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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운명 교향곡

 입력 : 2008-02-29 17:42:43수정 : 2008-02-29 17:42:56
생물학에는 ‘발생운명’이란 게 있다. 배(胚)의 각 부역(部域)이 발생적 변화를 거쳐 특정 조직이나 기관으로 분화하는 것을 일컫는다. 예정운명이라고도 하는 발생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개체 발생 과정에서 비로소 정해진다.

인간은 곧잘 의지의 힘을 부정하고 체념을 통해 ‘정적주의(靜寂主義)’로 빠져들곤 한다. 능동적인 의지를 최대한 억제하고 초인적인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수동적 사고가 정적주의다. 초인적인 힘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운명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 운명의 힘 속에 신의 섭리와 흡사한 의지의 존재를 믿었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을 생각해냈다. 탄생을 지배하고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 일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라케시스, 죽음을 관장하며 생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아트로포스가 그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운명을 극복한다. 베토벤은 운명이 자신의 삶을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 ‘교향곡 5번’을 써내려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1악장을 설명하면서다. 일본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 ‘운명 교향곡’이라는 별칭을 처음 붙인 것도 여기서 착안한 듯하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마친 뒤 가진 서울 공연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선곡한 데는 작은 뜻이 담겼다고 한다. 자린 메타 뉴욕필 사장의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베토벤의 ‘운명’이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현 정세와도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현 정세를 명확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쯤에서 ‘좋은 운명을 끌어들이는 포지티브 에너지’의 저자 주디스 올로프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보자. 정신과 전문의인 올로프는 인간 존재의 무한한 힘이 바로 ‘에너지’의 실체이며, 에너지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조언한다. ‘좋은 운명’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포지티브 에너지’가 눈부신 삶의 비밀인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에서 유명한 아리아 ‘신이여 평화를 주옵소서’의 힘까지 더해 한반도가 ‘평화의 운명’으로 들어서길 기대해도 좋은 때가 시나브로 익어가면 오죽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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