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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장관의 복장

입력 : 2009-03-06 17:55:43수정 : 2009-03-06 17:57:23

옷차림에 관한 우화 한 토막. 어떤 나라의 현자(賢者)가 누더기를 입고 읍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이를 발견하고 은근히 나무랐다. “옷이 그게 뭔가. 자네는 창피하지도 않나?”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무슨 소리, 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괜찮다네.” 다음날이었다. 현자는 자기 마을에서 역시 누더기를 입고 활보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참지 못하고 또 한 마디 해댔다. “뭐야, 자네 마을에서도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나?” 현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긴 누구든 나를 다 아니까 괜찮다네.”

옷차림은 대개 그 사람의 성격, 습관, 개성, 사회적 위상, 경제 상황을 웅변한다. 흔히들 멋쟁이는 옷을 입지 않고 스타일을 입는다고 한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이를 뒷받침하는 말을 남겼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다음주부터 작업복을 입고 일하겠다고 선언해 여기저기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뉴질랜드 방문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왜 농림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고 다니느냐”는 한 마디를 듣고 나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탓이다. 야당 대변인은 “옷을 갈아입으라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말에 화들짝 놀라 바로 옷을 갈아입은 장관을 보니 유신·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쏘아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네티즌들에게 더없이 좋은 안줏거리로 떠올랐다. 이제 곧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복, 국방부 장관은 군복, 노동부 장관은 근로자 복장,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의사 가운, 법무부 장관은 법복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할 것 같다는 등 풍자와 해학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농업이 살아 꿈틀거릴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것도 실용주의라면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는 비아냥거림도 등장한다. 덩달아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농업 살릴 걱정보다 옷차림 걱정으로 머리를 싸매게 생겼다.

불현듯 열흘 전쯤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 공무원들에게 튀는 헤어스타일과 지나치게 화려한 색깔의 옷을 금지하는 ‘복장 지침’이 내려진 뒤 한 서방 언론이 덧붙인 촌평이 생각난다. “정저우시는 패션 스타일보다 농업의 미래상과 철도역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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