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7-24 17:52:10ㅣ수정 : 2009-07-24 23:11:35
중국을 낳은 뽕나무-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강판권 | 글항아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에서 중국을 일컫는 ‘차이나’(China)의 어원을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에서 찾는다. 학계에서도 그리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중국사 개설서가 한결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명말 청초 예수교 선교사가 처음 주장한 것이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견해는 중국이 진나라 이전에 다른 지역과 교역이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특산물 비단을 뜻하는 ‘진’(Cin)이나 ‘지나’(Cina)에서 유래됐다고 한 전문가는 강하게 반론을 전개한다. 진나라가 등장하기 전 이미 페르시아와 인도 등지에서는 중국을 비단 생산국이라며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인도나 페르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을 비단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비단으로 치장하지 않은 황제와 귀족을 상상하기 어려운 고대 로마에서 중국을 ‘세레스’(Seres)나 ‘세라’(Sera)라고 부른 것도 값비싼 피륙(비단)을 의미하는 한자 ‘사’(絲)를 음역한 것이다.
비단은 ‘실크로드’가 시사하듯이 중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차이나’가 비단에서 비롯됐고, 비단은 누에를 기르는 뽕나무에서 나왔으니 뽕나무가 중국을 낳았다면 과언일까. 중국 농업경제사 전문가인 강판권 계명대 교수는 중국을 ‘뽕나무가 만든 나라’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지론을 편다. 뽕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중국사를 말한다면 시경(詩經)을 모르면서 중국 고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단언한다. 그의 역작 <중국을 낳은 뽕나무>(글항아리)의 탄생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국 문화의 묘미와 이해의 출발점은 법가와 유가의 엄격함, 도가와 불가의 소탈함, 사치와 향락의 도시문화 사이에 쳐져 있는 비단이라는 얇은 차양막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비단은 의복의 소재인 동시에 문화를 퍼뜨리는 매체이자 화폐였다. 의복 질서를 통해 나라를 다스린 중국에서 예치(禮治)의 근본은 신분과 남녀구별에 따른 옷감과 디자인의 차별화였다. 일반 백성들이 입는 값싼 비단과 다섯 겹을 껴입어도 젖꼭지가 두드러졌다는 고급 비단의 존재는 통치이념의 제도화와 국가 이데올로기의 주춧돌이 됐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당나라 시절 이래 사치와 애욕의 극치를 낳은 중국 문화사도 수려한 장식품으로서의 비단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남녀간의 사랑, 목욕이나 내밀한 유희문화의 정점에 선 것이 비단의 에로틱함이다. 비단은 배의 돛폭에서부터 술집 난간을 휘감아 꾸미는 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을 정도다. 고대에는 뽕나무 밭이 남녀간의 야합이 허용되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점을 신화와 사료를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낸다.
뽕과 누에가 만든 비단으로 세계 최고의 문명국으로 도약하고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골치 아픈 ‘오랑캐들’을 평화롭고 효율적으로 다스려 나갈 비폭력적 방법으로 중화질서의 조공무역과 책봉체제를 고안할 수 있었던 바탕도 비단이 없었으면 힘들었으리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중국 경제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바꾼 결정적 요인도 뽕나무와 비단이라는 점을 추적한다. 중국 비단시장의 전문화, 상업화는 여성의 지위하락 과정이기도 하다. 남자는 농사짓고 여자는 비단을 짜는 ‘남경여직’(男耕女織)의 분업사회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서구 물결의 범람 이후 비단의 퇴조와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걸었던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뽕나무가 최근 의약 원료와 생태농업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한다. <나무열전>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등의 저작에서 보이듯 나무로 역사를 해석하는, 독특한 경지를 구축한 저자의 내공이 이 책에서도 만만찮게 드러난다. 1만9800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에서 중국을 일컫는 ‘차이나’(China)의 어원을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에서 찾는다. 학계에서도 그리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중국사 개설서가 한결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명말 청초 예수교 선교사가 처음 주장한 것이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견해는 중국이 진나라 이전에 다른 지역과 교역이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특산물 비단을 뜻하는 ‘진’(Cin)이나 ‘지나’(Cina)에서 유래됐다고 한 전문가는 강하게 반론을 전개한다. 진나라가 등장하기 전 이미 페르시아와 인도 등지에서는 중국을 비단 생산국이라며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인도나 페르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을 비단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비단으로 치장하지 않은 황제와 귀족을 상상하기 어려운 고대 로마에서 중국을 ‘세레스’(Seres)나 ‘세라’(Sera)라고 부른 것도 값비싼 피륙(비단)을 의미하는 한자 ‘사’(絲)를 음역한 것이다.
비단은 ‘실크로드’가 시사하듯이 중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차이나’가 비단에서 비롯됐고, 비단은 누에를 기르는 뽕나무에서 나왔으니 뽕나무가 중국을 낳았다면 과언일까. 중국 농업경제사 전문가인 강판권 계명대 교수는 중국을 ‘뽕나무가 만든 나라’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지론을 편다. 뽕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중국사를 말한다면 시경(詩經)을 모르면서 중국 고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단언한다. 그의 역작 <중국을 낳은 뽕나무>(글항아리)의 탄생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경제사와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비단은 뺄 수 없는 요소다. 한때 화폐로 사용됐고 지배층에겐 사치의 대상, 피지배층에겐 생존을 위한 노동의 대상이었던 비단을 있게 한 것은 뽕나무와 누에다. 중국은 역사가 시작된 5000년 전부터 뽕나무를 재배해 왔다.
중국 문화의 묘미와 이해의 출발점은 법가와 유가의 엄격함, 도가와 불가의 소탈함, 사치와 향락의 도시문화 사이에 쳐져 있는 비단이라는 얇은 차양막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비단은 의복의 소재인 동시에 문화를 퍼뜨리는 매체이자 화폐였다. 의복 질서를 통해 나라를 다스린 중국에서 예치(禮治)의 근본은 신분과 남녀구별에 따른 옷감과 디자인의 차별화였다. 일반 백성들이 입는 값싼 비단과 다섯 겹을 껴입어도 젖꼭지가 두드러졌다는 고급 비단의 존재는 통치이념의 제도화와 국가 이데올로기의 주춧돌이 됐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당나라 시절 이래 사치와 애욕의 극치를 낳은 중국 문화사도 수려한 장식품으로서의 비단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남녀간의 사랑, 목욕이나 내밀한 유희문화의 정점에 선 것이 비단의 에로틱함이다. 비단은 배의 돛폭에서부터 술집 난간을 휘감아 꾸미는 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을 정도다. 고대에는 뽕나무 밭이 남녀간의 야합이 허용되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점을 신화와 사료를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낸다.
뽕과 누에가 만든 비단으로 세계 최고의 문명국으로 도약하고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골치 아픈 ‘오랑캐들’을 평화롭고 효율적으로 다스려 나갈 비폭력적 방법으로 중화질서의 조공무역과 책봉체제를 고안할 수 있었던 바탕도 비단이 없었으면 힘들었으리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중국 경제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바꾼 결정적 요인도 뽕나무와 비단이라는 점을 추적한다. 중국 비단시장의 전문화, 상업화는 여성의 지위하락 과정이기도 하다. 남자는 농사짓고 여자는 비단을 짜는 ‘남경여직’(男耕女織)의 분업사회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시대에 강희제의 명을 받아 초병정이 만든 <어제경직도>에 나오는 것으로, 농가에서 여인들이 비단을 만드는 장면이다.
지은이는 서구 물결의 범람 이후 비단의 퇴조와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걸었던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뽕나무가 최근 의약 원료와 생태농업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한다. <나무열전>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등의 저작에서 보이듯 나무로 역사를 해석하는, 독특한 경지를 구축한 저자의 내공이 이 책에서도 만만찮게 드러난다.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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