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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익명의 미학

입력 : 2007-12-28 17:59:42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익명’은 긍정보다 부정의 상징어로 비중을 시나브로 높여간다. 웹 2.0이라는 선진 인터넷은 한층 급격한 익명의 다중 중심 시대를 예보한다. 익명성의 개념에 관한 진화는 7~8할이 인터넷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제 익명성은 ‘가상’과 ‘가짜’의 구분도 모호하게 만든다.

그러잖아도 도회 문화는 익명의 외로움이 겨울 낙엽보다 더 쓸쓸하고 처량하게 보이는 세태다. 도시의 익명성은 범죄를 촉발하는 주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영악한 익명의 시대’란 말도 그래서 나온다. 도시 환경은 필연적으로 익명의 타인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게도 한다.

현대인은 태양의 서커스 ‘퀴담’이 풍유하듯 길모퉁이를 서성대다 총총히 사라지는 ‘익명의 행인’인지도 모른다.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도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명의 공간이 급증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각박한 사회의 익명이 도덕적인 타락을 초청함에도 우리는 익명 자체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에 묵인하기도 한다. 익명성은 이처럼 무섭고도 흥미롭다.

부정적 측면이 짙어가는 ‘익명’은 ‘얼굴없는 천사’로 치환하면 금세 선(善)의 모습으로 살갑게 다가온다. 신학에서도 선행을 표징하는 ‘천사’는 실제로 익명이 더 많다고 한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을 일컫는 4대 천사나 일곱 천사 같은 것들은 실명과 계급을 갖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얼굴도 이름도 없다. 천사의 수가 2016만5572명이라는 신학자가 있는가 하면, 세계 인구의 2배에 해당하는 천사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은 늘 두 명의 수호천사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견해에 바탕한 계산이다. 그렇다면 천사도 늘어나는 셈이다.

전주시 노송동에 해마다 이맘때쯤 등장하는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벌써 여덟 번째다. 엊그제 이름을 알 수 없는 독지가가 현금 2000만원과 돼지 저금통이 든 복사용지 상자를 노송동 사무소에 놓고 갔다고 한다.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실적이 익명 기부의 취약성 탓에 냄비 숫자가 늘어났지만 지난해보다 저조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애발스럽던 터여서 배반하지 않은 ‘얼굴없는 천사’는 익명의 아름다움을 배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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