문을 여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며 위대한 철학자나 위인, 현자들의 가르침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이들이 사실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에 따라 저자의 생각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덕’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일본인들이 속마음을 숨기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정치학과 1학년생인 히토미는 좌중을 놀라게 하는 발언을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정직하지 않은 것이 미덕인 것 같아요.” 도중에 일본 전문가 로버트 위팅의 시각이 소개된다. 일본인들은 ‘와(和)’를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이른바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난 명분)’를 위해 ‘혼네(本音·속마음)’를 억제하는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국화와 칼’의 저자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수치문화(羞恥文化)’ 같은 이론도 곁들인다.
‘절제’에 관한 토론에서 저자는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과 시위문화의 과격성은 절제력이 없어서인가’를 묻는다. 여기서 인권,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 등 다양한 시각과 비슷한 개념들이 정리된다.
‘소크라테스 카페’의 토론에 참여하는 인물들도 실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초·중등학교 학생에서부터 칠·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초월한다. 정신병원 수용자, 중범 형무소 수감자, 미국 인디언(원주민) 보호구역 주민,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지원자, 교수, 사업가, 은행원, 노숙자 등 직업과 신분 역시 천차만별이다. 영원한 앙숙인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도 한 자리에 모인다.
공자, 석가모니 같은 성자와 마호메트, 틱낫한 같은 종교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마키아벨리, 몽테뉴, 존 스튜어트 밀처럼 사상가이자 학자들도 참여한다. 한국인으로서는 다산 정약용, 율곡 이이, 박경리에다 마광수까지 나온다.
‘소크라테스 카페’의 토론이 보통사람들의 대화라고 얕보면 곤란하다. 현자들의 명언 못지않게 깊이 있는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각 나라의 특이한 문화나 일상생활, 국제적으로 첨예하게 부각된 현안에 관한 질문과 응답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아테네의 은퇴한 역사학 교수 안토니스의 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한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던진 덕(德)에 관한 질문에 한번도 최종적인 해답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고요. 다음 세대가 좀더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남겨둔 것입니다.” 김현우 옮김. 1만2000원
비슷한 시기에 나온 모티머 J 애들러의 ‘개념어 해석’(모티브북)도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독자에게 철학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소크라테스의 교수법’을 가장 적절한 수업방식으로 여기는 저자는 묻고 또 질문하도록 주문한다. 진리, 자유, 진보, 사랑, 전쟁과 평화, 민주주의, 정의, 인간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22가지 개념어를 대화하듯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근본적 개념 700가지를 선별하고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103가지로 축약한 뒤 이 가운데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22가지 개념어만 최종적으로 골랐다. 최홍주 옮김. 2만7000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책상에 앉아 진중하게 독서하는 모습에 비유한다면, 크리스토퍼 필립스의 ‘소크라테스씨, 질문 있어요!’는 소파에 드러누워 편하게 읽는 자태를 상상하면 좋겠다. ‘현학적 철학자들의 난해한 사유하기’가 아닌 ‘보통사람들의 쉽게 철학하기’라고 보면 안성맞춤의 그림이 그려진다.
우선 저자 자신이 거리의 철학 전도사다. 대학교정이 아닌 저잣거리의 보통사람들에게 ‘철학적으로 생각하기’를 전파하고 나선 지 오래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전매특허인 ‘소크라테스 카페’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흥겹게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광경이 선하게 떠오른다.
철학이 묻고 대답하고, 다시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현대판 소크라테스의 ‘대화’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대화법인 산파술을 통해 답변을 이끌어내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자신이 소크라테스가 된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보통사람들과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스스로 깨우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저자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이 책을 덮으려는 순간 차원이 조금 다르지만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노숙자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이색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철학책답지 않게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며 읽을 수 있지만 주제는 한결같이 철학적 원론을 다룬다. ‘○○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은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여섯 가지 덕목에 따라 진행된다. 덕, 절제, 정의, 선, 용기, 경건함이 그것이다. 원래 제목도 ‘Six Questions of Socrates’이다.
저자는 왜 여섯 가지 질문만 던졌을까. “나는 인간의 뛰어남을 철학적으로 알아보려면 이 여섯 가지 질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주제에 대해 현대적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면 그 여섯 가지 질문이 이상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Q 한국인은 왜 술을 많이 마실까 A 유교의 ‘절제’를 중시한다. 그러나 음주에 관한 한 남성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다. 한국의 지배적인 남성 문화는 음주에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Q 9.11테러 이후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요 A 테러의 위협은 항상 있다. 그래서 계속 열린사회로 남을 수 있다는 믿음과 불안함에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더 개방적으로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
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스, 한국, 일본, 멕시코, 스페인, 미국 등 여섯 나라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카페’의 대화에서 나온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멍석 위에 먼저 펼쳐 놓는다. 시작이 언제나 주제 덕목에 관한 근본 질문으로 문을 여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며 위대한 철학자나 위인, 현자들의 가르침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이들이 사실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에 따라 저자의 생각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덕’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일본인들이 속마음을 숨기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정치학과 1학년생인 히토미는 좌중을 놀라게 하는 발언을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정직하지 않은 것이 미덕인 것 같아요.” 도중에 일본 전문가 로버트 위팅의 시각이 소개된다. 일본인들은 ‘와(和)’를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이른바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난 명분)’를 위해 ‘혼네(本音·속마음)’를 억제하는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국화와 칼’의 저자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수치문화(羞恥文化)’ 같은 이론도 곁들인다.
‘절제’에 관한 토론에서 저자는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과 시위문화의 과격성은 절제력이 없어서인가’를 묻는다. 여기서 인권,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 등 다양한 시각과 비슷한 개념들이 정리된다.
‘소크라테스 카페’의 토론에 참여하는 인물들도 실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초·중등학교 학생에서부터 칠·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초월한다. 정신병원 수용자, 중범 형무소 수감자, 미국 인디언(원주민) 보호구역 주민,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지원자, 교수, 사업가, 은행원, 노숙자 등 직업과 신분 역시 천차만별이다. 영원한 앙숙인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도 한 자리에 모인다.
공자, 석가모니 같은 성자와 마호메트, 틱낫한 같은 종교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마키아벨리, 몽테뉴, 존 스튜어트 밀처럼 사상가이자 학자들도 참여한다. 한국인으로서는 다산 정약용, 율곡 이이, 박경리에다 마광수까지 나온다.
‘소크라테스 카페’의 토론이 보통사람들의 대화라고 얕보면 곤란하다. 현자들의 명언 못지않게 깊이 있는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각 나라의 특이한 문화나 일상생활, 국제적으로 첨예하게 부각된 현안에 관한 질문과 응답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아테네의 은퇴한 역사학 교수 안토니스의 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한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던진 덕(德)에 관한 질문에 한번도 최종적인 해답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고요. 다음 세대가 좀더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남겨둔 것입니다.” 김현우 옮김. 1만2000원
비슷한 시기에 나온 모티머 J 애들러의 ‘개념어 해석’(모티브북)도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독자에게 철학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소크라테스의 교수법’을 가장 적절한 수업방식으로 여기는 저자는 묻고 또 질문하도록 주문한다. 진리, 자유, 진보, 사랑, 전쟁과 평화, 민주주의, 정의, 인간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22가지 개념어를 대화하듯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근본적 개념 700가지를 선별하고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103가지로 축약한 뒤 이 가운데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22가지 개념어만 최종적으로 골랐다. 최홍주 옮김.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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