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27 17:55:09수정 : 2009-02-27 17:55:12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토머스 칼라일의 말처럼 노동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칼라일의 또 다른 명언은 공동체의 건강에도 일이 필수임을 입증한다. “노동은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질병과 비참함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나도는 블랙 유머 ‘청년 백수의 자기소개서’는 차라리 눈물이다. “독도 중계소 개설시 송신탑 들고 있겠음, 부식 수송 잘 안돼도 상관없음(KT), 갱도 붕괴시 구조 절대 사양, 보험금 회사 반납(지하철공사), 장시간 수중 작업시에도 산소통 필요 없음, 라이터로 용접 가능(대우조선), 충돌 실험시 본인 직접 탑승 후 보고서 제출(현대·기아차), 타이어 공기 입으로 주입 가능, 불량품 본인 구입(한국타이어), 독극물·오염물질 확인시 직접 시음(환경부), 공통사항-특별수당 절대 사양, 의료보험 필요 없음, 퇴직금 회사 환원, 주 업무 외 경비·청소업무 추가 가능, 회사 내 소모품 자비로 해결….”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풍자치고는 지나치게 자조적이지 않은가.

미국의 실업자 수가 1년 새 230만명 늘어 사상 처음으로 500만명을 넘어섰다는 음울한 소식이 들린다. 연말까지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가 미국 경제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상황은 설상가상인 듯하다. 우리나라 실질 실업자도 400만명을 훌쩍 넘을 태세다.

피터 켈빈과 조안나 자렛이 함께 쓴 <실업-그 사회심리적 반응>은 실업자의 심리적 변화가 낙관주의→비관주의→운명주의 순서로 진행된다고 한다. 일자리를 잃으면 금방 충격이 오지만 당장 체념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 빠르게 비탄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에는 운명론자가 된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의 실업자 경험은 흥미롭다. 호퍼가 무명시절 로스앤젤레스의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다 일용직을 구할 때였다. 유심히 관찰한 결과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침마다 뽑혀가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호퍼도 기분으로야 미소 띨 일이 없었지만 한 쪽에서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기다렸다. 그제야 인력 차출자가 다가왔다. 억지웃음이라도 마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렷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얻는다면 더없이 다행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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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2-13 18:01:10수정 : 2009-02-13 18:01:13

지구가 속한 은하계에는 2000억개 정도의 별이 있으며 우주에는 이와 비슷한 은하계가 1000억개나 된다고 한다. 우주의 중력으로 말미암아 수십개 단위의 은하군과 수천개 단위의 은하단이 형성되고 은하끼리 충돌하는 사건도 빈번하다. 지구상의 교통사고처럼 은하끼리의 충돌 사고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엄청난 중력이 접근 중인 양쪽 은하의 가장자리에 있는 별들을 떼어 내어 우주 공간으로 날려 버린다. 두 은하가 모두 나선형이라면 부딪칠 때의 강력한 힘으로 가스 원반은 우주 공간으로 모두 날아가 버린다. 우주의 가장 큰 교통사고가 은하 충돌이다. 은하의 밀도가 높을수록 ‘우주의 교통사고’는 더욱 잦다.

우주에서는 이보다 작은 교통사고도 발생한다. 4억7000만년 전 지구 전역에 운석 소나기가 쏟아져내린 것은 우주 공간에서 운석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증거가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됐다. 1억6000만년 전 화성과 목성 사이 궤도를 돌던 소행성들이 충돌하면서 생긴 대형 운석이 공룡의 멸종을 가져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우주 교통사고를 내는 혜성도 있다. 1994년 7월14일 모두 21개 조각으로 갈라진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목성과 충돌한 게 좋은 사례다.

마침내 우주 궤도에서 인공위성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사상 처음 발생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통신용 인공위성이 충돌한 우주 교통사고는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인 소련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지 52년 만이다. 어제는 한국이 쏘아올린 과학기술위성 1호도 미국 군사위성과 충돌할 뻔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본격적인 우주 교통사고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번 우주 교통사고는 우주 궤도에 인공위성들이 너무 붐벼 언젠가 충돌로 인한 위험한 파편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화된 것이다. 우주 궤도상에는 6600여개의 인공위성이 발사됐으며 이 가운데 3000개가량이 활동 중이다. 우주전문가들은 수년전 로마회의에서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우주비행교통규칙을 제정할 것을 호소한 적이 있다.

2020년쯤이면 신혼부부들이 첫날밤을 달나라 호텔에서 보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우주에도 교통신호등이나 교통경찰이 필요할지 모른다. 신이 교통정리를 해줄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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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2-06 17:54:24수정 : 2009-02-06 17:54:26

다음주 탄생 200주년을 맞는 찰스 다윈의 자연진화론에서 파생된 사회진화론은 인류 사회의 본질을 애오라지 경쟁과 적자생존으로 인식한다. 허버트 스펜서, 월터 배젓 등이 대표하는 사회진화론은 강대국 논리와 식민 지배의 합리화 도구로 이용되는 바람에 강력한 역풍을 맞았다. 결정적으로는 협력과 선의가 존재하는 사회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최근 들어 학자들은 협력과 신뢰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한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새로운 이론의 핵심은 경쟁이 아닌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은 잔혹한 양상을 띠거나 적대적일 때도 있지만 협력적이고 조정적인 사례가 더 많은 주장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를 무자비한 정글이나 초원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화가 이루어지는 자연환경’이라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 경우 경쟁이라는 것도 인간이 지닌 더 넓은 범주의 수월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에 불과하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신뢰다. 신뢰는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열쇠다.

미국 클레어먼트대 대학원의 폴 자크 박사팀은 일상생활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신뢰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누군가 자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체의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인간의 뇌가 긍정적 사회 신호를 절묘하게 받아들여 해석하고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의 조사결과 우리 젊은이 절반 이상이 이민을 떠올리는 등 현실에 강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의 경계를 넘어선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불신감이 두드러진 점은 또 하나의 경종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도 불안·불신·불만의 ‘3불사회’를 개탄한 적이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위기의 본질은 다름 아닌 불신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바로 신뢰의 차이라고 지적했던 것을 다시 연상하게 한다. 정권 담당자들과 사회지도층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설득은 위협보다 강하고 신뢰는 설득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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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1-30 17:39:11수정 : 2009-01-30 17:39:14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조찬 강연회 때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한 미국인사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라는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런던 리보 금리보다 더 비싼 금리를 한국에 요구한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의 대답은 냉소적인 풍자로 돌아왔다. “시장은 시장일 뿐입니다. 월가엔 ‘도덕성 해이’라는 말이 진리로 통합니다.”

그 때만해도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월가의 영웅’으로 불리던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회장이 2003년 9월 거액의 상여금 파동으로 사임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9·11테러 사건 이후 미국언론에서는 영웅담을 쏟아냈다. 그라소 회장도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벼랑 끝의 위기 상황에서 ‘뉴욕 증시를 보호했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다. 사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뉴욕 증시 개장을 알리는 벨을 누른 것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는 1억4000만달러(약 1800억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연봉과 퇴직금으로 말미암아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물러났다.

그동안 월가의 돈 잔치는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동성이라는 음악이 멈추면 결국 모든 것이 끝나겠지만 음악이 나오는 한 우리는 리듬을 타며 춤을 춰야 한다.” 월가의 호시절에 찰스 프린스 전 씨티은행 최고경영자가 했던 말이 실감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마저 월가와 더불어 즐겼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월가의 금융인들이 지난 연말에도 총 200억달러의 상여금을 챙긴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더욱 가관인 것은 보너스를 받은 사람들의 절반이 액수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무책임의 극치”라고 일갈하며 철퇴를 가할 태세다.

그러잖아도 버나드 매도프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월가의 도덕성이 땅바닥에서 발길에 차일 지경인데 더욱 치명타가 되고 있다. ‘부자들의 사교클럽’이라는 다보스 포럼에서조차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던 터이다. ‘영혼이 있는 투자’와 ‘자선의 대명사’로 월가에서 존경받다 지난해 타계한 존 템플턴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이라도 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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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1-23 17:01:28수정 : 2009-01-23 17:01:31

“아바이, 갯배 타고 으디 다녀옴메?”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강원 속초시 청호동의 명물은 갯배다. 이 배는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다. 키도 동력도 없다. 사공이 따로 없음은 물론이다. 이 특이한 나룻배는 ‘아바이마을’로 더 잘 알려진 이곳 실향민 공동체의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들 떠도는 삶을 끌고/ 아침저녁 삐걱거리며/ 청호동과 중앙동 사이를 오간 게 아니고/ 마흔 몇 해 동안 정말은/ 이북과 이남 사이를 드나든 것이다/ 갈매기들은 슬픔 없이도 끼룩거리며 울고/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오줌을 깔기며 크는 동안/ 세계의 시궁창 같은 청초호에 아랫도리를 적시며/ 우리는 우리들 피난의 나라를 끌고/ 마흔 몇 해 동안 정말은/ 우리들 살 속을 헤맨 것이다.’

‘갯배’와 ‘청호동’이란 소재로 여러 편의 시를 쓴 이상국 시인의 <갯배 1>은 아바이마을의 신산한 삶과 귀향의 염원이 서려 있다. 이제는 조양동과 이어지는 도로가 생겨 교통도 다소 편리하게 됐지만 갯배는 여전히 명물의 하나다.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부쩍 늘어날 때가 있었다.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기대에 부풀어 마음이 들뜨고, 그 반대면 실의를 감추지 못하는 곳. 그래서 정상회담 같은 큼지막한 남북관련 행사가 열리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찾아와 실향민의 반응을 살피는 곳이 아바이마을이다. 서울 용산 해방촌, 전북 김제 용지농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월남인 정착촌의 하나여서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월남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대다수 월남인들이 통념과 달리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니고 분단과 반공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연구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실향의 애환이 서려 있는 아바이마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속초항 방파제 연장공사로 2010년부터 아바이마을의 진입도로가 끊겨 속초시가 주민들의 집단이주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이곳은 한때 6000여명이 살았으나 2세대들의 객지 행으로 인구도 줄고 옛 모습도 많이 잃어가고 있다. 대부분 이주를 찬성한다지만 아바이마을 사람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구한 실향인 셈이다. 이번 설도 이들에게는 망향의 슬픔을 달래야 하는 명절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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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1-16 18:09:12수정 : 2009-01-16 18:09:15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1900년 만국 박람회 개최를 위해 오를레앙 철도가 건설한 철도역이었다. 1986년 개관한 이 현대미술관이 낡아 폐쇄된 기차역이 아니라 평범한 장소에 세워졌더라면 지금처럼 화젯거리가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인상파 미술품을 전시하던 국립 주드폼 미술관 소장품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 전시할 수 있게 됐다.

런던의 템스 강 남쪽에 자리한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가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참신한 사례다. 20년 동안 용도 폐기됐던 흉물 공간이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버려졌던 화력발전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재활용한다는 발상부터 획기적이었다. 이곳은 영국의 빨간 공중전화 박스와 워털루 다리를 디자인했던 건축가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이 지은 건물로 유명하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2000년 5월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옹색하던 영국 현대미술관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스페인 북부 항구도시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철, 중공업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쾌거다. 검은 도시가 세련된 문화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과 조각상 하나로 도시 이미지를 단번에 변화시킨 놀라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다.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물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방문으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그제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에서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으로 조성하겠다고 확약했다. 접근성이 떨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아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게 됐다. 예정대로 3년 뒤쯤 어느 나라 못지않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나면 시민들의 자부심 또한 남다를 것이다. 이곳이 삼청동·인사동 화랑가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또 하나의 문화명소로 자리잡을 게 분명하다. 정부는 물론 미술인들에게 남겨진 숙제도 적지 않다. 때마침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4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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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1-09 17:54:24수정 : 2009-01-09 17:54:27

‘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광고를 하기 시작했던 모건스탠리의 첫 카피 문구다. 세계 최고 금융업체의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모건스탠리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이 광고 카피야말로 자신들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는 어느 투자은행도 따라올 수 없는 윤리성과 영업 실적을 오랫동안 뽐냈다.

론 처노가 쓴 <금융제국 JP모건>에는 이런 일화도 나온다. 모건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12년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미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한 내용이다. 새뮤얼 언터마이어: 빌리는 사람의 자금이나 재산을 바탕으로 대출해 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모건: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언터마이어: 자금이나 재산 이전에 말이지요? 모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합니다. 돈으로 인격을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채권을 가지고도 저한테서 돈을 빌릴 수 없습니다. 언터마이어: 하지만 제 요지는 은행이 채권의 가치를 유지해 줘야 할 법적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모건: 은행은 법적 책임 말고 더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도덕적 책임이 그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50년대 미국 코미디언들은 “모건 은행의 창구 직원들은 100만달러짜리 미소를 갖고 있지만 100만달러를 지닌 고객에게만 웃어준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많이 해 주라며 돈을 풀고 은행들을 독려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초단기로 돈을 굴리며 머니게임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고, 기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국가가 중소기업의 대출보증까지 서 주겠다고 했지만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서민의 눈으로만 보아도 그렇다. 순수의 상징인 자연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조차 이런 명언을 남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은행이란 날씨가 좋을 때 우산을 빌려 주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산을 돌려 달라고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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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1-02 17:46:59수정 : 2009-01-02 17:47:01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들인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현대세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불확실성’을 든다. 냉전 종식 이후 격변한 지구촌을 성찰하기 위해 설정한 개념이 불확실성이다. 기든스는 더 이상 주인으로서의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본다. 예측불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위험의 악순환은 늘어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사고를 없애자’가 아니라 ‘사고를 줄이자’라는 표현밖에 쓸 수 없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벡은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합리적 통제와 제도를 동원하지만 불확실성만 더욱 증대되는 것이 바로 위험사회라고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이 모두 ‘인위적 요소’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실수와 증오, 탐욕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2년 전 타계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로 말미암아 모든 분야에서 생겨나는 과잉현상이 불확실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불확실성은 지구화에 의해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현상만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교통수단의 세계화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에도 대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차원이 다소 다르지만 존 K 갤브레이스가 1975년에 출간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지적했던 것은 오늘날의 불확실성에 비하면 ‘확실성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프랑스 석학 에드가 모랭의 수사처럼 ‘어둠과 안개의 세계’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까.

파이낸셜타임스는 2009년을 관통할 열쇳말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미국 경제전문 인터넷사이트 마켓워치도 국제 투자시장의 새해 화두는 단연코 ‘불확실성’이라고 전했다. 그러잖아도 ‘불확실성의 시대’인데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 불확실성이 한번 더 포개진 느낌이다. 누구나 안정된 세계와 질서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삶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삶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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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8-12-26 17:53:10수정 : 2008-12-26 17:53:13

하와이 민요 ‘알로하오에’를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하와이 왕국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생명은 모든 곳에 있다. 나무에도, 꽃에도, 무지개에도, 바위에도. 그렇게 모든 존재는 태초에 신이 나눠준 생명의 숨결을 나누며 살고 있다.” ‘알로하’는 바로 그런 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알로하는 하와이 원주민 말로 ‘안녕’이란 인사지만 특유의 관용 정신과 서로 인정하는 마음이 담겼다. 하와이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알로하 정신’이 있어 더욱 특별하다.

사실 알로하의 의미에 대한 일치된 정의는 없다. 피터 아들러 변호사는 사랑을 전하거나 측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인정이나 동정을 보여줄 때, 자비와 호의를 나타낼 때, 인사나 작별·슬픔을 드러낼 때 두루 쓰인다고 설명한다. 마헤알라니 카마무 원주민 변호사는 알로하 정신이 무조건적인 베풂과 나눔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와이 낙원의 이면>이란 책에서 홀리 앤더슨은 “알로하 정신은 겸손과 조화, 은총을 주신 신의 숨결”이라고 해석한다. 알로하 정신 가운데 하나가 손님의 목에 화환 ‘레이’를 걸어주는 풍습이다. ‘레이’는 훌라춤과 더불어 하와이 문화의 2대 상징이다. 하와이 주의 별칭 ‘알로하 스테이트’도 여기서 비롯됐다.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지지받은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알로하 정신’이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며 전통 문화와 사회적 관습 속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터득한 것이다. 오바마는 <담대한 희망>이란 저서에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관용, 평등, 소외계층 옹호 같은 가치를 머리 속에 깊숙이 새겨 놓았다고 회상했다.

하와이 오아후 해변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는 정치적 경쟁 과정에서 그를 이끌어온 동력 가운데 하나인 ‘알로하 정신’을 충전하는 중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성탄절날 전했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난 급박한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한가하게 무슨 휴가냐고 의아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재충전한 오바마의 알로하 정신이 미국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유감없이 현현된다면 더 크게 바랄 것도 없으리라. 기실 알로하 정신이 절실한 곳은 극도의 분열정치로 치닫는 세밑의 대한민국 정치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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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8-12-19 18:01:41수정 : 2008-12-19 18:08:44

선인들은 계절에 맞춰 격조 있게 사는 슬기를 지녔던 것 같다.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장조(張潮)는 책도 철 따라 다르게 읽으면 좋다고 권면했다. 그는 <유몽영(幽夢影)>이란 저서에 이렇게 썼다. ‘문집을 읽자면 봄이 제격이다. 그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역사서 읽는 때는 여름이 적당하다. 그 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백가 읽기에는 가을이 꼭 맞다. 그 운치가 남다른 까닭이다. 경서 읽기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한 까닭이다.’

그는 계절과 비도 품격을 나눴다. ‘봄비는 책읽기에 알맞고, 여름비는 바둑·장기 두기에 꼭 맞으며, 가을비는 점검하여 간수하기에 마침 맞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적당하다.’ 우리네 서민들은 계절 비를 속담으로 구전하고 있다. ‘봄비는 일 비이고, 여름비는 잠 비고, 가을비는 떡 비고, 겨울비는 솔 비다.’ 봄에는 비가 와도 들일을 해야 하며, 여름에는 비교적 농한기여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비는 햅쌀로 떡을 해 먹으며 쉬고, 겨울에는 술을 마시며 즐긴다는 뜻이다.

‘봄꽃은 화사해서 가슴에 깃들고 여름꽃은 강렬하여 심장에 피며 가을꽃은 청초해서 그리움을 닮고 겨울꽃은 고결해 영혼을 담금질한다’며 꽃의 정감을 철따라 즐기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봄꽃은 환희로, 여름꽃은 정열에 의해, 가을꽃은 향기를 담고 멋대로 피고 지는데, 환희·정열·향기를 누린 겨울꽃은 오로지 사람 마음에서만 피고 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봄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 바람은 차와 같으며, 가을바람은 연기와 같고, 겨울바람은 생강이나 겨자와 같다는 비유도 전해진다. 계절 따라 일미 어종도 달리 한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엔 민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숭어가 제격이라고. 19세기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는 식음료를 계절에다 맞추는 지혜를 전수한다. ‘밥 먹기는 봄처럼 하고, 국 먹기는 여름 같이 하며, 장 먹기는 가을 같이 하고, 술 마시기는 겨울 같이 하라.’

어느 때보다 힘들고 살천스러운 겨울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계절에 맞는 정취를 즐기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애옥살이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과는 작은 정이라도 나누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아름다운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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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