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0-17 17:49:40ㅣ수정 : 2008-10-17 17:49:43
비너스의 유혹: 성형수술의 역사…엘리자베스 하이켄 | 문학과지성사
입학시험이나 사원채용 면접 때 잘 생긴 사람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은 공식적인 금기사항이다. 비민주적이고 평등권 침해로 지탄받아 마땅한 소송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다르다.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날씬한 사람일수록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연구 결과가 2005년 미국에서 보도됐을 때 논란의 소지가 있으면서도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연예인같이 외모가 중요한 직업이 아닌 일자리에도 외모와 보수의 상관관계가 널리 적용되고 있음을 실제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미모가 계량화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사실은 막연하게나마 ‘설마’의 영역에 속했다.
외모가 수입을 결정한다는 보도는 그리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텍사스 오스틴대 경제학자인 대니얼 해머메시와 제프 비들 교수는 이미 1993년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의 수입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5% 정도 많으며, 못 생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7~9% 적은 월급을 받는다는 점을 발견해냈다.
세계적으로 광풍에 휩싸인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일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비너스의 유혹: 성형수술의 역사>(원제 Venus Envy: A History of Cosmetic Surgery·문학과지성사)에서 성형수술이 의학과 소비문화의 독특한 연결지점에 놓여 있음을 밝혀낸다. 하이켄은 흥밋거리로서의 성형수술이 아니라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거기에 담긴 20세기 미국사회사를 광범위하게 찾아 나섰다.
‘더 팽팽한 얼굴, 커다란 가슴, 날씬한 허벅지’로 대표되는 성형수술은 여성들의 욕망과 허영을 먼저 상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대적 성형수술은 1차 세계대전에서 다친 남성들을 위한 재건 성형에서 비롯됐다. 하이켄은 성형수술이 의학지식, 레저, 돈의 복합체로서 20세기 초 미국 무대에 등장했음을 고증한다. 미용 성형이 대중의 마음 속에서 자기현시의 문화적 현상과 단단하게 얽혀버린 과정을 캔 결과물이다.
성형수술이라는 낱말에는 ‘아름다움의 상품화’라는 따가운 시선이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지만 그 역사의 뒤안길에는 미의 상품화만으로 잴 수 없는 복잡미묘한 사회문화적 함의가 숨어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20세기 초 미용외과는 돌팔이나 사기꾼의 영역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1921년 성형외과의사협회가 탄생한 뒤 한동안 성형외과는 독립 전문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용 수술이 성형외과에서 의학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데는 심리학의 공헌이 지대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열등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에게는 성형수술이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칼을 사용하는 정신의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외모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며 이 경우야말로 미용수술이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이론적 틀을 찾았다. 많은 이들이 외모가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성공의 핵심요소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성형외과의사들은 정신과 의사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열등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레 방대한 환자집단을 재생산해냈다.
그러던 미용 수술은 젊음을 되찾으려는 욕구를 지닌 백인 중산층 중년여성들의 열풍 속에 1950년대부터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즐길 여유를 가진 중년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통해 나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을 재생하려 했다. 수술 후 남편과 이혼한 뒤 스물다섯 살 먹은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멕시코로 도피한 상류층 중년여성의 일화도 여기서 등장한다. 점차 남성들도 이 대열에서 예외로 남아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오늘날에는 성형수술 환자의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까지 확산돼 ‘성형수술 권하는 사회’가 됐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문제는 성형수술의 또 다른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앵글로색슨계 아닌 모든 인종은 외모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는 가수 마이클 잭슨을 상징적 인물로 든다. 흑인인 잭슨의 성형 얼굴이 상징하는 것은 부끄러운 미국 역사의 일면이라고 지은이는 아프게 꼬집는다. 유대인들의 코, 동양인들의 눈에 대한 콤플렉스도 흡사하다. 1950년대 초 백인 남성과 서울에서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았던 한국인 여성의 일화도 웃지 못할 사례의 하나로 제시한다.
여성들의 가슴 축소·확대 수술에 얽힌 에피소드와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미용성형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여성참정권 운동, 남녀동등권 헌법 수정안 투쟁, 페미니즘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지은이는 새로운 미용문화가 민주주의적 열망으로부터 유래했고 미용문화를 ‘자기계발’이라는 미국적 민주주의 전통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용성형은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대체로 미용 성형수술에 대해 가치중립의 기조를 유지한다. 다만 결론 부분에서 약간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미용성형에는 개인적 변모의 희망, 재창조와 재발명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각인돼 있지만,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의료와 문화적 가치가 한데 뒤엉켜 더 큰 차원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신념을 파괴하는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권복규·정진영 옮김. 2만원
입학시험이나 사원채용 면접 때 잘 생긴 사람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은 공식적인 금기사항이다. 비민주적이고 평등권 침해로 지탄받아 마땅한 소송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다르다.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날씬한 사람일수록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연구 결과가 2005년 미국에서 보도됐을 때 논란의 소지가 있으면서도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연예인같이 외모가 중요한 직업이 아닌 일자리에도 외모와 보수의 상관관계가 널리 적용되고 있음을 실제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미모가 계량화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사실은 막연하게나마 ‘설마’의 영역에 속했다.
외모가 수입을 결정한다는 보도는 그리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텍사스 오스틴대 경제학자인 대니얼 해머메시와 제프 비들 교수는 이미 1993년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의 수입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5% 정도 많으며, 못 생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7~9% 적은 월급을 받는다는 점을 발견해냈다.
세계적으로 광풍에 휩싸인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일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비너스의 유혹: 성형수술의 역사>(원제 Venus Envy: A History of Cosmetic Surgery·문학과지성사)에서 성형수술이 의학과 소비문화의 독특한 연결지점에 놓여 있음을 밝혀낸다. 하이켄은 흥밋거리로서의 성형수술이 아니라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거기에 담긴 20세기 미국사회사를 광범위하게 찾아 나섰다.
‘더 팽팽한 얼굴, 커다란 가슴, 날씬한 허벅지’로 대표되는 성형수술은 여성들의 욕망과 허영을 먼저 상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대적 성형수술은 1차 세계대전에서 다친 남성들을 위한 재건 성형에서 비롯됐다. 하이켄은 성형수술이 의학지식, 레저, 돈의 복합체로서 20세기 초 미국 무대에 등장했음을 고증한다. 미용 성형이 대중의 마음 속에서 자기현시의 문화적 현상과 단단하게 얽혀버린 과정을 캔 결과물이다.
성형수술이라는 낱말에는 ‘아름다움의 상품화’라는 따가운 시선이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지만 그 역사의 뒤안길에는 미의 상품화만으로 잴 수 없는 복잡미묘한 사회문화적 함의가 숨어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20세기 초 미용외과는 돌팔이나 사기꾼의 영역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1921년 성형외과의사협회가 탄생한 뒤 한동안 성형외과는 독립 전문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용 수술이 성형외과에서 의학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데는 심리학의 공헌이 지대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열등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에게는 성형수술이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칼을 사용하는 정신의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외모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며 이 경우야말로 미용수술이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이론적 틀을 찾았다. 많은 이들이 외모가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성공의 핵심요소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성형외과의사들은 정신과 의사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열등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레 방대한 환자집단을 재생산해냈다.
그러던 미용 수술은 젊음을 되찾으려는 욕구를 지닌 백인 중산층 중년여성들의 열풍 속에 1950년대부터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즐길 여유를 가진 중년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통해 나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을 재생하려 했다. 수술 후 남편과 이혼한 뒤 스물다섯 살 먹은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멕시코로 도피한 상류층 중년여성의 일화도 여기서 등장한다. 점차 남성들도 이 대열에서 예외로 남아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오늘날에는 성형수술 환자의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까지 확산돼 ‘성형수술 권하는 사회’가 됐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문제는 성형수술의 또 다른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앵글로색슨계 아닌 모든 인종은 외모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는 가수 마이클 잭슨을 상징적 인물로 든다. 흑인인 잭슨의 성형 얼굴이 상징하는 것은 부끄러운 미국 역사의 일면이라고 지은이는 아프게 꼬집는다. 유대인들의 코, 동양인들의 눈에 대한 콤플렉스도 흡사하다. 1950년대 초 백인 남성과 서울에서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았던 한국인 여성의 일화도 웃지 못할 사례의 하나로 제시한다.
여성들의 가슴 축소·확대 수술에 얽힌 에피소드와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미용성형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여성참정권 운동, 남녀동등권 헌법 수정안 투쟁, 페미니즘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지은이는 새로운 미용문화가 민주주의적 열망으로부터 유래했고 미용문화를 ‘자기계발’이라는 미국적 민주주의 전통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용성형은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대체로 미용 성형수술에 대해 가치중립의 기조를 유지한다. 다만 결론 부분에서 약간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미용성형에는 개인적 변모의 희망, 재창조와 재발명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각인돼 있지만,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의료와 문화적 가치가 한데 뒤엉켜 더 큰 차원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신념을 파괴하는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권복규·정진영 옮김.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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