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3-07 17:24:12ㅣ수정 : 2008-03-07 17:24:38
▲승자독식사회…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 웅진지식하우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는 지난해 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기록했다. 행크스가 계약한 영화 ‘천사와 악마’의 출연료는 물경 455억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장동건이 2004년 영화 한 편의 출연료로 8억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는 달리 10만명이 훨씬 넘는 미국 영화배우들 가운데 12%만이 출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통계지만 그 12% 중에서도 90%는 연간 5000달러 이하의 출연료를 손에 쥔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연예인 지망생들은 웨이터나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꿈을 포기하고 만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체조 금메달을 딴 메리 루 레턴은 한동안 매일 아침 미국인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금메달을 딴 뒤 수백만달러를 받고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로 작은 점수차로 은메달을 딴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한국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한 적도 있다.
이처럼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현상은 이제 어느 나라, 어느 분야든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승자독식현상이 문화·예술·연예, 스포츠, 투자금융업, 학계, 법조계, 의료계 유명인사들의 노동시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긴 사람들이 독과점하는 부와 권력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어느덧 씁쓸한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원제 The Winner-Take-All Society)’는 전세계적인 일등만능주의 현상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13년 전인 1995년 미국 사회의 승자독식시장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린 책이지만 우리 사회의 오늘을 보는 듯하다. 아니 지은이들이 묘사한 생생한 현장은 진도가 훨씬 많이 나가고 있다.
‘승자독식사회’란 용어도 지은이들이 사실상 처음 만들어냈다. 물론 팝그룹 아바가 80년대에 이미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네(The Winner Takes It All)’란 노래를 불렀고, 카지노에서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적용돼 오긴 했다.
승자독식시장을 탄생시킨 핵심 요인으로 저자들은 원거리 통신과 정보기술의 발달을 꼽는다. 컴퓨터가 결정타를 날린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경로의존성은 일등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나타나 승자독식주의를 구조화하고 고착시킨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도 정보화 사회에서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영어의 국제어 시장 독점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믹 씽킹’이란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낯익은 프랭크와 쿡은 흔히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대처-메이저 행정부 때문도 아니며, 노조의 쇠퇴 탓도 아니라고 진단 결과를 내놓는다. 문화적인 요소와 무역의 확대는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회가 가장 곤욕스러운 모순인 형평성과 효율성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긴 하다. 승자독식사회가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는 악순환 때문이다. 저자들은 ‘성공이 성공을 부른다’는 표현도 착안점으로 삼았다.
지은이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승자독식시장의 폐해와 부작용이다. “승자독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최고를 향한 경쟁은 실제로 가장 뛰어난 실력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동시에 두 가지 형태의 낭비를 조장한다. 첫째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둘째는 경쟁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한다.”
저자들은 최고상을 향한 수많은 경쟁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이고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자극하기보다는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 합의를 통해 최고상의 크기를 줄이고 경쟁을 완화해야만 비참한 사회로 추락하지 않게 된다고 충고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승자에게도 독약일 뿐이라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부의 편중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류 대학병, 출판시장의 눈물겨운 베스트셀러 만들기, 유명인사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관심도 승자독식의 문화시장이 낳은 폐해다. 지은이들은 독식을 향한 승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군비경쟁’에 빗댄다.
이 책은 승자독식시장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도 제시한다. 누진세 확대, 소송남발 규제, 의료비 개혁, 교육 혜택 증대, 선수연봉 상한제, 사회안전망, 문화상품에 대한 정부 지원, 조금 덜 일하는 사회 같은 것들이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평등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부터 정부가 지원하라고 우선 순위를 주문한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경쟁을 막는 것은 하수이고, 위험을 동반하며, 해결책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해답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들이 ‘군축협정’으로 일컫는 각종 대책들이 실제론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금 덜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 같은 것은 지금 한국 사회라면 돌팔매의 표적이 될 분위기다.
그렇지만 우리가 ‘승자독식’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10여년 전에 이미 통찰한 것만으로도 혜안이 느껴진다. ‘88만원세대’처럼 승자독식시대를 개탄하고 처방하는 신간이 속속 등단하지만 이 책이 원조나 다름없다. 권영경·김양미 옮김. 1만3000원
이와는 달리 10만명이 훨씬 넘는 미국 영화배우들 가운데 12%만이 출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통계지만 그 12% 중에서도 90%는 연간 5000달러 이하의 출연료를 손에 쥔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연예인 지망생들은 웨이터나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꿈을 포기하고 만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체조 금메달을 딴 메리 루 레턴은 한동안 매일 아침 미국인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금메달을 딴 뒤 수백만달러를 받고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로 작은 점수차로 은메달을 딴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한국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한 적도 있다.
이처럼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현상은 이제 어느 나라, 어느 분야든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승자독식현상이 문화·예술·연예, 스포츠, 투자금융업, 학계, 법조계, 의료계 유명인사들의 노동시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긴 사람들이 독과점하는 부와 권력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어느덧 씁쓸한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원제 The Winner-Take-All Society)’는 전세계적인 일등만능주의 현상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13년 전인 1995년 미국 사회의 승자독식시장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린 책이지만 우리 사회의 오늘을 보는 듯하다. 아니 지은이들이 묘사한 생생한 현장은 진도가 훨씬 많이 나가고 있다.
‘승자독식사회’란 용어도 지은이들이 사실상 처음 만들어냈다. 물론 팝그룹 아바가 80년대에 이미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네(The Winner Takes It All)’란 노래를 불렀고, 카지노에서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적용돼 오긴 했다.
승자독식시장을 탄생시킨 핵심 요인으로 저자들은 원거리 통신과 정보기술의 발달을 꼽는다. 컴퓨터가 결정타를 날린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경로의존성은 일등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나타나 승자독식주의를 구조화하고 고착시킨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도 정보화 사회에서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영어의 국제어 시장 독점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믹 씽킹’이란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낯익은 프랭크와 쿡은 흔히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대처-메이저 행정부 때문도 아니며, 노조의 쇠퇴 탓도 아니라고 진단 결과를 내놓는다. 문화적인 요소와 무역의 확대는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회가 가장 곤욕스러운 모순인 형평성과 효율성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긴 하다. 승자독식사회가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는 악순환 때문이다. 저자들은 ‘성공이 성공을 부른다’는 표현도 착안점으로 삼았다.
지은이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승자독식시장의 폐해와 부작용이다. “승자독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최고를 향한 경쟁은 실제로 가장 뛰어난 실력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동시에 두 가지 형태의 낭비를 조장한다. 첫째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둘째는 경쟁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한다.”
저자들은 최고상을 향한 수많은 경쟁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이고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자극하기보다는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 합의를 통해 최고상의 크기를 줄이고 경쟁을 완화해야만 비참한 사회로 추락하지 않게 된다고 충고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승자에게도 독약일 뿐이라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부의 편중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류 대학병, 출판시장의 눈물겨운 베스트셀러 만들기, 유명인사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관심도 승자독식의 문화시장이 낳은 폐해다. 지은이들은 독식을 향한 승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군비경쟁’에 빗댄다.
이 책은 승자독식시장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도 제시한다. 누진세 확대, 소송남발 규제, 의료비 개혁, 교육 혜택 증대, 선수연봉 상한제, 사회안전망, 문화상품에 대한 정부 지원, 조금 덜 일하는 사회 같은 것들이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평등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부터 정부가 지원하라고 우선 순위를 주문한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경쟁을 막는 것은 하수이고, 위험을 동반하며, 해결책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해답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들이 ‘군축협정’으로 일컫는 각종 대책들이 실제론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금 덜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 같은 것은 지금 한국 사회라면 돌팔매의 표적이 될 분위기다.
그렇지만 우리가 ‘승자독식’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10여년 전에 이미 통찰한 것만으로도 혜안이 느껴진다. ‘88만원세대’처럼 승자독식시대를 개탄하고 처방하는 신간이 속속 등단하지만 이 책이 원조나 다름없다. 권영경·김양미 옮김.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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