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7-24 18:07:33ㅣ수정 : 2009-07-24 18:07:34
5세기 중엽만 해도 베네치아는 오늘날처럼 수려하고 세련된 ‘물의 도시’가 아니었다. 물새와 갈대뿐인 늪지였다. 서기 452년 포악한 훈족 아킬라군이 침입하자 피할 길 없던 사람들은, 밀물 때는 바다가 되고 썰물이면 섬이 되는 이곳으로 몰려왔다. 바닷가로 쫓기던 사람들은 더 도망갈 곳이 없어 바다 위 갯벌에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목재를 가져다가 갯벌에 말뚝처럼 박고 그 위에 돌을 덮은 뒤 벽돌로 집을 지어 도시를 세운 것이다. 이들에게 자원이라곤 물고기와 소금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역경은 외려 창조적 사고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바다로 뻗어나가 교역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육지에서 사람들이 피신해 올 때 십자가를 입에 문 비둘기 한 마리가 지금의 리알토 다리까지 인도했다는 베네치아 탄생 설화가 내려오기도 한다.
이 작은 도시국가 베네치아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이라는 큰 물결에 휩쓸려 멸망하기까지 1000년을 훨씬 넘게 번영을 구가해 왔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쓴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가 그토록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로마제국이 고속도로를 닦았다면 베네치아공화국은 그 고속도로에 휴게소를 만들고 통행료를 받았다.”
갯벌을 막아 새만금 간척지를 만든 곳에 베네치아처럼 세계적인 명품 ‘물의 도시’를 만들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한다. 애초 농업용지로 쓰기 위해 갯벌을 없애고, 또 언젠가는 초현대식 도시 두바이를 모델로 삼는다고 했다가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7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 베네치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데다 최대 난제인 수질개선도 걱정이 태산 같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는 일만 없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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