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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곱씹은 좌·우파 경제오류

입력 : 2009-06-12 17:32:00수정 : 2009-06-12 17:32:01

ㆍ“세상은 자본주의를 미워해도 똑 떨어지는 대안은 없다, 머리를 맞대라”


■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조지프 히스 | 마티

‘서기 2081년, 만인은 마침내 평등해졌다. 하나님이나 법 앞에서만 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완벽한 평등을 누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없어졌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생긴 사람도 물론 없었다. 아무도 다른 이들보다 더 힘이 세거나 더 민첩하지 않았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평등 세상은 오로지 미합중국 평등유지 관리국 요원들의 끊임없는 감시 활동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특수 수신기를 끼워 정교하고 복잡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그들을 방해한다. 미남미녀들은 가면을 써야 한다. 튼튼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추를 달아 행동을 굼뜨게 만든다.’

평등의 이상이 완벽하게 실현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커트 보네거트의 단편소설 <해리슨 버저론>의 한 장면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은 하향평준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진하게 담겨 좌파 공격 소재로 곧잘 등장한다.

<혁명을 팝니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조지프 히스 토론토대 철학과 교수(사진)는 최신작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원제 Filthy Lucre: Economics for People Who Hate Capitalism)에서 <해리슨 버저론>을 흥미롭게 예로 들며 좌파 진영의 아킬레스건을 파고든다. 제목만으로도 좌파 비평서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여름휴가 목적지인 하와이까지 가지 않고 하와이 근처까지만 데려다주는 항공권이 있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질 게 뻔한 이 항공권을 아무리 헐값이라도 누가 사겠는가. 이런 재미있는 비유로 경쟁만이 만병통치약이며 시장만이 해법이라는 우파의 단견들도 헤집는다. 시장을 가능한 한 경쟁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이상에 근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논리는 하와이가 아니라 하와이 근처까지 가는 황당한 항공권과 같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먼저 우파들이 흔히 저지르는 경제적 오류들을 도마에 올려 칼질한다. 개인의 게으르고 무지한 결과인 가난을 정부와 사회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며 복지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우파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파가 도덕적 해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도덕적 해이가 하나의 변수인 것은 분명하나 공공부조 제도를 통째로 포기할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감세는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견해도 정부가 소비자라는 그릇된 신화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오류라고 저자는 통박한다. 이는 우파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근거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마술모자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시장만 있으면 모든 게 잘 돌아가니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논리는 ‘부유층에게 득이 되는 정부프로그램은 놔두고 다른 것은 모두 없애라’는 요구나 다름없다고 지은이는 반박한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자본주의는 소비에트 공산주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소득평등을 이루었다는 점을 역설하며.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지나치게 앞세우는 국가경쟁력은 정부와 기업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고 논박한다. 무역은 기본적으로 경쟁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라는 점을 우파가 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좌파가 흔히 빠지는 함정 가운데 첫 번째로 공정가격과 공정무역을 든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지급하는 무역의 도덕성’이라는 모토가 유행처럼 호응을 얻고 있으나 여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근본 치료는 젖혀 두고 증상만 슬쩍 완화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빈곤은 가격조정이 아니라 소득분배로 해결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기업의 이윤추구에 알레르기 반응이나 반기업정서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눈을 흘긴다. 좌파가 주식회사 기업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여기는 협동조합도 소유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상기시킨다.

저자는 우파가 자기들 견해의 근거로 내세우는 쓰레기 같은 논거를 대부분의 좌파들이 제대로 지적해내지 못한다는 점을 좌파의 경제학적 무지가 부르는 첫 번째 문제로 꼽는다. 의도는 좋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없거나 돕고자 하는 수혜자에게 막상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만들고 선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사실이 또 다른 문제점이다.

그러고 보면 우파와 좌파가 저지른 경제 오류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어 양비론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 있겠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 이에 대한 대답도 준비하고 있다. 경제학이 빈곤, 불평등, 사회적 배제 등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해결책으로 풀 수 없다는 점을 떠올리려 한다. 지은이는 특히 비용편익분석을 하면서 좌·우파 공히 십중팔구 저지르는 오류를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자신이 싫어하는 정책의 온갖 비용은 모두 합치고 편익은 싹 무시해버린 다음 ‘사회악’이라고 매도하는 것을 두고 저자는 ‘비용은 넣고 편익은 빼자 오류’라고 부른다.

세상은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의심하지만 이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지독히도 어려우니 이를 개선하는 궁리에 머리를 맞대보자는 게 결론이다. 저자가 경제학자가 아닌 철학자인 점에 신뢰를 삭감할지도 모르겠으나 매우 기본적이고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있는 오류들을 실례로 들어 설명하는 미덕이 돋보인다. 문체도 때로는 가시가 돋았고 때로는 넘치는 재기로 번뜩인다.

저자는 좌파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 똥침을 놓지만 겨냥하는 주독자층은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매에 애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전공한 좌파이자 환경론자이기도 하다. 상업주의가 돼버린 반문화를 비판한 히스의 전작 <혁명을 팝니다>를 감흥 깊게 읽은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노시내 옮김.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