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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히말라야 14좌의 ‘희망과 고독’

폴란드의 저명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의 등반철학은 남다르다. 유명 산악인이 하나같이 히말라야 8000m급 정상에 도전하는 것과 달리 7925m의 가셔브룸 4봉에 오르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단지 8000m급 산이라고 하여 오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발 8000m에서 불과 75m 모자라는 히말라야 봉우리라고 의미가 없느냐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14개나 품고 있지만 7000m급 산도 350여개나 거느리고 있다. 기실 지구상에 7000m 이상 솟아 있는 산은 모두 히말라야에 모여 있는 셈이어서 희소성이 떨어질 법도 하다.

쿠르티카는 1985년 11일간의 사투 끝에 가셔브롬 4봉 정상 바로 앞에 다가섰음에도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서쪽빙벽’이라며 미련 없이 돌아서는 기이한 산사나이이기도 하다. 정상의 유혹도 초월한 ‘설벽의 구도자’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등산을 ‘인내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쿠르티카와는 달리 이탈리아 출신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는 세계 등반 기록의 역사를 갈아 치운 정통파 산악인이다. 1978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뒤 곧이어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를 단독 등반하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세계 역사상 가장 탁월한 등반가다.
그는 무산소 등정, 단독 등정, 알파인 스타일 등반, 새 루트 개척 등반 등 늘 새로운 방식으로 산을 올랐다. 덕분에 등반을 철학 이상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스너는 한국 여성산악인 고미영을 비롯한 30여명의 알파니스트를 죽음으로 몰아간 낭가파르바트를 오르고 나서 산악문학의 고전이 된 <검은 고독 흰 고독>(이레)을 썼다.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등정한 엄홍길이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을 집필하도록 동기부여한 명저이기도 하다.

그는 극한의 세계에서 찾은 고독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그에게 히말라야 등반은 위대한 도전이자 산에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오르려고 생각할수록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애국심 따위를 팔지도 않는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올랐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일 뿐 나라를 위해, 즉 볼차노를 위해 이탈리아를 위해, 혹은 오스트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또 다른 신화적 산악인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수문출판사)도 등산이 스포츠와는 다른 영역이어서 자연에 대한 사랑과 정신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953년 낭가파르바트를 최초로 단독 등정하고 33살에 산악인의 최후를 히말라야에서 맞은 불은 모험정신을 내세운다.

“8000m급의 거봉은 인간으로서 최후의 모험을 단행하지 않고는 등정을 이룰 수 없다. 나는 그런 모험을 강행했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를 쓴 원로 산악인 이용대의 말대로 더 이상 미지의 세계나 미답봉이 없어진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에 오르는 과정과 정신일 듯하다. 쿠르티카가 일찍이 그랬던 것처럼 산의 높이보다 산과 만나는 태도가 요체이다.

한층 더 새겨들을 것은 프랑스 산악인 리오넬 테레이의 말이다.

“등산은 자기과시가 아니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자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혹하며 신중한 도전이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쾌거를 이룬 오은선 대장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