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월가의 돈 잔치

입력 : 2009-01-30 17:39:11수정 : 2009-01-30 17:39:14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조찬 강연회 때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한 미국인사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라는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런던 리보 금리보다 더 비싼 금리를 한국에 요구한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의 대답은 냉소적인 풍자로 돌아왔다. “시장은 시장일 뿐입니다. 월가엔 ‘도덕성 해이’라는 말이 진리로 통합니다.”

그 때만해도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월가의 영웅’으로 불리던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회장이 2003년 9월 거액의 상여금 파동으로 사임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9·11테러 사건 이후 미국언론에서는 영웅담을 쏟아냈다. 그라소 회장도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벼랑 끝의 위기 상황에서 ‘뉴욕 증시를 보호했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다. 사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뉴욕 증시 개장을 알리는 벨을 누른 것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는 1억4000만달러(약 1800억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연봉과 퇴직금으로 말미암아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물러났다.

그동안 월가의 돈 잔치는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동성이라는 음악이 멈추면 결국 모든 것이 끝나겠지만 음악이 나오는 한 우리는 리듬을 타며 춤을 춰야 한다.” 월가의 호시절에 찰스 프린스 전 씨티은행 최고경영자가 했던 말이 실감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마저 월가와 더불어 즐겼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월가의 금융인들이 지난 연말에도 총 200억달러의 상여금을 챙긴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더욱 가관인 것은 보너스를 받은 사람들의 절반이 액수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무책임의 극치”라고 일갈하며 철퇴를 가할 태세다.

그러잖아도 버나드 매도프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월가의 도덕성이 땅바닥에서 발길에 차일 지경인데 더욱 치명타가 되고 있다. ‘부자들의 사교클럽’이라는 다보스 포럼에서조차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던 터이다. ‘영혼이 있는 투자’와 ‘자선의 대명사’로 월가에서 존경받다 지난해 타계한 존 템플턴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이라도 칠 것만 같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우주 교통사고  (0) 2009.02.13
[여적]불신 사회의 그늘  (0) 2009.02.06
[여적]아바이마을  (1) 2009.01.23
[여적]국립현대미술관  (0) 2009.01.16
[여적]은행의 역설  (0) 2009.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