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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마지막 수업

입력 : 2007-12-07 18:27:45

세계의 명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지막 수업은 색다른 전통을 이어온다. 이 시간에는 그럴 듯한 이론이나 비범한 사례 연구 같은 지식은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펴지도 않는다. 뜨겁기 그지없는 특유의 토론도 없다. 학생들의 질문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일류대의 자긍심을 역설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혜로운 스승의 혜안만 제자들의 가슴으로 퍼져나간다.

교수는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자부심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나’로 살아가라는 따뜻한 충고를 한마디씩 던진다. 일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동창회에는 아예 나가지 말라는 작은 얘기 같은 것도 들려준다. 나무를 태워서 밭을 일구는 화전민처럼 종업원 해고로 수익을 올리는 경영자는 되지 말라고 주문하는 스승도 있다. 교수들은 누구나 마지막 수업시간에 어떤 얘기를 들려줄 것인지 고심을 거듭한다. 대개 스스로의 삶을 통해 얻은 교훈을 준비한다. 지혜는 지식을 능가한다는 파스칼의 고언(古諺)을 상기하면서.

모든 과목의 수업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마지막 수업을 평생 잊지 못한다. 삶의 고비마다 문득 스승의 마지막 수업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에서 MBA 학위를 딴 데이지 웨이드먼이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라는 책을 쓴 것도 이런 감명에서 출발했다.

이와 흡사하게 1992년 39년간의 강단생활을 마감한 김찬국 연세대 신학과 교수의 ‘마지막 수업’에서도 노스승의 역정과 지혜가 그대로 녹아난다. “불의에 항거하는 예언자의 자세만이 역사의 감시자가 될 수 있다”는 노교수의 열강은 참된 인생 그 자체였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이기용 성균관대 법대 교수가 수술을 미루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자마자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이 비감(悲感)과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성균관대 법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수많은 제자들의 애끊는 추모 글에서는 ‘경서(經書)를 가르치는 선생은 만나기 쉽지만 사람을 인도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애탄한 사마광(司馬光)의 심중이 읽힌다. 마지막 순간에야 제자들에게 투병 사실을 알린 이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보노라면 ‘스승은 촛불과 같아서 스스로를 태워 학생들을 계발한다’는 F. 루피니의 명언이 한층 절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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