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7-13 16:54:08
▲진보의 역설…그레그 이스터브룩|에코리브르
‘진보의 역설’이란 제목만 보면 진보 비판서쯤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총 415쪽 가운데 100쪽을 읽는 동안 한 보수주의자의 진보이데올로기 비판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낙관론과 그 사례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여기에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자기 나라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유럽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걸 보면 책을 잘못 집어든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잠시 밀려든다. 그렇지만 이는 반전(反轉)을 노리는 전술이다.
핵심은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묻는 부제가 웅변한다. 그렇다고 단순 행복론이나 긍정 심리학 전도서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걸 다루지만 다양한 식단이 함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이자 학자인 저자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머리말의 들머리에서 400년 전에 살았던 우리의 고조부모가 오늘날 미국에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간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950년대 이후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제한다. 그 기간 동안 실질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번영과 행복 사이의 단절이다. 평균적인 미국인과 유럽인은 여태까지 살았던 인류의 99퍼센트보다 더 잘 살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왕족보다도 더 화려하게 사는 데도 그렇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단극성 우울증 환자가 50년 전보다 10배나 더 많아졌다는 통계적 사실에 저자는 먼저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나선 풍요와 자유가 넘쳐나는 데도 우울증과 회의주의가 만연하는 현실은 불평하기 좋아하는 인간 본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서구 제도의 두 가지 심각한 결함으로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사서 소비한다는 점과 부유층의 극단적인 탐욕을 든다.
그는 생활이 윤택해지는 데도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 이유로 몇 가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선택 불안, 풍요 부정, 붕괴 불안, 충족된 기대의 혁명 등이 그것이다. 선택 불안은 사회적 힘에 구속된 나머지 선택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아 선택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다. 풍요 부정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교묘한 정신적 논리를 꾸며내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붕괴 불안은 경제 불황, 환경 오염, 자원 고갈, 테러리즘,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세상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충족된 기대의 혁명은 꿈꾸고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게 된 현실에 동반되는 불안한 감정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현재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주변환경과 소득이 얼마나 좋아질 것이냐를 근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의 심리학 연구 주제인 긍정심리학 분야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특히 ‘용서’와 ‘감사’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적 폭넓고 밀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용서하고 감사하며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상대방보다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게 요체다. 이타적인 행동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긴요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예화로 든 ‘용서’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다루는 바로 그 ‘용서’만큼이나 충격적인 구조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유학을 가 반(反)인종분리정책 운동을 돕던 딸을 죽인 두 흑인 청년들을 용서하는 미국 백인 부부의 얘기가 줄거리다. 자식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 뒤 부부는 더욱 행복하고 큰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용서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분노하는 것보다 훨씬 이롭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는 살을 빼는 게 건강에 좋다는 논문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용서가 말로는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힘든 걸 부인할 수 없다.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덜 걸리고 더 훌륭한 사회후원자를 얻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행복에 대한 관심 영역은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의 행복론으로 이어진다. 한때 세계적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탐욕과 부도덕을 생생하고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무)’가 인류 전체의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저개발국의 빈곤 참상의 해결책도 나름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유토피아에서조차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기보다 여전히 불평하려들겠지만 그것이 유토피아로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결론 삼아 강조한다. 우리가 긍정적 자세를 갖더라도 빈곤, 온실가스 등 전지구적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그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고 나서 명실이 상부하지 않아 허탈감이 드는 책이 적지 않지만, 이 책은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이론과 예화, 오밀조밀한 지식이 짜임새 있게 교직돼 있어서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야 있겠지만 웬만한 독자라면 ‘마음의 양식’으로 한번쯤 포만감을 느낄 듯하다. 박정숙 옮김. 1만8000원
‘진보의 역설’이란 제목만 보면 진보 비판서쯤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총 415쪽 가운데 100쪽을 읽는 동안 한 보수주의자의 진보이데올로기 비판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낙관론과 그 사례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여기에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자기 나라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유럽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걸 보면 책을 잘못 집어든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잠시 밀려든다. 그렇지만 이는 반전(反轉)을 노리는 전술이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950년대 이후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제한다. 그 기간 동안 실질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번영과 행복 사이의 단절이다. 평균적인 미국인과 유럽인은 여태까지 살았던 인류의 99퍼센트보다 더 잘 살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왕족보다도 더 화려하게 사는 데도 그렇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단극성 우울증 환자가 50년 전보다 10배나 더 많아졌다는 통계적 사실에 저자는 먼저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나선 풍요와 자유가 넘쳐나는 데도 우울증과 회의주의가 만연하는 현실은 불평하기 좋아하는 인간 본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서구 제도의 두 가지 심각한 결함으로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사서 소비한다는 점과 부유층의 극단적인 탐욕을 든다.
그는 생활이 윤택해지는 데도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 이유로 몇 가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선택 불안, 풍요 부정, 붕괴 불안, 충족된 기대의 혁명 등이 그것이다. 선택 불안은 사회적 힘에 구속된 나머지 선택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아 선택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다. 풍요 부정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교묘한 정신적 논리를 꾸며내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붕괴 불안은 경제 불황, 환경 오염, 자원 고갈, 테러리즘,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세상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충족된 기대의 혁명은 꿈꾸고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게 된 현실에 동반되는 불안한 감정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현재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주변환경과 소득이 얼마나 좋아질 것이냐를 근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의 심리학 연구 주제인 긍정심리학 분야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특히 ‘용서’와 ‘감사’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적 폭넓고 밀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용서하고 감사하며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상대방보다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게 요체다. 이타적인 행동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긴요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예화로 든 ‘용서’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다루는 바로 그 ‘용서’만큼이나 충격적인 구조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유학을 가 반(反)인종분리정책 운동을 돕던 딸을 죽인 두 흑인 청년들을 용서하는 미국 백인 부부의 얘기가 줄거리다. 자식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 뒤 부부는 더욱 행복하고 큰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용서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분노하는 것보다 훨씬 이롭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는 살을 빼는 게 건강에 좋다는 논문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용서가 말로는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힘든 걸 부인할 수 없다.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덜 걸리고 더 훌륭한 사회후원자를 얻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행복에 대한 관심 영역은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의 행복론으로 이어진다. 한때 세계적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탐욕과 부도덕을 생생하고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무)’가 인류 전체의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저개발국의 빈곤 참상의 해결책도 나름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유토피아에서조차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기보다 여전히 불평하려들겠지만 그것이 유토피아로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결론 삼아 강조한다. 우리가 긍정적 자세를 갖더라도 빈곤, 온실가스 등 전지구적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그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고 나서 명실이 상부하지 않아 허탈감이 드는 책이 적지 않지만, 이 책은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이론과 예화, 오밀조밀한 지식이 짜임새 있게 교직돼 있어서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야 있겠지만 웬만한 독자라면 ‘마음의 양식’으로 한번쯤 포만감을 느낄 듯하다. 박정숙 옮김.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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