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9-21 15:06:43
▲아담의 배꼽…마이클 심스|이레
인체는 지구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복잡 오묘하고 경이롭다. 디자인과 기능이 최적으로 결합돼 그 자체를 ‘공학의 승리’라고 일컫는다. 그래선지 인체는 ‘작은 우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도 불린다. 인체의 신비에 대한 이해와 탐구, 접근 방식 역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담의 배꼽(원제 Adam’s Navel)’은 인체를 독특하고 개성 있게 묘파하는 책이다. 해부학, 생물학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역사, 문학, 인류학, 어원학, 진화론, 예술, 대중문화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한 분야를 넘나들며 교직한 독보적인 저작이다. 넓게 보면 부제 그대로 ‘인체에 관한 자연사와 문화사’다. 애써 달리 분류하자면 ‘인체 잡학사전’이나 ‘몸의 박물학지’쯤이 되겠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저것 모아놓은 난장이 아니다. 자질구레하지만 꼭 필요한 소품부터 진기한 골동품, 최신 명품까지 골고루 갖춘 고급 가게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은이 마이클 심스 스스로가 특정 분야의 전문학자가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이 책을 쓴 동기도 무척 흥미롭다. 심각한 경부 디스크에 걸려 수술을 받고 꼼짝도 하지 못한 채 2주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특별한 체험이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병원에서 지정해 준 메모지를 가슴팍에 올려 놓고 신체의 온갖 부위에 대한 연상을 잡다한 비망록처럼 써 모으다 보니 책으로 펴내야겠다는 유혹에 빠진다.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말이다.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명작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육체가 없는 천사들이 열망한, 바로 그 육체에 대한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산물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과학자가 아닌 저자는 퇴원 후 각종 참고서적과 자료를 찾아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독창적인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잡종이다. 자연과 문화라는 두 분야가 교배하여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연 가운데 일부로서 사람의 육체를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한편, 문화사에 담긴 인체에 대한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관점을 추적한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탐구 과정을 ‘인체 여행’이라고 명명한다. 이 여행은 남녀 인체를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한번에 한 부위씩 실행된다. 그것도 몸의 외형에만 집중했다. 지은이는 그 이유의 하나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있다.” 그래서 폐, 심장, 뼈처럼 요긴하지만 숨어 있는 것은 열외(列外)가 되었다. 얼굴 윤곽, 이목구비, 어깨, 팔, 손, 가슴과 젖가슴, 복부와 배꼽, 허리, 음부, 엉덩이, 다리와 팔을 순서대로 여행한다.
지은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머리부터 발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우선 책쓰기가 연구 결과물이라기보다 여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신생아가 커가는 과정에서 통제하는 부위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음을 자연스레 발견한다.
저자는 특유의 인체 여행을 하면서 망원경으로 멀리 보기와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기를 망라한다. 머나먼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체의 역사를 추적하는가 하면 어느 새 손과 발의 지문이나 작은 털을 재치 있게 미세 분석하러 나선다. 피부가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 정도이고 신진대사의 5~8%가 피부 보존에 쓰일 만큼 중요하면서도 푸대접을 받은 까닭, 눈·귀·입에 비해 코는 우스꽝스러운 기관으로 박한 대우를 받은 이유 같은 것도 유쾌하게 밝혀낸다. 특히 신체 각 부위가 성적(性的) 요소와 어떻게 결합되는지도 세밀하고 널리 천착한 흔적이 짙게 엿보인다. 눈썹에 바치는 송시(頌詩), 발가락의 불가사의를 추적한 대목 등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제목에 들어있는 ‘배꼽’은 다른 부위와 달리 서정과 유머가 섞인 독특한 잡종이면서 1990년 말에 이르러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로 떠오르는 과정을 상큼하게 풀어간다.
글쓰기 방식도 특이성을 자주 드러내 보인다.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시 형식을 따랐다. 클레망 마로라는 망명 시인이 여체(女體)의 각 부위에 대한 시적 헌사(獻詞)로 ‘해부를 노래하라’를 지은 형식이 그것이다. 이 시가 몸에 대한 숭배에서 혐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찬미의 문장(紋章)’과 ‘매도의 반문장(反紋章)’이 혼융하듯 이 책도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고,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으로 접근한다. 그에게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가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서 몸에 관한 거창한 철학적 함의나 메시지 같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다. 책을 쓴 동기부터 체계적인 과학이나 사실 논증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우리 몸에 관한 흥미와 호기심의 충만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대신 추석 명절을 맞이하듯 풍성한 지식의 가을걷이를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게 분명하다. 인체와 관련된 정보와 상식거리가 가득하고 안성맞춤의 예화, 일화가 잘 버무려져 읽는 맛을 북돋워줄 것 같다.
‘아담의 배꼽’을 읽다보면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는 아니지만 빙그레 웃음을 짓는 순간이 잦을 것이다. 잠시도 지루하게 놓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곽영미 옮김. 2만2000원
‘아담의 배꼽(원제 Adam’s Navel)’은 인체를 독특하고 개성 있게 묘파하는 책이다. 해부학, 생물학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역사, 문학, 인류학, 어원학, 진화론, 예술, 대중문화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한 분야를 넘나들며 교직한 독보적인 저작이다. 넓게 보면 부제 그대로 ‘인체에 관한 자연사와 문화사’다. 애써 달리 분류하자면 ‘인체 잡학사전’이나 ‘몸의 박물학지’쯤이 되겠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저것 모아놓은 난장이 아니다. 자질구레하지만 꼭 필요한 소품부터 진기한 골동품, 최신 명품까지 골고루 갖춘 고급 가게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은이 마이클 심스 스스로가 특정 분야의 전문학자가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이 책을 쓴 동기도 무척 흥미롭다. 심각한 경부 디스크에 걸려 수술을 받고 꼼짝도 하지 못한 채 2주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특별한 체험이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병원에서 지정해 준 메모지를 가슴팍에 올려 놓고 신체의 온갖 부위에 대한 연상을 잡다한 비망록처럼 써 모으다 보니 책으로 펴내야겠다는 유혹에 빠진다.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말이다.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명작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육체가 없는 천사들이 열망한, 바로 그 육체에 대한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산물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과학자가 아닌 저자는 퇴원 후 각종 참고서적과 자료를 찾아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독창적인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잡종이다. 자연과 문화라는 두 분야가 교배하여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연 가운데 일부로서 사람의 육체를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한편, 문화사에 담긴 인체에 대한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관점을 추적한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탐구 과정을 ‘인체 여행’이라고 명명한다. 이 여행은 남녀 인체를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한번에 한 부위씩 실행된다. 그것도 몸의 외형에만 집중했다. 지은이는 그 이유의 하나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있다.” 그래서 폐, 심장, 뼈처럼 요긴하지만 숨어 있는 것은 열외(列外)가 되었다. 얼굴 윤곽, 이목구비, 어깨, 팔, 손, 가슴과 젖가슴, 복부와 배꼽, 허리, 음부, 엉덩이, 다리와 팔을 순서대로 여행한다.
지은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머리부터 발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우선 책쓰기가 연구 결과물이라기보다 여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신생아가 커가는 과정에서 통제하는 부위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음을 자연스레 발견한다.
저자는 특유의 인체 여행을 하면서 망원경으로 멀리 보기와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기를 망라한다. 머나먼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체의 역사를 추적하는가 하면 어느 새 손과 발의 지문이나 작은 털을 재치 있게 미세 분석하러 나선다. 피부가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 정도이고 신진대사의 5~8%가 피부 보존에 쓰일 만큼 중요하면서도 푸대접을 받은 까닭, 눈·귀·입에 비해 코는 우스꽝스러운 기관으로 박한 대우를 받은 이유 같은 것도 유쾌하게 밝혀낸다. 특히 신체 각 부위가 성적(性的) 요소와 어떻게 결합되는지도 세밀하고 널리 천착한 흔적이 짙게 엿보인다. 눈썹에 바치는 송시(頌詩), 발가락의 불가사의를 추적한 대목 등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제목에 들어있는 ‘배꼽’은 다른 부위와 달리 서정과 유머가 섞인 독특한 잡종이면서 1990년 말에 이르러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로 떠오르는 과정을 상큼하게 풀어간다.
글쓰기 방식도 특이성을 자주 드러내 보인다.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시 형식을 따랐다. 클레망 마로라는 망명 시인이 여체(女體)의 각 부위에 대한 시적 헌사(獻詞)로 ‘해부를 노래하라’를 지은 형식이 그것이다. 이 시가 몸에 대한 숭배에서 혐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찬미의 문장(紋章)’과 ‘매도의 반문장(反紋章)’이 혼융하듯 이 책도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고,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으로 접근한다. 그에게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가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서 몸에 관한 거창한 철학적 함의나 메시지 같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다. 책을 쓴 동기부터 체계적인 과학이나 사실 논증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우리 몸에 관한 흥미와 호기심의 충만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대신 추석 명절을 맞이하듯 풍성한 지식의 가을걷이를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게 분명하다. 인체와 관련된 정보와 상식거리가 가득하고 안성맞춤의 예화, 일화가 잘 버무려져 읽는 맛을 북돋워줄 것 같다.
‘아담의 배꼽’을 읽다보면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는 아니지만 빙그레 웃음을 짓는 순간이 잦을 것이다. 잠시도 지루하게 놓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곽영미 옮김.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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