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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불신 사회의 그늘

입력 : 2009-02-06 17:54:24수정 : 2009-02-06 17:54:26

다음주 탄생 200주년을 맞는 찰스 다윈의 자연진화론에서 파생된 사회진화론은 인류 사회의 본질을 애오라지 경쟁과 적자생존으로 인식한다. 허버트 스펜서, 월터 배젓 등이 대표하는 사회진화론은 강대국 논리와 식민 지배의 합리화 도구로 이용되는 바람에 강력한 역풍을 맞았다. 결정적으로는 협력과 선의가 존재하는 사회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최근 들어 학자들은 협력과 신뢰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한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새로운 이론의 핵심은 경쟁이 아닌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은 잔혹한 양상을 띠거나 적대적일 때도 있지만 협력적이고 조정적인 사례가 더 많은 주장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를 무자비한 정글이나 초원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화가 이루어지는 자연환경’이라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 경우 경쟁이라는 것도 인간이 지닌 더 넓은 범주의 수월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에 불과하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신뢰다. 신뢰는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열쇠다.

미국 클레어먼트대 대학원의 폴 자크 박사팀은 일상생활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신뢰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누군가 자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체의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인간의 뇌가 긍정적 사회 신호를 절묘하게 받아들여 해석하고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의 조사결과 우리 젊은이 절반 이상이 이민을 떠올리는 등 현실에 강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의 경계를 넘어선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불신감이 두드러진 점은 또 하나의 경종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도 불안·불신·불만의 ‘3불사회’를 개탄한 적이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위기의 본질은 다름 아닌 불신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바로 신뢰의 차이라고 지적했던 것을 다시 연상하게 한다. 정권 담당자들과 사회지도층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설득은 위협보다 강하고 신뢰는 설득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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