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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성격장애가 스타를 만든다?

입력 : 2009-04-03 17:37:14수정 : 2009-04-03 17:37:16

ㆍ감정조절 불능·충동적인 행동 성향
ㆍ경쟁은 자극제…추진력이 되기도
ㆍ슈퍼스타 30인 심리 흥미롭게 접근

▲스타는 미쳤다 …보르빈 반델로 | 지안

대중의 갈채와 환호작약을 먹고 사는 스타들에게는 화려한 조명이나 명성과는 달리 기구한 삶과 자살이 유독 어른거린다. 이들의 이면을 훔쳐보면 정상적인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외려 어렵다. 대부분 약물·알코올 중독, 우울증, 불안증세에 시달리거나 섹스 스캔들, 폭력, 낭비벽 같은 기행으로 언론을 장식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태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자 아널드 루드빅의 연구에서 이 같은 현상이 입증된다. 루드빅은 각 예술 분야를 대표하는 유명인 1000여명의 전기를 정신병적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그는 성격장애 문제에 관한 한 가수, 배우 같은 공연예술 종사자의 숫자가 단연 앞선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특히 음악가들에게서는 술, 마약 문제가 가장 많이 나타났지만 우울증, 자살충동, 성적 장애, 연기 중독도 대부분 관찰됐다. 시인과 소설가들의 3분의 1에서 성격 장애가 나타났다는 영국 심리학자 펠릭스 포스트의 분석보고서도 부쩍 눈길이 간다.

음악가나 배우처럼 자신의 성공을 무대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계통의 예술가들이 작곡가나 작가처럼 창작의 열매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예술가들에 비해 ‘경계성 성격장애’ 증상이 훨씬 더 많다는 점도 이채롭다.

독일 정신병리학자인 보르빈 반델로 괴팅겐 의대 교수는 심리적 질환과 성격장애가 스타나 탁월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역설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약간 과장하면 스타를 만든 것은 성격장애였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천재에게서 광기가 발견되는 것과 흡사하다. 스타와 성격장애가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로비 윌리엄스, 휘트니 휴스턴, 에디트 피아프, 지미 헨드릭스에서부터 심지어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반델로가 제시한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불안증세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아온 반델로는 <스타는 미쳤다>(원제 Celebrities)에서 30여 슈퍼스타들의 빼어난 예술성 뒤에 가려져 있는 비극적 인생을 정신의학적으로 해부했다.

세계적인 가수 잭슨은 ‘경계성 성격장애’의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스타다. 잭슨은 극단적인 자아도취, 파트너 관계의 문제, 자기 비판력 부족, 신체 감각 장애, 중독증, 강박증 등 온갖 증후군을 고루 지녔다. J M 베리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피터 팬처럼 어른이 되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소아애호증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먼로도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언제나 불행이란 단어와 씨름해야 했다. 먼로의 어린 시절은 트라우마의 연속이었다. 다른 스타들도 대개 문제 많은 유년기를 보낸 것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여러 심리치료사에게 많으면 일주일에 다섯 번까지 치료를 받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일흔이 다 된 제작자와 잠자리를 갖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많은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너무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계성 성격장애’가 20세에서 30세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추정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분류법에 따르면 성격장애는 세 개의 상위그룹과 아홉 개의 세부군으로 나뉜다. 상위그룹은 ‘불안장애’ ‘괴상하고 엉뚱한 장애’ ‘극적·감정적·변덕스러운 장애’가 그것이다. ‘불안 장애’에는 ‘불안-기피성’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다. ‘괴벽, 엉뚱한 성격장애’는 ‘편집성’ ‘분열성’ ‘분열증 유형’으로 세분한다. ‘극적, 감정적, 변덕스러운 장애’에는 나르시시즘으로 불리는 자아도취성, 연극성, 일명 사이코패스인 반사회성, 경계성 성격장애 등 네 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성격장애는 대부분 ‘경계성 성격장애’다. 이는 가장 심각하고 치료하기 힘든 증상인 데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안정한 대인관계, 감정조절 불능, 충동적인 행동 성향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경계성 성격장애자 열 명 가운데 한 사람 꼴로 자살을 선택한다. 저자는 음악 비즈니스가 주먹다짐까지 벌여야 하는 무자비한 사업이어서 경쟁자의 목에 잔인한 무기를 들이대야 할 때도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범죄적 에너지’는 강인한 자아도취적 동기부여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타들이 별난 행동을 벌이면서 열정을 발산하는 것은 금지된 환상의 대리만족을 요구하는 대중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스타들은 ‘성취감이란 이름의 마약’을 마시며 자란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불안증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극단적인 경쟁에서 스스로를 다그쳐 추진력을 제공해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은이는 예술과 심리적 질병을 연관지어 살펴보는 게 스타나 예술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 때문에 탁월한 예술가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쉽지 않은 주제인 정신분석을 다루지만 글의 전개는 더없이 흥미만점이다. 낯익은 스타들의 정신적 이면을 조곤조곤 풀어나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중친화적이고 감칠맛 나는 글쓰기로 인해 책을 들추면 중도에 놓기 쉽지 않다. 엄양선 옮김.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