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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불확실성

입력 : 2009-01-02 17:46:59수정 : 2009-01-02 17:47:01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들인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현대세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불확실성’을 든다. 냉전 종식 이후 격변한 지구촌을 성찰하기 위해 설정한 개념이 불확실성이다. 기든스는 더 이상 주인으로서의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본다. 예측불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위험의 악순환은 늘어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사고를 없애자’가 아니라 ‘사고를 줄이자’라는 표현밖에 쓸 수 없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벡은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합리적 통제와 제도를 동원하지만 불확실성만 더욱 증대되는 것이 바로 위험사회라고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이 모두 ‘인위적 요소’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실수와 증오, 탐욕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2년 전 타계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로 말미암아 모든 분야에서 생겨나는 과잉현상이 불확실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불확실성은 지구화에 의해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현상만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교통수단의 세계화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에도 대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차원이 다소 다르지만 존 K 갤브레이스가 1975년에 출간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지적했던 것은 오늘날의 불확실성에 비하면 ‘확실성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프랑스 석학 에드가 모랭의 수사처럼 ‘어둠과 안개의 세계’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까.

파이낸셜타임스는 2009년을 관통할 열쇳말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미국 경제전문 인터넷사이트 마켓워치도 국제 투자시장의 새해 화두는 단연코 ‘불확실성’이라고 전했다. 그러잖아도 ‘불확실성의 시대’인데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 불확실성이 한번 더 포개진 느낌이다. 누구나 안정된 세계와 질서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삶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삶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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