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31 17:24:28ㅣ수정 : 2009-05-31 17:24:28
ㆍ예술속에서 몸이 어떻게 표현돼 왔나…작품 실례들며 다양한 문화 담론 제시
몸과 문화
홍덕선·박규현 | 성균관대 출판부
지난해 5월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생존 작가 가운데 최고 낙찰가 신기록이 나와 세계 미술계가 잠시 술렁거렸다.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루치안 프로이트(87)의 누드화 <잠이 든 사회복지 감독관>이 무려 3364만1000달러(약 352억원)에 팔렸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손자여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화가다.
이 누드화의 인물은 아름다운 몸매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여성 누드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에 가까운 모습으로 늘어져 태평스럽게 소파에서 낮잠을 즐기는 여인의 찌들고 왜곡된 육체에서는 기괴한 공격성마저 느껴진다.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요즘 세태를 마치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이처럼 포스트모던 시대의 몸에 대한 인식은 신비감을 거침없이 해체한다.
공교롭게도 꼭 1년 만인 지난 13일 발굴 사실이 발표된 세계 최고(最古)의 여성 조각상은 프로이트의 작품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예술로 승화되는 ‘몸’이 수만년 후 다시 원시적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 펠스 동굴에서 지난해 9월 발굴된 이 조각상은 두툼한 허리, 넓적한 허벅지, 크고 튀어나온 가슴 등으로 미뤄보아 다산과 풍년을 기원하는 원시인들의 상징물로 추정되고 있다. 3만5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조각상은 2만4000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사람 조형물로 여겨온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상보다 1만년이나 앞선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몸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지역마다 편차가 컸다. 문화가 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바꿔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나 몸에 대한 지배적 이미지는 지배 집단이 정한 가치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성균관대의 홍덕선 영문과 교수와 박규현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함께 쓴 <몸과 문화>는 문화현상으로서의 몸을 인식하는 방식이 특정 문화의 사고체계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집중 궁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줄기차게 연구되고 있는 인간의 몸을 조망하는 연구서이자 개설서이지만 예술 속에서 어떻게 표현돼 왔는지를 주로 탐사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관습적인 허용의 한계를 넘어 몸에 대한 금기에 과감히 도전하고 일탈하는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지은이들은 보여준다. 몸을 묘사하던 방식은 오랫동안 이상적인 신체의 아름다움을 영원불멸의 육체, 현실을 떠난 고정된 미의 규칙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저자들은 몸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이며 몸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구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몸은 인간 경험의 거대한 영역이다. 때로는 신비의 대상이며,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고, 때로는 개인의 심리적 분석과 내향적 관찰의 터전이 되며 때로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문제들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와 미학의 경기장이 된다.”
크게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몸에 접근한다. 전반부에서는 생물학, 철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역사학적 물음들을 때로는 교차적으로, 때론 통합적으로 살핀다.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몸이 문화 속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양상을 분석한다.
저자들이 ‘몸’에 제 기능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꼽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화가 폴 고갱,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이들의 탐험은 한결 생생하게 그려진다. 고갱은 피카소가 아프리카 예술 여행을 떠났듯이 온전하고 순수한 원시상태의 감성과 감각을 오롯이 지닌 몸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다.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한 신고전주의 그림 가운데 터키의 한 후궁을 그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를 서구인의 대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선정하고 표지 모델로도 썼다.
‘제왕은 두 개의 몸을 지닌다’는 개념을 찾아낸 절대왕정 시대의 ‘몸의 미학’도 도마에 오른다. 군주 개인의 인간적인 육체와 불멸의 존재로서의 신화적 육체는 히야신스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를 통해 보여준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몸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모습을 그린 피에르 드 쉐르의 ‘폭군의 처형, 1793년 1월21일’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몸에 대한 낭만적 시선을 철저하게 거부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해체되는 몸’도 인상적이다.
저자들이 ‘몸의 사라짐’으로 표현한 죽음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죽음에 관한 예술로 천착한다. 특히 전쟁을 그린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반복가능한가를 확인해 준다. 의학과 예술이 결합한 ‘해부된 몸’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궁 속’ 등을 대표 사례로 들어 풀어낸다.
‘몸의 문화적 표상’은 얼마 전까지 최초의 인간조각상으로 꼽혀온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서 시작해 루치안 프로이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프랜시스 베이컨(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먼 후손)의 포스트모던 작품 ‘헨리에테 모라에스의 초상을 위한 습작’으로 마무리된다.
작가와 작품을 실례로 들어 인간의 몸을 해석하는 다양한 문화 담론을 깔끔하게 정리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만 한국이나 동양의 사례는 한 차례 스쳐지나간 반면 대부분 서양에 치중된 게 아쉬움을 남긴다.(2만3000원)
<몸과 문화>와 함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김연순 연구원의 <기계에서 사이버휴먼으로>(1만8000원)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무늬’ 시리즈의 하나다. 인간의 진화와 변화과정을 통시적으로 재구성한 수작이다.
몸과 문화
홍덕선·박규현 | 성균관대 출판부
지난해 5월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생존 작가 가운데 최고 낙찰가 신기록이 나와 세계 미술계가 잠시 술렁거렸다.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루치안 프로이트(87)의 누드화 <잠이 든 사회복지 감독관>이 무려 3364만1000달러(약 352억원)에 팔렸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손자여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화가다.
이 누드화의 인물은 아름다운 몸매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여성 누드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에 가까운 모습으로 늘어져 태평스럽게 소파에서 낮잠을 즐기는 여인의 찌들고 왜곡된 육체에서는 기괴한 공격성마저 느껴진다.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요즘 세태를 마치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이처럼 포스트모던 시대의 몸에 대한 인식은 신비감을 거침없이 해체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몸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지역마다 편차가 컸다. 문화가 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바꿔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나 몸에 대한 지배적 이미지는 지배 집단이 정한 가치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성균관대의 홍덕선 영문과 교수와 박규현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함께 쓴 <몸과 문화>는 문화현상으로서의 몸을 인식하는 방식이 특정 문화의 사고체계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집중 궁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줄기차게 연구되고 있는 인간의 몸을 조망하는 연구서이자 개설서이지만 예술 속에서 어떻게 표현돼 왔는지를 주로 탐사한다.
저자들은 몸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이며 몸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구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몸은 인간 경험의 거대한 영역이다. 때로는 신비의 대상이며,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고, 때로는 개인의 심리적 분석과 내향적 관찰의 터전이 되며 때로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문제들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와 미학의 경기장이 된다.”
크게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몸에 접근한다. 전반부에서는 생물학, 철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역사학적 물음들을 때로는 교차적으로, 때론 통합적으로 살핀다.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몸이 문화 속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양상을 분석한다.
저자들이 ‘몸’에 제 기능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꼽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화가 폴 고갱,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이들의 탐험은 한결 생생하게 그려진다. 고갱은 피카소가 아프리카 예술 여행을 떠났듯이 온전하고 순수한 원시상태의 감성과 감각을 오롯이 지닌 몸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다.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한 신고전주의 그림 가운데 터키의 한 후궁을 그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를 서구인의 대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선정하고 표지 모델로도 썼다.
‘제왕은 두 개의 몸을 지닌다’는 개념을 찾아낸 절대왕정 시대의 ‘몸의 미학’도 도마에 오른다. 군주 개인의 인간적인 육체와 불멸의 존재로서의 신화적 육체는 히야신스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를 통해 보여준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몸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모습을 그린 피에르 드 쉐르의 ‘폭군의 처형, 1793년 1월21일’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몸에 대한 낭만적 시선을 철저하게 거부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해체되는 몸’도 인상적이다.
저자들이 ‘몸의 사라짐’으로 표현한 죽음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죽음에 관한 예술로 천착한다. 특히 전쟁을 그린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반복가능한가를 확인해 준다. 의학과 예술이 결합한 ‘해부된 몸’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궁 속’ 등을 대표 사례로 들어 풀어낸다.
작가와 작품을 실례로 들어 인간의 몸을 해석하는 다양한 문화 담론을 깔끔하게 정리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만 한국이나 동양의 사례는 한 차례 스쳐지나간 반면 대부분 서양에 치중된 게 아쉬움을 남긴다.(2만3000원)
<몸과 문화>와 함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김연순 연구원의 <기계에서 사이버휴먼으로>(1만8000원)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무늬’ 시리즈의 하나다. 인간의 진화와 변화과정을 통시적으로 재구성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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