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6-26 17:43:38ㅣ수정 : 2009-06-26 17:43:38
ㆍ조선후기 차와 더불어 삶을 음미하던 선비들의 향기
한국의 차 문화 천년 1, 2…정약용·김정희·초의선사 외 | 돌베개
차향(茶香)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라면 필시 멋과 여유가 배어있으리라. 그윽하고 청아한 격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유유자적 차중선(茶中仙)의 경지는 우리네 옛 선비 문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길이다.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이나 선비의 문방에서 차를 달이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지고의 경지다. 차는 넓은 것에는 마땅치 않아 혼자 마시면 탈속하고, 두 사람이면 한적하여 좋으며, 서너 명이면 즐기고, 대여섯 명이면 들뜨며, 일고여덟 명이면 베풀고, 그것을 넘으면 또한 잡스럽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시와 차가 어우러진 풍광, 시와 더불어 나누는 청징한 차 한 잔의 참맛이 담긴 <한국의 차 문화 천년>(돌베개)에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에다 차향까지 서려 있으니 금상첨화다. 여섯 권짜리로 기획된 연작 가운데 이번에 먼저 나온 두 권은 조선 후기의 차 문화에 관한 시와 산문을 번역해 엮어 때로는 삽상하고, 때론 선미(禪味)와 현기(玄機)가 느껴진다. 차는 특히 술, 시와 더불어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문화 코드나 다름없다. 차에 관한 시를 읽는 맛은 마치 좋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에 버금간다. “깊은 샘에서 진리를 긷노라니 글맛(書味)이 통하여/ 정수리에 제호를 부은 듯 불심을 깨닫네/ (중략) 천하의 차 끓이는 물을 논해보건대/ 강왕곡(康王谷) 물이 제일이라면 이 샘은 두세 번째는 되리.” 시·서·화 삼절로 이름 높은 신위의 ‘귀양살이의 한 기쁨’이라는 시다.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자연에 묻혀 사는 호해지사(湖海之士)의 심심파적이 가득하다.
조선 후기 서화가 이광사의 ‘내도재기(內道齋記)’에는 단아한 서재에 귀한 고서 서화, 문방구, 차를 옆에 두고 이따금 금석 자료나 희귀한 비탑을 품평하며 시간을 보내는 독서군자의 풍류가 고스란히 읽힌다. “졸렬한 시도 장기 두는 것보단 낫고 옅은 술은 차만 못하네”라고 읊조린 홍현주의 차시들도 각별한 운치를 더해준다. 마음에 맞는 벗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속세의 물욕과 세속의 번뇌를 씻으며 안빈낙도의 일상을 즐기는 시도 적지 않다.
스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고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차의 인연만은 끊어버릴 수 없으니 어서 빨리 차를 보내 달라고 초의 선사에게 조르는 추사 김정희의 편지글에서는 돈독하고 특별한 교유의 멋과 함께 미소가 번진다.
이덕리의 산문 ‘기다(記茶)’의 한 구절은 무척이나 실용적인 모습을 띤다. “차는 사람의 잠을 적게 만든다. 혹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고 밤낮으로 관아에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심부름을 다니는 자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 무렵 베틀에 올라가는 여인이나 서재에서 학업에 열심인 선비에게 모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초의 선사가 중국차의 아류로 여기던 한국 차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추사 김정희가 지리산 차의 탁월함을 역설하는 대목도 눈길을 잡는다. 예조판서를 지낸 신헌구는 ‘해다설(海茶說)’에서 초의 선사가 제조한 차가 스님들 사이에서만 이름이 났을 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안타까워한다.
다산 정약용과 아들 학연, 초의 선사, 김정희와 아우 명희, 낙하생 이학규처럼 시와 산문이 모두 실린 이가 있는가 하면 차인(茶人)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많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네 권에는 삼국·고려 시대, 조선 전기와 중기, 조선 후기와 근대, 승려의 차 문화를 집대성해 소중한 자료가 될 게 틀림없다. 번역에는 한문 고전에 통달한 성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명망있는 인사 6명이 참여했다. 차를 얘기하려면 육우의 <다경>(茶經) 정도는 완독해야 마땅하나 이제 이 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권 2만원, 2권 2만2000원
한국의 차 문화 천년 1, 2…정약용·김정희·초의선사 외 | 돌베개
제주도에 있는 도순다원 전경. 야트막하게 줄지어 앉아있는 차나무들 너머로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사진 위)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다조(차부뚜막·아래). 정약용은 다산초당 뒤꼍에 흐르는 약천에서 맑은 물을 떠다가 앞마당에 있는 이 널찍한 바위 위에서 지펴 끓인 물로 차를 마셨다. 사진제공 돌베개
차향(茶香)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라면 필시 멋과 여유가 배어있으리라. 그윽하고 청아한 격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유유자적 차중선(茶中仙)의 경지는 우리네 옛 선비 문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길이다.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이나 선비의 문방에서 차를 달이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지고의 경지다. 차는 넓은 것에는 마땅치 않아 혼자 마시면 탈속하고, 두 사람이면 한적하여 좋으며, 서너 명이면 즐기고, 대여섯 명이면 들뜨며, 일고여덟 명이면 베풀고, 그것을 넘으면 또한 잡스럽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시와 차가 어우러진 풍광, 시와 더불어 나누는 청징한 차 한 잔의 참맛이 담긴 <한국의 차 문화 천년>(돌베개)에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에다 차향까지 서려 있으니 금상첨화다. 여섯 권짜리로 기획된 연작 가운데 이번에 먼저 나온 두 권은 조선 후기의 차 문화에 관한 시와 산문을 번역해 엮어 때로는 삽상하고, 때론 선미(禪味)와 현기(玄機)가 느껴진다. 차는 특히 술, 시와 더불어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문화 코드나 다름없다. 차에 관한 시를 읽는 맛은 마치 좋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에 버금간다. “깊은 샘에서 진리를 긷노라니 글맛(書味)이 통하여/ 정수리에 제호를 부은 듯 불심을 깨닫네/ (중략) 천하의 차 끓이는 물을 논해보건대/ 강왕곡(康王谷) 물이 제일이라면 이 샘은 두세 번째는 되리.” 시·서·화 삼절로 이름 높은 신위의 ‘귀양살이의 한 기쁨’이라는 시다.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자연에 묻혀 사는 호해지사(湖海之士)의 심심파적이 가득하다.
조선 후기 서화가 이광사의 ‘내도재기(內道齋記)’에는 단아한 서재에 귀한 고서 서화, 문방구, 차를 옆에 두고 이따금 금석 자료나 희귀한 비탑을 품평하며 시간을 보내는 독서군자의 풍류가 고스란히 읽힌다. “졸렬한 시도 장기 두는 것보단 낫고 옅은 술은 차만 못하네”라고 읊조린 홍현주의 차시들도 각별한 운치를 더해준다. 마음에 맞는 벗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속세의 물욕과 세속의 번뇌를 씻으며 안빈낙도의 일상을 즐기는 시도 적지 않다.
스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고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차의 인연만은 끊어버릴 수 없으니 어서 빨리 차를 보내 달라고 초의 선사에게 조르는 추사 김정희의 편지글에서는 돈독하고 특별한 교유의 멋과 함께 미소가 번진다.
이덕리의 산문 ‘기다(記茶)’의 한 구절은 무척이나 실용적인 모습을 띤다. “차는 사람의 잠을 적게 만든다. 혹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고 밤낮으로 관아에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심부름을 다니는 자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 무렵 베틀에 올라가는 여인이나 서재에서 학업에 열심인 선비에게 모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초의 선사가 중국차의 아류로 여기던 한국 차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추사 김정희가 지리산 차의 탁월함을 역설하는 대목도 눈길을 잡는다. 예조판서를 지낸 신헌구는 ‘해다설(海茶說)’에서 초의 선사가 제조한 차가 스님들 사이에서만 이름이 났을 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안타까워한다.
다산 정약용과 아들 학연, 초의 선사, 김정희와 아우 명희, 낙하생 이학규처럼 시와 산문이 모두 실린 이가 있는가 하면 차인(茶人)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많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네 권에는 삼국·고려 시대, 조선 전기와 중기, 조선 후기와 근대, 승려의 차 문화를 집대성해 소중한 자료가 될 게 틀림없다. 번역에는 한문 고전에 통달한 성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명망있는 인사 6명이 참여했다. 차를 얘기하려면 육우의 <다경>(茶經) 정도는 완독해야 마땅하나 이제 이 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권 2만원, 2권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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