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9-07 15:47:39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푸른숲
“왜 하필 또 케네디죠?” 지은이가 이 책을 쓰던 5년간 ‘귀가 따갑게 들어온 질문’을 ‘지금 여기서’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흔해 빠진 책이 케네디와 케네디 가(家)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4년 전 미국에서 나온 책을 새삼스럽게, 대문 앞에 큼지막하게 써줄 만한 까닭은 대체 뭐람?
머지않아 우리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 대선 후보 중에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뜨고 있어서? ‘프랑스의 케네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돌풍을 몰고 와서? 존 F 케네디가 미국인들의 영원한 대통령이자 우상이기 때문에? 굳이 끌어다 댄다면 한결같이 그럴 듯한 사유가 될 수 있겠다.
그런 것들보다 케네디에 관한 한 이 책을 능가할 만한 도전자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결정판’이라는 점을 먼저 상기하고 싶다. 국내에 소개되는 본격적인 케네디 평전으로서도 처음이나 다름없다. ‘케네디 평전(전 2권·원제 An Unfinished Life)’은 미국 언론으로부터 ‘평전의 거장’이란 별명을 얻은 정통 역사학자 로버트 댈럭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댈럭은 이미 린든 존슨과 로널드 레이건의 전기 등을 쓴 대통령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케네디 관련 책들과는 뭔가 달라야 할 게 아닌가. 맞다. 대가의 걸작답게 우상과 신화로서의 케네디가 아니라 ‘마법과 주문(呪文)의 허울’을 걷어내고 진정한 초상을 최대한 온전하게 복원한 ‘국민적 영웅의 보통 삶’이 윤색없이 그려졌다. 케네디 스스로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이다”란 명언을 즐겨 입에 올렸듯이.
그 밑바탕에는 지금껏 발굴된 각종 자료 외에 케네디 가에서 제공한 미공개 자료, 현직 시절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 기록, 비망록, 인터뷰 내용 등 그동안 입수할 수 없었던 기록들이 풍부한 전거가 됐다. 새로운 사실들을 다시 해부하고 재구성한 케네디의 공적 생애와 사적인 삶이 지난날의 시각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저자 댈럭이 새롭게 찾아내고 가장 주목한 것은 케네디가 어릴 때부터 상상 이상으로 병약했다는 사실이다. “갖가지 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들면서 참을성을 시험했고, 주치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사실 잭(케네디의 애칭)은 이미 세 살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런저런 질환들을 앓았다.”(76쪽) 대통령 재직 때까지 이어진 그의 잦은 병치레는 화려한 여성 편력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군 복무를 서류 조작까지 해 무리하게 추진하는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유명한 엽색 행각은 붕어빵 같은 아버지 조지프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기도 하지만 질병 콤플렉스를 뛰어넘어 성공의 쾌감을 맛보는 방식의 하나이기도 했다. 군 복무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대망을 이루기 위해 병약한 신체를 위장하고 정신적 강인함을 과시하려는 수단이었다고 지은이는 날카롭게 집어낸다. 건강 문제나 성적 집착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캐냈지만 그것이 대통령 직무수행에 그리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케네디는 대학 시절부터 수련한 국제정치감각과 안목을 바탕삼아 외교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쌓는다. 케네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과의 핵전쟁을 막아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채점에 지은이도 동의한다. 이와 함께 라오스 내전, 베를린 사태, 핵실험 금지 협상, 베트남 전쟁 등 냉전 시절의 난제를 세련된 외교 감각과 담대함, 특유의 자제력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반면에 흑인들의 민권투쟁, 교육, 의료 관련 개혁법안 등 내정에서의 잇단 실패와 좌절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미국 국민들이 그에게 여전히 경의를 표하는 까닭은 순교적 암살의 수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자는 케네디의 진실성에서 찾는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자라는 인식에서 케네디는 예외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식을 줄 모르는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를 중간 정도의 대통령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두드러진 업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한 흥미로운 평가에서도 높게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만약 케네디가 살아서 두번째 임기를 맞았더라면, 재임 중에 음란한 호색 행각과 마피아 샘 지앙카나와의 거래 사실들이 누설되면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1288쪽)
그렇다고 이러한 케네디를 무조건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염두에 둬서는 안되며, 국내외 국정 현안에 어떻게 대처했느냐를 총체적으로 조명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케네디의 내면을 새로이 탐구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살았던 증조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민자 신분에서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까지 케네디 가문의 입지전적인 전 과정을 추적해 가풍과 기질이 존 F 케네디의 공직 수행에 미친 영향까지 현미경을 들이댔다. 이 책은 역사학자로서의 냉철한 시각, 탁월한 문장력, 짜임새 있는 구성, 예리한 분석력 등을 두루 살펴보면 약점을 찾기 쉽지 않은 수작이다. 정초능 옮김. 1권 3만원, 2권 3만5000원
머지않아 우리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 대선 후보 중에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뜨고 있어서? ‘프랑스의 케네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돌풍을 몰고 와서? 존 F 케네디가 미국인들의 영원한 대통령이자 우상이기 때문에? 굳이 끌어다 댄다면 한결같이 그럴 듯한 사유가 될 수 있겠다.
그런 것들보다 케네디에 관한 한 이 책을 능가할 만한 도전자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결정판’이라는 점을 먼저 상기하고 싶다. 국내에 소개되는 본격적인 케네디 평전으로서도 처음이나 다름없다. ‘케네디 평전(전 2권·원제 An Unfinished Life)’은 미국 언론으로부터 ‘평전의 거장’이란 별명을 얻은 정통 역사학자 로버트 댈럭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댈럭은 이미 린든 존슨과 로널드 레이건의 전기 등을 쓴 대통령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케네디 관련 책들과는 뭔가 달라야 할 게 아닌가. 맞다. 대가의 걸작답게 우상과 신화로서의 케네디가 아니라 ‘마법과 주문(呪文)의 허울’을 걷어내고 진정한 초상을 최대한 온전하게 복원한 ‘국민적 영웅의 보통 삶’이 윤색없이 그려졌다. 케네디 스스로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이다”란 명언을 즐겨 입에 올렸듯이.
그 밑바탕에는 지금껏 발굴된 각종 자료 외에 케네디 가에서 제공한 미공개 자료, 현직 시절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 기록, 비망록, 인터뷰 내용 등 그동안 입수할 수 없었던 기록들이 풍부한 전거가 됐다. 새로운 사실들을 다시 해부하고 재구성한 케네디의 공적 생애와 사적인 삶이 지난날의 시각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저자 댈럭이 새롭게 찾아내고 가장 주목한 것은 케네디가 어릴 때부터 상상 이상으로 병약했다는 사실이다. “갖가지 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들면서 참을성을 시험했고, 주치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사실 잭(케네디의 애칭)은 이미 세 살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런저런 질환들을 앓았다.”(76쪽) 대통령 재직 때까지 이어진 그의 잦은 병치레는 화려한 여성 편력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군 복무를 서류 조작까지 해 무리하게 추진하는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유명한 엽색 행각은 붕어빵 같은 아버지 조지프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기도 하지만 질병 콤플렉스를 뛰어넘어 성공의 쾌감을 맛보는 방식의 하나이기도 했다. 군 복무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대망을 이루기 위해 병약한 신체를 위장하고 정신적 강인함을 과시하려는 수단이었다고 지은이는 날카롭게 집어낸다. 건강 문제나 성적 집착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캐냈지만 그것이 대통령 직무수행에 그리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케네디는 대학 시절부터 수련한 국제정치감각과 안목을 바탕삼아 외교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쌓는다. 케네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과의 핵전쟁을 막아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채점에 지은이도 동의한다. 이와 함께 라오스 내전, 베를린 사태, 핵실험 금지 협상, 베트남 전쟁 등 냉전 시절의 난제를 세련된 외교 감각과 담대함, 특유의 자제력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반면에 흑인들의 민권투쟁, 교육, 의료 관련 개혁법안 등 내정에서의 잇단 실패와 좌절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미국 국민들이 그에게 여전히 경의를 표하는 까닭은 순교적 암살의 수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자는 케네디의 진실성에서 찾는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자라는 인식에서 케네디는 예외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식을 줄 모르는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를 중간 정도의 대통령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두드러진 업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한 흥미로운 평가에서도 높게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만약 케네디가 살아서 두번째 임기를 맞았더라면, 재임 중에 음란한 호색 행각과 마피아 샘 지앙카나와의 거래 사실들이 누설되면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1288쪽)
그렇다고 이러한 케네디를 무조건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염두에 둬서는 안되며, 국내외 국정 현안에 어떻게 대처했느냐를 총체적으로 조명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케네디의 내면을 새로이 탐구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살았던 증조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민자 신분에서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까지 케네디 가문의 입지전적인 전 과정을 추적해 가풍과 기질이 존 F 케네디의 공직 수행에 미친 영향까지 현미경을 들이댔다. 이 책은 역사학자로서의 냉철한 시각, 탁월한 문장력, 짜임새 있는 구성, 예리한 분석력 등을 두루 살펴보면 약점을 찾기 쉽지 않은 수작이다. 정초능 옮김. 1권 3만원, 2권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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