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15 17:45:20ㅣ수정 : 2009-05-15 17:45:21
ㆍ불황전도사 폴 크루그먼 따끔한 처방
▲불황의 경제학…폴 크루그먼 | 세종서적
걱정은 태산처럼 높지만 신통방통한 묘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신종인플루엔자 A가 그렇듯이 북미 대륙에서 발생한 경제독감이 지구촌을 뒤덮고 끝을 알 수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너도나도 명의라고 나서고는 있지만 들리느니 그 소리가 그 소리다.
한 독특한 경제의사는 다른 의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이 질병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오! 익히 보아 오던 고질일 뿐이오”라며. 세계경제는 결코 공황에 빠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 의사의 극언을 들으면 끔찍하다. 이제 불황은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려나보다.
이 의사는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예의 쓴소리를 했다. “현대 의학에 의해 박멸된 줄 알았던 치명적인 병원균이 기존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형태로 재출현한 것과 같다.” 그때 그는 이런 경고를 곁들였다. “지금까지는 제한된 수의 사람만이 이 새로운 불치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만약 운이 좋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새로운 치료법과 예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음번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이 의사는 1990년대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현재진행형인 글로벌 금융위기의 리허설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경제의사는 미국의 유수 언론이 ‘경제학의 신’ ‘우리 세대 최고의 외환전문가’라 일컫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불황전도사’ ‘노벨상급 두통거리’라는 애칭까지 따라 붙는다. 이쯤하면 웬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은 사람이라도 요즘 상종가를 누리는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을 떠올릴 게다.
크루그먼은 <불황의 경제학>(원제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에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공급중시 경제학’에 치명타를 가한다. 세계경제를 이 꼴로 망쳐놓은 것이 공급중시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급중시 경제학이 어리석은 아이디어들을 조합해놓은 것일 뿐 확고하거나 온전한 학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매도한다. 재화의 공급만 충분하면 수요는 자연히 뒤따라온다는 게 공급중시경제학의 핵심이다.
반대로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크루그먼의 경제 패러다임은 수요중심이다. 수요 측면의 실패가 세계경제의 환부라고 그는 진단한다. 위기의 핵심에는 모두 불충분한 수요창출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 당장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발등의 불을 끄는 구조작전이라고 다급한 목소리를 낸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작전은 신용경색 완화와 소비지원, 두 가지다.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이 모두 나서야 할 지난한 과제이지만 반드시, 그것도 조만간 해야 할 일이다. 그가 내놓은 명확한 해결책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일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며 일시적으로는 사실상 금융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완전한 국유화에 가까운 상태가 될 정도로 정부의 입김도 더 세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회주의 냄새가 짙다는 비판에 날카로운 반격으로 맞선다. “금융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 다소 ‘사회주의적’이라는 우려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한동안 우호적인 눈으로 응원하던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연일 쓴소리를 해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근본적인 금융 개혁 퇴색이다.
그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신화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달려든다. 이 신화는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이래 지금까지 경제학에서 핵심적 진리로 통했다. 자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한 가지를 많이 가지려면 다른 한 가지를 적게 가져야 하며,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찾아보면 있다는 게 크루그먼의 자신감이다. 이 세상에는 사용할 수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자원이 있기 때문에 공짜 점심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떻게 가져오는지만 알면 된다. 그의 해답은 역시 ‘수요’에 있다.
그는 튼튼한 경제에도 경기후퇴가 올 수 있다는 이론도 편다. 많은 서구인들은 아시아의 위기를 정실자본주의에 대한 필연적 죗값으로 여겼다. 하지만 크루그먼이 보기엔 적어도 죄에 대한 벌은 아니었고, 엉터리 정부정책 때문도 아니었다. 주된 원인은 자기입증형 패닉(공황상태)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패닉에 취약해진 부분적인 이유는 금융시장을 개방해서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중병 상태라고 그가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병마의 가장 큰 원인인 ‘그림자 금융’에 대한 칼질을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이 이름 지은 ‘그림자 금융’이란 투자은행이나 신탁회사처럼 ‘은행인 체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이들은 투자에 따른 이득은 챙기면서 리스크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에 떠넘기려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지녀왔다.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써 따분하지 않다. 지은이 스스로도 자신 있게 말한다. 경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유혹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위엄을 부리고자 하는 경향이라고. 문장력 또한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영국의 권위지 인디펜던트가 ‘케인스처럼 고민하고 갤브레이스처럼 유려하다’는 표현을 쓴 게 과찬이 아닌 것 같다. 1999년 출간된 ‘불황경제학’의 수정증보판이지만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을 반영한 신작이나 다름없다. 안진환 옮김. 1만4000원
▲불황의 경제학…폴 크루그먼 | 세종서적
한 독특한 경제의사는 다른 의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이 질병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오! 익히 보아 오던 고질일 뿐이오”라며. 세계경제는 결코 공황에 빠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 의사의 극언을 들으면 끔찍하다. 이제 불황은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려나보다.
이 경제의사는 미국의 유수 언론이 ‘경제학의 신’ ‘우리 세대 최고의 외환전문가’라 일컫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불황전도사’ ‘노벨상급 두통거리’라는 애칭까지 따라 붙는다. 이쯤하면 웬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은 사람이라도 요즘 상종가를 누리는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을 떠올릴 게다.
크루그먼은 <불황의 경제학>(원제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에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공급중시 경제학’에 치명타를 가한다. 세계경제를 이 꼴로 망쳐놓은 것이 공급중시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급중시 경제학이 어리석은 아이디어들을 조합해놓은 것일 뿐 확고하거나 온전한 학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매도한다. 재화의 공급만 충분하면 수요는 자연히 뒤따라온다는 게 공급중시경제학의 핵심이다.
반대로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크루그먼의 경제 패러다임은 수요중심이다. 수요 측면의 실패가 세계경제의 환부라고 그는 진단한다. 위기의 핵심에는 모두 불충분한 수요창출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 당장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발등의 불을 끄는 구조작전이라고 다급한 목소리를 낸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작전은 신용경색 완화와 소비지원, 두 가지다.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이 모두 나서야 할 지난한 과제이지만 반드시, 그것도 조만간 해야 할 일이다. 그가 내놓은 명확한 해결책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일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며 일시적으로는 사실상 금융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완전한 국유화에 가까운 상태가 될 정도로 정부의 입김도 더 세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회주의 냄새가 짙다는 비판에 날카로운 반격으로 맞선다. “금융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 다소 ‘사회주의적’이라는 우려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한동안 우호적인 눈으로 응원하던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연일 쓴소리를 해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근본적인 금융 개혁 퇴색이다.
그는 튼튼한 경제에도 경기후퇴가 올 수 있다는 이론도 편다. 많은 서구인들은 아시아의 위기를 정실자본주의에 대한 필연적 죗값으로 여겼다. 하지만 크루그먼이 보기엔 적어도 죄에 대한 벌은 아니었고, 엉터리 정부정책 때문도 아니었다. 주된 원인은 자기입증형 패닉(공황상태)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패닉에 취약해진 부분적인 이유는 금융시장을 개방해서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중병 상태라고 그가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병마의 가장 큰 원인인 ‘그림자 금융’에 대한 칼질을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이 이름 지은 ‘그림자 금융’이란 투자은행이나 신탁회사처럼 ‘은행인 체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이들은 투자에 따른 이득은 챙기면서 리스크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에 떠넘기려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지녀왔다.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써 따분하지 않다. 지은이 스스로도 자신 있게 말한다. 경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유혹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위엄을 부리고자 하는 경향이라고. 문장력 또한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영국의 권위지 인디펜던트가 ‘케인스처럼 고민하고 갤브레이스처럼 유려하다’는 표현을 쓴 게 과찬이 아닌 것 같다. 1999년 출간된 ‘불황경제학’의 수정증보판이지만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을 반영한 신작이나 다름없다. 안진환 옮김.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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