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餘滴)'에 해당되는 글 170건

  1. 2009.05.22 [여적]갑부들의 비밀회동 (2)
  2. 2009.05.15 [여적]기(氣) 카드
  3. 2009.05.08 [여적]흰 코끼리
  4. 2009.04.17 [여적]집착과 무관심
  5. 2009.04.10 [여적]패밀리즘 (2)
  6. 2009.04.03 [여적]프랑스의 백기투항 (1)
  7. 2009.03.27 [여적]‘G8시대의 종언’
  8. 2009.03.20 [여적]인권시계
  9. 2009.03.13 [여적]‘사랑의 쌀독’
  10. 2009.03.06 [여적]장관의 복장

입력 : 2009-05-22 17:47:20수정 : 2009-05-22 17:47:20

1907년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설립한 거대 신탁회사 니커보커 트러스트가 구리 회사를 인수한 뒤 구리 가격을 한껏 부풀리다 거품이 꺼지면서 파산하고 말았다. 수십개의 은행과 8000여개의 기업이 덩달아 도산하면서 혼란은 극에 이르렀다.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 거래까지 중단되자 궁지에 몰린 은행가와 갑부들이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우리만이라도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빼지 말자’고 결의한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자마자 인출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금융황제’ JP 모건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모건 박물관의 서재에 갑부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환기시켰다. 은행들은 모건의 제안대로 기금을 출연하고 의회에 연방준비제도의 필요성을 청원한다. 미 의회의 ‘국가화폐위원회’라는 신설 특별위원회도 모두 모건 일파로 구성됐다. 이들은 헌트클럽이란 곳에서 비밀리에 회동해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헌법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안을 기초했다. 모건은 홀로 중앙은행 구실을 해내 ‘배트맨’이나 다름없었다. 음모론자들은 모건이 병 주고 약준 꼴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언론을 통해 경제 혼란을 교묘히 부추기면서 자신과 유대인들의 이익을 챙겼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달 초 미국 내 세계 최고 갑부들이 뉴욕 록펠러대학 총장 사택에서 극비리에 회동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자 일부 미국 언론은 100여년 전 JP모건 회의를 떠올리고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블룸버그, 데이비드 록펠러 등 이름만으로도 세계 최고 갑부들의 모임으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차원이 다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이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참석하는 ‘빌더버그 비밀회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비밀이 알려지자 자선활동에 관한 회의였다고 해명했지만 음모론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자선활동만을 위해 극비리에 만날 까닭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도둑귀족인 모건과 달리 대부분 ‘기부왕’들이어서 일단 믿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억측을 떨쳐버리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금융위기의 끝은 반드시 또 다른 자본의 힘을 키워온 역사적 궤적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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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5-15 17:46:37수정 : 2009-05-15 17:46:38

구소련의 최고 전기 기술자였던 세미온 키를리안은 1939년 고주파 고전압의 전기를 물체에 가했을 때 이상한 흔적이 사진에 찍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를 단순한 고압방전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생각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찍는 ‘키를리안 사진’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뒤 한 과학자가 키를리안에게 같은 식물의 잎 두 장을 가져와 ‘키를리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촬영 결과 한 장은 선명하고 밝은 빛을 보이는 데 반해 다른 한 장은 군데군데 희미한 빛만 나타났다. 마치 다른 종류의 잎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잎 하나는 병에 감염된 식물에서 따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현상은 나뭇잎을 잘라서 찍으면 잘려져 나간 부분까지 드물게나마 찍혀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 ‘유상효과’(phantom effect)라 부른다. 과학적으로는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지만 오라(aura) 신봉자들에게는 생물 에너지의 존재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기를 학문적으로 분류하자면 한없이 복잡하다. 가장 간단하게는 인체 내의 기를 원기(元氣), 정기(精氣), 진기(眞氣)로 나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아 나오는 유한한 에너지가 원기다. 정기는 호흡을 통해 음식물이 산화되면서 나오는 에너지다. 정신 집중과 깊은 호흡을 할 때 얻어지는 에너지를 진기라고 부른다.

한 대형 방문 판매회사가 기가 들어있다는 플라스틱 카드를 5만~500만원대에 팔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전국 300여개 지점의 방문 판매사원들은 이 카드를 몸에 지니거나 집·사무실 등에 붙여놓으면 기가 생긴다며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고 한다. 산소에 묻어놓으면 자손들이 잘된다는 풍설로도 판촉하고, 심지어 정신 장애인이 ‘기 카드’로 제정신을 회복한 사례도 있다고 선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운동선수들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팔찌, 기목걸이, 기반지 착용이 유행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기 상품 열풍은 홍보 효과를 기대한 한 업체가 오래전 태릉선수촌에 수천개씩 기증한 것이 믿거나 말거나 유행의 불을 더욱 강렬하게 지폈다. ‘기차다’고 해야 좋을지, ‘기가 찰’ 노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가 도대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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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5-08 18:04:39수정 : 2009-05-08 18:04:41

불교에서 흰 코끼리를 더없이 귀중한 존재로 여기는 까닭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흰 코끼리는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을 만큼 신성시한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흰 코끼리가 국가의 수호신으로까지 대접받는다.

흰 코끼리는 역설적이게도 ‘처치 곤란한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물단지나 계륵 같은 존재로 변하는 경우다. 인도에는 흰 코끼리와 관련된 그럴 듯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인도의 국왕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신하에게 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한다. 흰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가문의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왕이 내린 이 신성한 존재를 평생 받들어 모시는 의무를 진다. 신하 입장에서는 국왕이 선물한 코끼리가 죽으면 왕권에 대한 도전이나 반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코끼리가 자연사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열과 성을 다해 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흰 코끼리를 먹여 살리는 일이다. 몸무게가 4~8t에 이르는 코끼리 한 마리를 보살피자면 허리가 휠 정도라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엄청난 대식가인 코끼리는 하루 16시간 동안 180~270㎏의 먹이를 먹어 치운다. 과일, 나무껍질, 잎사귀, 풀을 주식으로 하지만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어지간한 재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사육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70년이나 된다. 실제로 사육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흰 코끼리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신하의 심적 고통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선물 받은 코끼리 사육문제는 세종대왕 때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어서 조선왕조실록에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다.

흰 코끼리는 오늘날 큰 돈을 들인 뒤 처치가 곤란한 투자의 상징이 되곤 한다. 어쩌면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흰 코끼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화해와 교류의 상징물이다. 남북 어느 쪽도 버리기엔 너무나 신성하고 그동안의 물적 정신적 투자가 아깝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북한이 개성공단을 놓고 걸핏하면 남한을 위협하는 마당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보장되지 않으면 흰 코끼리 이상으로 소중한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는 인내심과 솔로몬의 지혜가 이럴 때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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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4-17 18:02:25수정 : 2009-04-17 18:02:27

‘무관심을 파는 커피숍.’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무관심’을 꼽는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커피를 건네준 뒤에는 고객을 완벽하게 무관심 속에 방치해 두는 전략이 손님을 끄는 요인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 고객을 맞이하고 주문대로 내줄 때까지는 최상의 친절과 정중함으로 대한다. 사람들은 시선을 적절하게 차단해주는 넓은 공간에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사색을 하든 혼자서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서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친절한 무관심’을 산다고나 할까.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도 드물다.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가장 예의 바르고도 잔인한 방법이 무관심이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다. J.토퍼스는 “칼로 낸 상처보다 말로 낸 상처가 더 아프고, 말로 낸 상처보다 무관심의 상처가 더 아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무관심은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은 “무관심으로 인해 인간은 실제로 죽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다”고 극언했다.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은 관심을 갖는 척하는 것이란 속언도 음미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무관심에 발끈했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에 쏟는 정도의 관심을 북한에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노기’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3년 전 북한 미사일 발사 때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무관심”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오바마도 익히 드러난 북한의 전술전략을 읽고 있을 게 자명하다. 북한이 로켓발사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초강수로 맞서는 것도 관심을 높여가기 위한 ‘위기조성 전술’로 받아들여진다.

집착하는 북한과 무관심한 척하는 미국. 서로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외교 게임이 여름 장마처럼 지루하고 짜증나기 짝이 없을 듯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집착도 무관심도 모두 병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미국에 대한 집착이 오래된 고질병이라면 오바마의 무관심도 병이라고 해야 할까. 환심을 사려면 그 사람을 끌려고 하기보다 먼저 그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두는 것이 낫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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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4-10 17:38:38수정 : 2009-04-10 17:38:41

영화 <괴물>에 관객들이 열광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가족’이다. 보는 이의 심장박동수를 급격히 높여주는 것은 가슴 속에 싸함이 밀려오는 ‘패밀리즘’의 강렬한 메시지였다. ‘가족을 지켜줄 사람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내가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국면이나 위험사회일수록 가족에 대한 의존도는 한층 커진다. 힘든 시대일수록 가족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선지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초 신가족주의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여가생활의 중심이 개인에서 가족으로 변하는 불황기 패밀리즘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패밀리즘은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가 자체를 이상적 공동체로 삼는 삶의 원리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 원리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하려는 경향을 포괄한다. 북한에서 널리 사용되는 ‘가족주의’는 몇몇 사람끼리 비원칙적으로 정실 관계를 맺고 서로 싸고돌면서 조직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사고방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사회학자들은 한국적 부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패밀리즘을 든다. 고영복 교수 같은 이는 특히 공직자 부패현상을 패밀리즘에서 찾는다. “우리 공무원들이 온갖 교육을 받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가족에 대한 애착심을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다. 좋은 예가 부정부패다. 부정부패는 가족이 잘 사는 것을 도모한다. 이는 국가에 대한 범죄이다. 가족도 가장의 부정부패를 나무라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도 독소를 서둘러 잘라내기보다 측근을 중시하고 감싸는 패밀리즘 행태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소수 콤플렉스가 강해 오랜 친구나 동창, 후배, 측근을 선호하는 패밀리즘이 쉽게 작동했다. 현 정권 실세들에게 “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고 했다던 노 전 대통령 측의 시도는 패밀리즘의 전형이다. 믿었던 패밀리 때문에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는 광경은 참으로 역설적이긴 하다. 참여 정부의 패밀리즘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또 다른 패밀리즘으로 뭉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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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4-03 17:53:54수정 : 2009-04-03 17:53:56

중국인이 좋아하는 색깔의 서열은 황색, 자주색, 빨간색, 녹색, 파란색, 검은색, 흰색 순이다. 수·당나라 때에는 신분에 따라 이 순서대로 옷 색깔을 달리했다. 중국인들은 검은색과 함께 흰색을 가장 기피하는 편이다. 결혼 축의금이나 촌지를 흰 봉투에 넣어주면 한 번에 모든 관계가 끝장날 정도다. 대만 국민당 정권을 ‘백색정권’이라 부르고, 사상이 나쁜 사람을 ‘백전’(白顚·이마에 흰 점이 있는 말이라는 뜻)이라고 타매한다. 흰색을 싫어하는 것은 고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고 나서 흰색을 덮는 관행에다 투항의 의미로 백기를 든 관례 때문이다. 한나라 때부터 항복의 뜻으로 백기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중국과 비슷한 시기인 서기 100년쯤에 백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 역사가 코넬리우스 타키투스는 109년 출간된 <연대기>에서 69년에 비텔리우스와 베스파시언 황제가 벌였던 크레모나 전투까지만 해도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리는 것이 항복의 표시였다고 기록했다.

현대 전쟁에서 항복의 표시인 백기가 공인된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1907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에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들끼리 항복 여부를 알 수 있는 표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백기가 쓰인 것은 염료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하얀 천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전투 현장에 널린 형형색색의 깃발과 구분이 잘 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나온다. 부상자가 생겼을 때 하얀 붕대를 흔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시한 게 계기가 됐다는 견해도 있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항복을 방지하기 위해 지휘관이 병사들의 흰옷과 양말은 물론 속옷까지 압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자존심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센 프랑스가 중국의 경제압력에 또 한 번 ‘백기투항’을 선언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티베트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것이다. 프랑스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도 티베트 독립 시위대를 두둔하다 까르푸 불매운동에 놀라 백기를 든 적이 있다. 국제관계에서 힘의 위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위기로 힘이 빠진 미국을 위협하며 굴기하는 중국이 등골을 오싹하게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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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3-27 17:45:53수정 : 2009-03-27 17:45:55

세계 경제상황의 변화는 거의 어김없이 경제질서의 권력 판도 재편을 불러온다. 1차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비틀거리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러 태환 규정 철폐에 이어 전 세계적 금융 불안정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4개국 재무장관이 1973년 첫 회의를 열었다. 미국의 발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곧 4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회의로 격상됐다. 75년 일본과 이탈리아가 참석하면서 G6이 됐다. 다음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모임에는 미국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나다가 승차해 마침내 한 시대를 구가하는 G7을 구성했다.

냉전 종식 후 97년 러시아가 역시 미국의 제안으로 이 모임에 합류하면서 G8로 확대됐다. 한때 G7 국가에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이 더해져 G1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릴 때도 있었다. 그 사이 신흥국가들의 성장으로 G8을 G13으로 확대개편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2005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이 초청된 것이 계기다. G13에서 멕시코를 제외한 G12도 있었고, 멕시코, 아르헨티나, 터키를 포함해 G15로 불리기도 했다.

G8은 지난해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고비로 중심역을 잃었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불타고 있는 판에 로마 살롱에 모여앉아 바이올린이나 켜고 있다”는 언론의 비아냥거림도 덧씌워졌다. 이들의 특징은 세계경제를 입맛대로 요리해 온 비민주적 그룹이라는 점이다. G8이 어떤 결정을 마음대로 내려도 좋다고 위임한 국제법이나 협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부쩍 비중이 커진 G20은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태어났다. G13에다 한국, 호주, 터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등 6개국과 유럽연합(EU)이 추가된 것이다. 한때 G22, G33 모임도 열렸지만 G20으로 통일됐다.

브라질을 방문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엊그제 “G8의 시대는 끝났다. G20이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를 만드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지니고도 오랫동안 소외돼 왔던 한국에는 기회이자 역량을 시험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미 내년 의장국을 맡아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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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3-20 18:02:07수정 : 2009-03-20 18:02:10

유엔은 2006년 6월19일 기존의 인권위원회 대신 지위를 격상시킨 인권이사회를 출범시켰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위스의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유엔 인권시계’를 선보였다. 문자판(다이얼)과 스트랩에 유엔의 상징색인 연한 하늘색을 사용하고 손목 부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유엔 마크를 새겼다. 이 시계에는 19일의 인권이사회 첫 회의 개최를 기념해 문자판에 다른 숫자 없이 ‘19’만 써넣었다. ‘19’는 ‘모든 사람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19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1년 뒤 스와치는 두 번째 ‘유엔 인권시계’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셰이크 더 월드 넘버2(Shake the World No.2)’란 이름을 붙였다. 두 번째 시계는 첫 번째 것과 디자인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문자판에 다른 숫자를 생략하고 2시 방향에 ‘2’라는 숫자만 크게 디자인했다. 두 번째 시계라는 점과 세계인권선언 2조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조항은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평등정신이 충만하다. 이들 기념 시계의 판매 수익금은 유엔에 모두 기부됐다. 스와치는 앞으로도 다른 조항들의 의미를 담은 ‘유엔 인권시계’를 계속 출시할 계획이다.

사실 ‘유엔 인권시계’는 상징적이다. 인권이 후퇴 기미를 보일 때마다 우리는 “거꾸로 가는 인권시계”라고 힐난한다. 우리의 인권시계는 도대체 몇 시인지 따져 묻기도 한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맞서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들이 파면 등 중징계를 받자 각계에서 “군의 인권시계를 20년 전으로 되돌렸다”고 반발하고 있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풍자와도 엇박자다.

그렇잖아도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지수가 퇴보하고 있는 징조가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특별조사관 접견을 거부하는가 하면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방침도 발표했다. 인수위 시절엔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다 나라 안팎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가 국민들의 높아진 인권의식과는 사뭇 다른 ‘인권시계’를 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유엔 인권시계’를 사다줘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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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3-13 17:48:33수정 : 2009-03-13 17:48:35

한쪽에서는 비만을 염려하며 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경제위기로 끼니마저 걱정하는 양극화가 날로 더해가니 세상이 살천스럽다.

선인들은 쌀독 바닥 긁을 때가 가장 겁난다고 했다. ‘쌀독에 거미줄 친다’는 속담이 나올 때쯤이면 애옥살이는 갈 때까지 다 간 것이다. 쌀독이 차 있으면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 선조들이다.

박희선 시인의 ‘빈 쌀독’은 애타는 심사가 측은하다 못해 차라리 은은하다. “오래된 빈집 마당에/금이 간 쌀독 하나가 하늘을 향하여 운다…가난한 굴뚝의 저녁때가 되면/키 작은 안주인은/깊은 쌀독에다 상반신을 묻고/바가지로 바닥을 긁었다…어느 해 겨울에는/하느님께서 쌀독을 들여다보시고/흰눈보다 부드러운 햅쌀을/두 말가웃이나 이웃 몰래 담아주시었다(하략).”

김계반 시인의 ‘항아리’는 빈 쌀독의 허기에서 연민지심이 잔뜩 현현한다. “비어있는 줄 알면서도 손 넣어/한숨만 한 바가지 퍼내고 뚜껑 덮는/빈 쌀독 배가 부르다…/봄볕에 마른버짐 핀 개구쟁이들 얼굴이/거뭇거뭇 뜨는 나물죽사발 속을/송사리 잡을 적 물풀 헤적이는 종아리처럼/숟가락 첨벙거리는 두레상/엄마는 왜 안 드시냐고 아이들 물을 때마다/그때마다 배부르다 대답하는/엄마는, 둥두렷 보름달 같은 쌀독이었다.”

전쟁의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애처로운 모성을 그린 최정희의 단편소설 ‘정적일순(靜寂一瞬)’에서는 절통함을 넘어 담담한 허무가 묻어난다. “쥐가 먹을까봐 독에다 넣어둔 쌀이 자리가 났다. 한 독만이 아니고 세 독에 다 자리가 났다. 쌀독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의 쌀독’이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강퍅한 세상을 그나마 살갑게 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지역을 가리지 않는 게 한층 상서롭다. 쌀독의 이름부터 따사로운 ‘사랑의 화수분’이다. 아무리 퍼가도 줄지 않는, 설화 속의 보물단지 화수분 같은 ‘요술 쌀독’을 만들어주는 이웃의 마음들이 더없이 갸륵하다.

부박한 언행으로 서민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정치인과 지도자들에 비하면,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자분자분 정이 넘치는 이들이야말로 ‘우아한 빈자(貧者)’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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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3-06 17:55:43수정 : 2009-03-06 17:57:23

옷차림에 관한 우화 한 토막. 어떤 나라의 현자(賢者)가 누더기를 입고 읍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이를 발견하고 은근히 나무랐다. “옷이 그게 뭔가. 자네는 창피하지도 않나?”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무슨 소리, 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괜찮다네.” 다음날이었다. 현자는 자기 마을에서 역시 누더기를 입고 활보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참지 못하고 또 한 마디 해댔다. “뭐야, 자네 마을에서도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나?” 현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긴 누구든 나를 다 아니까 괜찮다네.”

옷차림은 대개 그 사람의 성격, 습관, 개성, 사회적 위상, 경제 상황을 웅변한다. 흔히들 멋쟁이는 옷을 입지 않고 스타일을 입는다고 한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이를 뒷받침하는 말을 남겼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다음주부터 작업복을 입고 일하겠다고 선언해 여기저기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뉴질랜드 방문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왜 농림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고 다니느냐”는 한 마디를 듣고 나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탓이다. 야당 대변인은 “옷을 갈아입으라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말에 화들짝 놀라 바로 옷을 갈아입은 장관을 보니 유신·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쏘아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네티즌들에게 더없이 좋은 안줏거리로 떠올랐다. 이제 곧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복, 국방부 장관은 군복, 노동부 장관은 근로자 복장,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의사 가운, 법무부 장관은 법복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할 것 같다는 등 풍자와 해학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농업이 살아 꿈틀거릴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것도 실용주의라면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는 비아냥거림도 등장한다. 덩달아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농업 살릴 걱정보다 옷차림 걱정으로 머리를 싸매게 생겼다.

불현듯 열흘 전쯤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 공무원들에게 튀는 헤어스타일과 지나치게 화려한 색깔의 옷을 금지하는 ‘복장 지침’이 내려진 뒤 한 서방 언론이 덧붙인 촌평이 생각난다. “정저우시는 패션 스타일보다 농업의 미래상과 철도역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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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