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은행의 역설

입력 : 2009-01-09 17:54:24수정 : 2009-01-09 17:54:27

‘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광고를 하기 시작했던 모건스탠리의 첫 카피 문구다. 세계 최고 금융업체의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모건스탠리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이 광고 카피야말로 자신들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는 어느 투자은행도 따라올 수 없는 윤리성과 영업 실적을 오랫동안 뽐냈다.

론 처노가 쓴 <금융제국 JP모건>에는 이런 일화도 나온다. 모건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12년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미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한 내용이다. 새뮤얼 언터마이어: 빌리는 사람의 자금이나 재산을 바탕으로 대출해 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모건: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언터마이어: 자금이나 재산 이전에 말이지요? 모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합니다. 돈으로 인격을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채권을 가지고도 저한테서 돈을 빌릴 수 없습니다. 언터마이어: 하지만 제 요지는 은행이 채권의 가치를 유지해 줘야 할 법적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모건: 은행은 법적 책임 말고 더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도덕적 책임이 그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50년대 미국 코미디언들은 “모건 은행의 창구 직원들은 100만달러짜리 미소를 갖고 있지만 100만달러를 지닌 고객에게만 웃어준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많이 해 주라며 돈을 풀고 은행들을 독려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초단기로 돈을 굴리며 머니게임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고, 기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국가가 중소기업의 대출보증까지 서 주겠다고 했지만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서민의 눈으로만 보아도 그렇다. 순수의 상징인 자연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조차 이런 명언을 남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은행이란 날씨가 좋을 때 우산을 빌려 주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산을 돌려 달라고 하는 곳이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아바이마을  (1) 2009.01.23
[여적]국립현대미술관  (0) 2009.01.16
[여적]불확실성  (1) 2009.01.02
[여적]알로하 정신  (0) 2008.12.26
[여적]겨울나기  (0) 200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