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01 17:40:10ㅣ수정 : 2009-05-01 17:40:11
ㆍ日 사회운동가가 목격한 ‘불안정계층의 실상과 절규’ 생생히 담아
성난 서울-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 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 꾸리에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이 구호를 들으면 누구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먼저 연상할 것이다.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있을 도발적인 선언의 ‘사촌’을 떠올리면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매도하기 십상일지도 모른다.
이 구호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는 30대 중반의 일본 여성 아마미야 카린은 여간 특이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스무살 때 펑크록 밴드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한 극우파 가수였다. 거리에서는 총을 겨눠들고 ‘천황폐하’를 위해 충성을 바치자고 외쳐댔다. “평화는 웃기는 것이고 일본인들은 다시 유신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절규하곤 했다. 극우단체의 지원으로 평양에 가서는 “나도 북한에서 태어나 지도자 동지를 위해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라고 셀프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모순된 일면을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어느날 한 좌파 감독의 영화 <새로운 신>을 만나면서 180도 바뀐다. 사회의 허상을 꿰뚫고 난 뒤부터 그는 절망적인 수렁으로 내몰린 동병상련의 젊은 비정규직 세대와 연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집단따돌림을 경험하고 자살까지 기도하는 불우한 시절을 보낸 뒤에도 속칭 ‘프리터’로 일했던 그가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현실세계에선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하는 경우는 흔해도 우파에서 좌파로 생각을 바꾸는 사례는 드물다. 극단을 오가는 삶을 사는 그는 요즘 “빈곤 타파와 생존을 요구하는 운동에는 좌우가 없다”며 일본의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어느덧 이 운동의 상징 인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불확실한’이란 뜻을 지닌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 조어다. ‘불안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해 유럽의 신좌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이 부상 중인 개념이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의 시간제 노동자나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비정규 지식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다. 2001년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카탈루냐 등지에서 모인 5000여명의 노동자, 환경운동가, 빈집점거 운동가, 미디어 운동가, 이민자가 밀라노 시내를 행진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불안정 계층’의 연대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들의 행진은 연례행사가 됐고, 2003년 마침내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로 규정했다. 지난날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여서 임금은 적었지만 생활의 안정성 자체가 파괴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인 ‘프레카리아트’는 임금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미야가 꿈꾸는 최소한의 공동체는 ‘위협받지 않고 일하며 살 수 있는 사회’이다. 그래서 그는 빈곤과 차별이 있는 사회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성난 서울>은 그가 2008년 여름에 체험하고 목격한 서울의 ‘프레카리아트’와 신사회운동 현장의 기록이다. 일종의 비교사회학적 르포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인문주의 경제학자 우석훈의 표현대로 ‘밥은 먹고 다니냐?’란 말이 인사가 돼버린 1회용 건전지들의 사회. 아마미야는 일본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 놀랄 만큼 양극화한 한국 사회의 노동 현장과 부당한 현실을 뜯어고치기 위해 싸우거나 남다른 미래를 모색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 비율 단연 1위인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종로의 시위 현장, 단식 투쟁을 벌이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숙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전국백수연대 회원들의 터전,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청년실업, 비정규직, 워킹 푸어 등 20대들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하는 희망청이 그곳이다.
일본에서는 워킹 푸어나 프리터 등에 대해 한결같이 ‘자기책임’이라는 말을 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가난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 탓이라는 의미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한 우리네 속담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과거엔 이 같은 생각이 어느 정도 옳았을지 모르나 구조적인 빈곤의 굴레 속에 허덕이는 오늘날에는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 아마미야는 무직과 가난을 오롯이 ‘자기책임’으로 방치하려는 우익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다닌다.
지은이는 지난 여름 서울 방문에서 ‘한·일 프레카리아트 연대’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한국의 프레카리아트’에 호소한다. 함께 ‘생존’ 운동을 펼쳐나가자고. 그는 올해 노동절을 전후해서도 서울에 와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은 우석훈과의 ‘연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연대와 우정을 다져온 아마미야와 우석훈이 ‘특별한 동지’로서 희망과 연대의 사회학을 모색하는 과정은 대담과 별도의 항목으로 담았다.
서울에서 만난 두 개의 실험적인 공동체 이야기는 일본 운동가의 시각으로 한층 생생하게 소묘했다. 문래동에서 철공소를 근거 삼아 빈집 점거 예술운동을 벌이는 ‘스쾃’ 단체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자들의 코뮌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이방인의 눈에 희망의 씨앗으로 성큼 다가왔다. 일본 헌법 9조의 그림자와 연결짓는 병역거부자들의 얘기도 색다르고 뜻 깊게 조명된다. 진중한 문장은 아니지만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필치의 조미료로 버무린 맛이 독특하다. 송태욱 옮김. 1만3000원
스무 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 꾸리에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이 구호를 들으면 누구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먼저 연상할 것이다.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있을 도발적인 선언의 ‘사촌’을 떠올리면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매도하기 십상일지도 모른다.
이 구호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는 30대 중반의 일본 여성 아마미야 카린은 여간 특이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스무살 때 펑크록 밴드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한 극우파 가수였다. 거리에서는 총을 겨눠들고 ‘천황폐하’를 위해 충성을 바치자고 외쳐댔다. “평화는 웃기는 것이고 일본인들은 다시 유신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절규하곤 했다. 극우단체의 지원으로 평양에 가서는 “나도 북한에서 태어나 지도자 동지를 위해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라고 셀프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모순된 일면을 보일 때도 있었다.
아마미야 카린은 “한국의 20~30대는 정규직으로 일하며 사는 것,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것, 살아가는 것의 가능성과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프레카리아트여 연대하라”고 외친다.(확성기를 든 여성)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불확실한’이란 뜻을 지닌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 조어다. ‘불안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해 유럽의 신좌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이 부상 중인 개념이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의 시간제 노동자나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비정규 지식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다. 2001년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카탈루냐 등지에서 모인 5000여명의 노동자, 환경운동가, 빈집점거 운동가, 미디어 운동가, 이민자가 밀라노 시내를 행진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불안정 계층’의 연대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들의 행진은 연례행사가 됐고, 2003년 마침내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로 규정했다. 지난날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여서 임금은 적었지만 생활의 안정성 자체가 파괴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인 ‘프레카리아트’는 임금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미야가 극우파 펑크록 밴드 ‘유신적성숙’의 보컬로서 노래를 부르던 시절의 모습.
일본에서는 워킹 푸어나 프리터 등에 대해 한결같이 ‘자기책임’이라는 말을 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가난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 탓이라는 의미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한 우리네 속담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과거엔 이 같은 생각이 어느 정도 옳았을지 모르나 구조적인 빈곤의 굴레 속에 허덕이는 오늘날에는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 아마미야는 무직과 가난을 오롯이 ‘자기책임’으로 방치하려는 우익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다닌다.
지은이는 지난 여름 서울 방문에서 ‘한·일 프레카리아트 연대’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한국의 프레카리아트’에 호소한다. 함께 ‘생존’ 운동을 펼쳐나가자고. 그는 올해 노동절을 전후해서도 서울에 와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은 우석훈과의 ‘연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연대와 우정을 다져온 아마미야와 우석훈이 ‘특별한 동지’로서 희망과 연대의 사회학을 모색하는 과정은 대담과 별도의 항목으로 담았다.
서울에서 만난 두 개의 실험적인 공동체 이야기는 일본 운동가의 시각으로 한층 생생하게 소묘했다. 문래동에서 철공소를 근거 삼아 빈집 점거 예술운동을 벌이는 ‘스쾃’ 단체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자들의 코뮌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이방인의 눈에 희망의 씨앗으로 성큼 다가왔다. 일본 헌법 9조의 그림자와 연결짓는 병역거부자들의 얘기도 색다르고 뜻 깊게 조명된다. 진중한 문장은 아니지만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필치의 조미료로 버무린 맛이 독특하다. 송태욱 옮김.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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