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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사랑의 쌀독’

입력 : 2009-03-13 17:48:33수정 : 2009-03-13 17:48:35

한쪽에서는 비만을 염려하며 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경제위기로 끼니마저 걱정하는 양극화가 날로 더해가니 세상이 살천스럽다.

선인들은 쌀독 바닥 긁을 때가 가장 겁난다고 했다. ‘쌀독에 거미줄 친다’는 속담이 나올 때쯤이면 애옥살이는 갈 때까지 다 간 것이다. 쌀독이 차 있으면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 선조들이다.

박희선 시인의 ‘빈 쌀독’은 애타는 심사가 측은하다 못해 차라리 은은하다. “오래된 빈집 마당에/금이 간 쌀독 하나가 하늘을 향하여 운다…가난한 굴뚝의 저녁때가 되면/키 작은 안주인은/깊은 쌀독에다 상반신을 묻고/바가지로 바닥을 긁었다…어느 해 겨울에는/하느님께서 쌀독을 들여다보시고/흰눈보다 부드러운 햅쌀을/두 말가웃이나 이웃 몰래 담아주시었다(하략).”

김계반 시인의 ‘항아리’는 빈 쌀독의 허기에서 연민지심이 잔뜩 현현한다. “비어있는 줄 알면서도 손 넣어/한숨만 한 바가지 퍼내고 뚜껑 덮는/빈 쌀독 배가 부르다…/봄볕에 마른버짐 핀 개구쟁이들 얼굴이/거뭇거뭇 뜨는 나물죽사발 속을/송사리 잡을 적 물풀 헤적이는 종아리처럼/숟가락 첨벙거리는 두레상/엄마는 왜 안 드시냐고 아이들 물을 때마다/그때마다 배부르다 대답하는/엄마는, 둥두렷 보름달 같은 쌀독이었다.”

전쟁의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애처로운 모성을 그린 최정희의 단편소설 ‘정적일순(靜寂一瞬)’에서는 절통함을 넘어 담담한 허무가 묻어난다. “쥐가 먹을까봐 독에다 넣어둔 쌀이 자리가 났다. 한 독만이 아니고 세 독에 다 자리가 났다. 쌀독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의 쌀독’이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강퍅한 세상을 그나마 살갑게 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지역을 가리지 않는 게 한층 상서롭다. 쌀독의 이름부터 따사로운 ‘사랑의 화수분’이다. 아무리 퍼가도 줄지 않는, 설화 속의 보물단지 화수분 같은 ‘요술 쌀독’을 만들어주는 이웃의 마음들이 더없이 갸륵하다.

부박한 언행으로 서민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정치인과 지도자들에 비하면,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자분자분 정이 넘치는 이들이야말로 ‘우아한 빈자(貧者)’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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