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1-16 15:47:12
▲지식인…스티브 풀러|사이언스북스
무릇 지식인은 소크라테스보다 소피스트들을 본받는 게 낫다고 설파한다면 수긍하겠는가? 석가모니, 공자, 예수와 더불어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소크라테스보다 ‘궤변론자들’을 따르라니 말이나 될 법한가.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 스티브 풀러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오늘날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인의 원형’이라고 우긴다. 소피스트들은 ‘경박한 박식가’ ‘거만한 허풍선이’라는 낙인과는 달리 대중이 험난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 요긴한 지식과 방법론을 양심과 능력에 따라 전수했다는 게 그 이유다.
풀러는 소크라테스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소피스트들을 소크라테스와 비슷하게 대접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이처럼 이채로운 논리를 펴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 자질이 모든 독단론을 거부하는 소피스트들의 자세에 있다는 점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풀러가 쓴 ‘지식인(원제 The Intellectual)’은 소피스트의 복권에서도 보듯이 색다른 지식인론임에 틀림없다. 지식인의 특성과 소양, 책임에 관해 창발적인 마음의 양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 흔한 기존 지식인론에 대한 사상사적 검토나 비판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의 지식인론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조금 특이한 사상가이긴 하지만 선행연구 참조를 금과옥조로 삼는 학자에 속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영국 워윅대학 교수인 풀러는 ‘사회인식론’의 개척자다.
지식인론을 쓰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모델로 삼은 것부터 놀랍다. 그것도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들머리에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친다. 마키아벨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공공연하게 말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성공한 지식인’이라고 칭송한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에 관한 언급은 그걸로 끝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마키아벨리는 본 무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지식인이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인지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 게 의아하다.
명색이 지식인론이라면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규범적 처방전쯤은 내려줄 법하나 그런 것조차 없다. 다만 진정한 지식인이 되는 법을 다섯 가지로 간추린다. 첫째, 판단 능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워라. 둘째, 무슨 생각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 셋째, 어떤 관점에 대해서든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마라. 넷째,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강화하기보다 그것을 균형있게 보충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라. 다섯째, 공공 사안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워야 하지만 일단 자신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나면 정중하게 인정하라.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더 이상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예단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꾼다. 반전(反戰)에서부터 사생활 윤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논급하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은 현대사회의 공론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풀러는 그같은 패배주의를 통박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대가들의 사상을 ‘정신의 원스톱 쇼핑몰’로 이용하면서 지적 생존을 연명하고 있고, 일부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 ‘지식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혐오의 화살을 날린다. 그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외치는 계몽주의의 빛바랜 깃발 같은 것도 은근히 보고 싶어한다.
저자는 ‘지적 자율성’이라는 덕목을 무척이나 아낀다. 지식인이 생각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야생으로, 제멋대로 자라도록 되어 있어서다.
지식인은 ‘오직 진리’가 아닌 ‘총체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언제나 논적들과 백병전을 벌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독려한다. ‘지식인의 무기고에 비판보다 나은 것은 없다’며 ‘침묵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지적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더불어 지식인은 저항의식을 통해 진열대에 놓인 아무 상품이나 사들이기를 거부하는 소비자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지은이는 지식인과 학자를 애써 구별하면서 흥미롭게 비유한다. “대학은 포도원인 셈이고,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와인 생산자의 존재 이유가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있다면 감식가의 존재 이유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지를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책의 멋진 마무리 말도 지식인과 학자의 차이점을 파고든다.
“학자들은 과거를 다른 미래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은 영원히 희망을 놓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도전적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는 지식인의 상반된 역할도 제시한다. 하나는 특정한 관념의 배양을 금지하는 검열관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자극적인 관념 형식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이다. 지식인이 풀어야 할 가장 힘든 과제는 계급과 성, 인종의 구분을 초월해 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갈파하기도 한다.
이 책은 번역자도 실토했듯이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문장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구성 역시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200쪽이 약간 넘을 정도로 얇은 편인데 내용물을 많이 담으려다 보니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2005년 영국의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잡지 ‘뉴 스테이츠먼’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할 만큼 값진 평가를 받는다. 임재서 옮김. 1만6000원
풀러는 소크라테스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소피스트들을 소크라테스와 비슷하게 대접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이처럼 이채로운 논리를 펴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 자질이 모든 독단론을 거부하는 소피스트들의 자세에 있다는 점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풀러가 쓴 ‘지식인(원제 The Intellectual)’은 소피스트의 복권에서도 보듯이 색다른 지식인론임에 틀림없다. 지식인의 특성과 소양, 책임에 관해 창발적인 마음의 양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 흔한 기존 지식인론에 대한 사상사적 검토나 비판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시대정신을 꿰뚫는 뛰어난 지적 감식안과 균형감각, 그리고 총체적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지식인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는가. 40여년전 사르트르(사진)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스티븐 풀러도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꾼다.
지식인론을 쓰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모델로 삼은 것부터 놀랍다. 그것도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들머리에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친다. 마키아벨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공공연하게 말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성공한 지식인’이라고 칭송한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에 관한 언급은 그걸로 끝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마키아벨리는 본 무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지식인이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인지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 게 의아하다.
명색이 지식인론이라면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규범적 처방전쯤은 내려줄 법하나 그런 것조차 없다. 다만 진정한 지식인이 되는 법을 다섯 가지로 간추린다. 첫째, 판단 능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워라. 둘째, 무슨 생각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 셋째, 어떤 관점에 대해서든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마라. 넷째,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강화하기보다 그것을 균형있게 보충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라. 다섯째, 공공 사안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워야 하지만 일단 자신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나면 정중하게 인정하라.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더 이상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예단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꾼다. 반전(反戰)에서부터 사생활 윤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논급하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은 현대사회의 공론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풀러는 그같은 패배주의를 통박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대가들의 사상을 ‘정신의 원스톱 쇼핑몰’로 이용하면서 지적 생존을 연명하고 있고, 일부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 ‘지식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혐오의 화살을 날린다. 그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외치는 계몽주의의 빛바랜 깃발 같은 것도 은근히 보고 싶어한다.
저자는 ‘지적 자율성’이라는 덕목을 무척이나 아낀다. 지식인이 생각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야생으로, 제멋대로 자라도록 되어 있어서다.
지식인은 ‘오직 진리’가 아닌 ‘총체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언제나 논적들과 백병전을 벌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독려한다. ‘지식인의 무기고에 비판보다 나은 것은 없다’며 ‘침묵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지적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더불어 지식인은 저항의식을 통해 진열대에 놓인 아무 상품이나 사들이기를 거부하는 소비자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지은이는 지식인과 학자를 애써 구별하면서 흥미롭게 비유한다. “대학은 포도원인 셈이고,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와인 생산자의 존재 이유가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있다면 감식가의 존재 이유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지를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책의 멋진 마무리 말도 지식인과 학자의 차이점을 파고든다.
“학자들은 과거를 다른 미래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은 영원히 희망을 놓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도전적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는 지식인의 상반된 역할도 제시한다. 하나는 특정한 관념의 배양을 금지하는 검열관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자극적인 관념 형식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이다. 지식인이 풀어야 할 가장 힘든 과제는 계급과 성, 인종의 구분을 초월해 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갈파하기도 한다.
이 책은 번역자도 실토했듯이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문장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구성 역시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200쪽이 약간 넘을 정도로 얇은 편인데 내용물을 많이 담으려다 보니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2005년 영국의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잡지 ‘뉴 스테이츠먼’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할 만큼 값진 평가를 받는다. 임재서 옮김.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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