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0-05 15:24:09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부키
“축구경기를 하는 한쪽 편이 브라질 국가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 유나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런 경기가 허용될 리가 없다. 중량급인 무하마드 알리는 경량급 선수권을 네 개나 보유했던 유명한 파나마 선수 로베르토 듀란과 경기를 할 수 없다. 이렇듯 몸무게가 2㎏ 넘게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하는 권투경기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미국과 온두라스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원제 Bad Samaritans)’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권하는 부자 나라들에게 이처럼 다그쳐 묻는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부자 나라들에게 서슴없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위선자 딱지를 붙인다.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척하며 그의 돈을 슬쩍해 간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부자 나라들이 스스로 보호무역과 보조금 정책으로 성장했으면서도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인양 들이미는 이중잣대를 준절히 나무란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앞잡이나 다름없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세계무역기구(WTO)에는 ‘사악한 삼총사’란 주홍글씨를 달아주었다.
지은이는 역사적 사례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휘뚜루마뚜루 행동하는 부자 나라들의 협애한 처신에 십자포를 쏘아댄다. 처음부터 이들의 권고대로 했다면 삼성은 아직도 설탕이나 만들고 있을 것이며, 포스코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휴대폰 시장 1위인 핀란드의 노키아 역시 보조금정책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무나 베고 있을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행태는 마치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저자의 출세작인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와 맥과 결을 같이한다. 다만 ‘사다리 걷어차기’가 학술 논문에 가까운 책이라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보통 독자들을 겨냥해 쓴 교양 경제서다.
장하준은 세계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에게도 화살을 날린다. 프리드먼은 대표작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선진국을 상징하는 렉서스 세상으로 가려면 ‘황금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을 입으라고 권면한다. 올리브 나무 세상의 나라들은 황금구속복이라고 일컫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맞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며.
그렇지만 장하준은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프리드먼의 충고를 따랐다면 지금 렉서스를 수출하는 국민이 아니라 (실크를 생산하는 누에 먹이) 뽕나무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라고 야유에 가까운 위트를 던진다.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을 통해 발전하도록 진정으로 도우려 한다면 부자 나라들은 1950년대~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비대칭적인 보호주의를 용인하고 자국에 대한 보호 수준을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보호정책을 싸고 도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섯 살 난 자기 아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마흔 살 먹은 어른에게까지 보조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수긍한다.
외국인 투자 개방, 공기업 민영화, 재정의 건전성, 지적 재산권 보호, 작은 정부, 부정부패와 경제, 민주화와 경제의 상관관계, 문화와 민족성의 허실 등 각종 선입견에도 칼을 들이대 명쾌하게 정리하는 솜씨가 자별하다.
제조업의 긴요성을 새삼 설파하는 대목은 퍽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지식산업과 서비스업을 역설(力說)하는 시대정신에 비춰 보면 역설(逆說)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가난한 나라들이 계획적으로 제조업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는 서비스 부문만을 기초로 해서 부유해진 나라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문판이 먼저 출간된 직후 세계적인 석학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이 무시무시한 책은 ‘현실로서의 경제학’으로 명명돼야 할 것이다. 흔히 통용되는 ‘경제발전의 원리’라는 것이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역사에 비춰볼 때 얼마나 황당한 교리인지를 폭로한다.”(노엄 촘스키) “세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절로 새롭게 만드는 책이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적인 경제학자 반열에 올랐음을 방증하는 ‘뮈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을 받은 장하준에게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으면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역작 ‘불편한 진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구 온난화의 진실을 전파하는 고어의 언어가 기득권층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듯 이 책도 정통파 경제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한 진실로 다가올 게 분명해서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권고를 뿌리친 덕분에 어느덧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한국은 지금 착한 사마리아인일까, 나쁜 사마리아인일까? 이도저도 아닌 보통 사마리아인인일까? 이순희 옮김. 1만4000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원제 Bad Samaritans)’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권하는 부자 나라들에게 이처럼 다그쳐 묻는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부자 나라들에게 서슴없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위선자 딱지를 붙인다.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척하며 그의 돈을 슬쩍해 간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부자 나라들이 스스로 보호무역과 보조금 정책으로 성장했으면서도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인양 들이미는 이중잣대를 준절히 나무란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앞잡이나 다름없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세계무역기구(WTO)에는 ‘사악한 삼총사’란 주홍글씨를 달아주었다.
지은이는 역사적 사례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휘뚜루마뚜루 행동하는 부자 나라들의 협애한 처신에 십자포를 쏘아댄다. 처음부터 이들의 권고대로 했다면 삼성은 아직도 설탕이나 만들고 있을 것이며, 포스코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휴대폰 시장 1위인 핀란드의 노키아 역시 보조금정책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무나 베고 있을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행태는 마치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한다.
장하준은 세계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에게도 화살을 날린다. 프리드먼은 대표작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선진국을 상징하는 렉서스 세상으로 가려면 ‘황금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을 입으라고 권면한다. 올리브 나무 세상의 나라들은 황금구속복이라고 일컫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맞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며.
그렇지만 장하준은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프리드먼의 충고를 따랐다면 지금 렉서스를 수출하는 국민이 아니라 (실크를 생산하는 누에 먹이) 뽕나무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라고 야유에 가까운 위트를 던진다.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을 통해 발전하도록 진정으로 도우려 한다면 부자 나라들은 1950년대~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비대칭적인 보호주의를 용인하고 자국에 대한 보호 수준을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보호정책을 싸고 도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섯 살 난 자기 아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마흔 살 먹은 어른에게까지 보조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수긍한다.
외국인 투자 개방, 공기업 민영화, 재정의 건전성, 지적 재산권 보호, 작은 정부, 부정부패와 경제, 민주화와 경제의 상관관계, 문화와 민족성의 허실 등 각종 선입견에도 칼을 들이대 명쾌하게 정리하는 솜씨가 자별하다.
제조업의 긴요성을 새삼 설파하는 대목은 퍽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지식산업과 서비스업을 역설(力說)하는 시대정신에 비춰 보면 역설(逆說)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가난한 나라들이 계획적으로 제조업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는 서비스 부문만을 기초로 해서 부유해진 나라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문판이 먼저 출간된 직후 세계적인 석학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이 무시무시한 책은 ‘현실로서의 경제학’으로 명명돼야 할 것이다. 흔히 통용되는 ‘경제발전의 원리’라는 것이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역사에 비춰볼 때 얼마나 황당한 교리인지를 폭로한다.”(노엄 촘스키) “세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절로 새롭게 만드는 책이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적인 경제학자 반열에 올랐음을 방증하는 ‘뮈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을 받은 장하준에게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으면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역작 ‘불편한 진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구 온난화의 진실을 전파하는 고어의 언어가 기득권층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듯 이 책도 정통파 경제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한 진실로 다가올 게 분명해서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권고를 뿌리친 덕분에 어느덧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한국은 지금 착한 사마리아인일까, 나쁜 사마리아인일까? 이도저도 아닌 보통 사마리아인인일까? 이순희 옮김.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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