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비만, 우울증도 죄다?

입력 : 2008-05-02 17:34:32수정 : 2008-05-02 17:34:37

▲죄의 역사…존 포트만 | 리더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예의 독설로 개탄한다. “기독교인들은 자나 깨나 오로지 죄, 죄, 죄, 죄만 부르짖는다. 평생을 죄라는 굴레에 옭매여 끌려 다녀야 하는 삶이라니, 이 얼마나 가련하고 어리석은 짓인가”라고.

하긴 서구 역사와 문화에 어김없이 관류하는 가톨릭과 기독교는 죄를 빼놓고선 존립할 수 없다. 그것도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의 하나이기도 하다. 해서 시대마다 종교와 철학은 인간의 기본적 체험에 속하는 죄의 신비를 해석하려 들었다.

종교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포트만은 ‘죄의 역사’(원제 A History of Sin)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죄도 진화한다는 명제에 천착한다. 원제에서 드러나듯 법률적 범죄(crime) 아닌 종교적·도덕적 죄(sin)의 역사가 책을 관통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마사치오의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1427년경).

시대에 따라 신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듯이 죄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중죄로 치부됐던 고리대금업이 지금에 와서는 일정 수준 용인 받고 있는 반면 노예제도처럼 과거엔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행위나 제도가 오늘날에는 심각한 죄로 여겨지는 것이 좋은 예다.

과학과 의학이 우리에게 죄에 대한 낡은 사고를 버리도록 종용한다. 덕분에 특정한 행위와 태도가 죄의 오명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수음이 적절한 사례다. 수음을 금지하는 가톨릭은 시험관 수정의 이점을 스스로 포기할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성관계에 대한 엄격한 기준도 마련하기 어렵게 한다. 고리대금업이나 수음이 그렇듯 머지않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죄의식이나 반대 의견도 줄어들 게 분명하다고 포트만은 단언한다.

지은이는 2001년 9·11 테러사건이 죄의 역사에서 새로운 분수령이 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9·11은 역사에서 1960~90년대의 도덕적 해이에 경종을 울린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9·11 이후 서구 사회는 훨씬 종교적인 사회가 됐다는 게 요체다.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대 주요 종교가 한층 조직화되고 화려하게 귀환하면서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죄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는 세상이 될 것으로 예단한다.

포트만은 ‘죄의 진화’와 더불어 ‘죄의 피로’와 ‘속죄의 피로’라는 신 개념을 유용하게 동원하고 있다. 오늘날의 죄는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그 범주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이 ‘죄의 진화’이며 모호함 때문에 그 범주를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 ‘죄의 피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죄가 갈수록 약화되고 격하되는 것은 인간이 지나칠 정도로 죄와 친숙해졌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언론이 시간마다 쏟아내는 범죄 뉴스로 인해 ‘죄의 피로’가 ‘속죄의 피로’로 이어진다. 미국인 상류층이 텔레비전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듯이 착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빠져든 사람들의 반성에 무덤덤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바로 ‘속죄의 피로’ 현상이다.

‘속죄의 피로’는 ‘죄의 피로’의 1차적인 징후다. 속죄는 더 이상 얼음판 위를 돌아다니며 마법처럼 스케이트 날 자국을 말끔히 지워주는 잼보니(스케이트 링크용 트랙터형 정빙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포트만은 진단한다.

저자는 유죄 추정을 성립시키는 원죄가 오늘날 서구 사회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유죄판결이 날 때까지는 누구나 무죄’라는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13가지의 현대적인 죄 목록을 새롭게 제시한다. 환경 파괴, 인생의 실패(인간의 잠재력을 사장시키는 행위), 비만, 우울증, 아동 학대, 아내 학대, 성희롱,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동성애 공포증, 할례, 인종 차별, 배타적인 종교관, 음주운전 등이 그것이다.

인생 실패의 전형인 시간 낭비가 죄악이라는 점은 아이작 뉴턴이 자신의 잠재력 계발에 게을렀다면 서구 사회의 진보가 훨씬 더뎠을 것이라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비만이 도덕적 문제와 죄악으로 비약하고 있는 것은 게으름과 자기 통제력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까닭에서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음주운전 사고가 기껏해야 부끄러운 행동이나 불행한 사건쯤으로 치부되었으나 새로운 죄로 진화하는 상황 변화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점이다. 전형적인 선진국형 질병인 우울증이 새 죄목으로 추가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와 차별·아동학대는 엄연한 범죄 행위가 됐다.

겸손과 유머는 물론 위선까지도 죄의 치유나 도덕적 자기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시각은 이채롭다. 위선이 ‘학습된 무기력감’에 비해 조금 더 나쁠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도덕적 방향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나친 죄의식은 냉소주의로 흐르기 쉽지만 미국인들의 건강한 죄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음을 지은이는 경고한다. 죄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은 신이 아닌 인간이 쥐고 있음을 잊지 말 것도 당부한다.

책의 한계는 서구 종교중심의 ‘죄의 역사’인 점과 어쩔 수 없이 추상적인 대책이다. 서순승 옮김.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