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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올림픽 요리

입력 : 2008-07-18 18:00:01수정 : 2008-07-18 18:00:02

“중국이 오랫동안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요리에 모든 정력을 바쳤기 때문이다.” 중국 대표작가의 한 사람인 왕멍(王蒙)이 지난해 고려대에서 특별 강연을 했을 때 들었던 흥미로운 대목 가운데 하나다. 왕멍의 얘기는 사실 유명한 린위탕(林語堂)의 풍자를 인용한 것이다.

왕멍이 한 독일인에게 이 말을 들려주었더니 이런 해학(諧謔)이 돌아왔다고 한다. “독일은 과학기술이 너무 발전해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다.” 실제로 독일은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특화 요리가 별로 없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독일에선 요리에 관한 유머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세계요리올림픽대회가 1900년부터 4년마다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리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역설적이다.

중국의 요리문화는 린위탕의 또 다른 말과 맥이 닿는다. “우리 중국 사람은 물고기를 보면 잡아먹을 생각부터 먼저 한다. 서양인은 그것의 발생, 생태를 알고 싶어 하는데 말이지.” 중국에선 예부터 과부를 중매하면서 “예쁘냐”고 묻기보다 “요리를 잘 하느냐”고 먼저 확인하는 관례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의 음식문화는 ‘사람은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여긴다(以食爲天)’라는 한서(漢書)의 한 마디로 끝난다. 중국인은 의식주행(衣食住行) 4대 현안 중에서 옷은 남루해도 별로 상관없고, 집은 좀 옹색해도 문제가 없으며, 도로는 진창이어도 무관하지만, 먹는 것은 절대로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닌 듯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각국 정상들과 선수, 관광객들을 위한 ‘올림픽 요리’도 중국의 전략 종목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세계적인 게 중국 요리이지만 호텔과 음식점들은 올림픽 특별 메뉴까지 선보일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이름 난 음식점 메뉴판에는 ‘야구 옥수수순’ ‘투창 죽순’ ‘원반 표고버섯’ ‘탁구 오리 간 소스’ ‘테니스 샐러드’ ‘쇼트트랙’ 등 올림픽 경기종목 이름이 들어간 희귀·특이 요리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은 우주를 먹는다”고 했던 린위탕의 명언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이. 베이징 올림픽은 이래저래 강대국 중국에 국력 과시의 무대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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