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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아바이마을

입력 : 2009-01-23 17:01:28수정 : 2009-01-23 17:01:31

“아바이, 갯배 타고 으디 다녀옴메?”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강원 속초시 청호동의 명물은 갯배다. 이 배는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다. 키도 동력도 없다. 사공이 따로 없음은 물론이다. 이 특이한 나룻배는 ‘아바이마을’로 더 잘 알려진 이곳 실향민 공동체의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들 떠도는 삶을 끌고/ 아침저녁 삐걱거리며/ 청호동과 중앙동 사이를 오간 게 아니고/ 마흔 몇 해 동안 정말은/ 이북과 이남 사이를 드나든 것이다/ 갈매기들은 슬픔 없이도 끼룩거리며 울고/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오줌을 깔기며 크는 동안/ 세계의 시궁창 같은 청초호에 아랫도리를 적시며/ 우리는 우리들 피난의 나라를 끌고/ 마흔 몇 해 동안 정말은/ 우리들 살 속을 헤맨 것이다.’

‘갯배’와 ‘청호동’이란 소재로 여러 편의 시를 쓴 이상국 시인의 <갯배 1>은 아바이마을의 신산한 삶과 귀향의 염원이 서려 있다. 이제는 조양동과 이어지는 도로가 생겨 교통도 다소 편리하게 됐지만 갯배는 여전히 명물의 하나다.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부쩍 늘어날 때가 있었다.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기대에 부풀어 마음이 들뜨고, 그 반대면 실의를 감추지 못하는 곳. 그래서 정상회담 같은 큼지막한 남북관련 행사가 열리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찾아와 실향민의 반응을 살피는 곳이 아바이마을이다. 서울 용산 해방촌, 전북 김제 용지농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월남인 정착촌의 하나여서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월남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대다수 월남인들이 통념과 달리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니고 분단과 반공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연구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실향의 애환이 서려 있는 아바이마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속초항 방파제 연장공사로 2010년부터 아바이마을의 진입도로가 끊겨 속초시가 주민들의 집단이주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이곳은 한때 6000여명이 살았으나 2세대들의 객지 행으로 인구도 줄고 옛 모습도 많이 잃어가고 있다. 대부분 이주를 찬성한다지만 아바이마을 사람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구한 실향인 셈이다. 이번 설도 이들에게는 망향의 슬픔을 달래야 하는 명절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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