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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장자의 꿈과 사이버세계

입력 : 2008-11-14 17:27:14수정 : 2008-11-14 17:27:29

‘아바타’라는 말이 대중화한 결정적 계기는 1992년 첫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 크래시>다. 이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 활동을 해야 한다. 가상사회는 이 소설이 나온 뒤부터 웹상에서 몰라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분신·화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avataara’에서 유래한 ‘아바타’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아바타’는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가상현실게임, 웹 채팅 등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그래픽 아이콘을 나타내게 됐다. <스노 크래시>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과학 현실에서 매력이 반감된 소설일지 모르나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영미소설 베스트 100선>에 포함될 만큼 문학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은 아직 인터넷에 대한 관념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시절 가상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예언한 것은 물론 필립 로즈데일이 ‘세컨드 라이프’라는 가상세계를 실제로 만드는 상상력을 제공했다. 2003년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이지만 현실 세상과 연결 고리를 가진 꿈과도 같은 곳이어서 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인터넷 사이트다. 수백만 인파가 몰려들어 현실세계에서와 똑같은 삶을 체험하도록 하는 공간이 인터넷상에 창설되면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이 될 수 있는 시간만 기다리곤 했다.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란 별명이 붙은 로즈데일의 목표는 <스노 크래시>가 상징하는 ‘꿈꾸는 모든 것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가상과 실재를 묶는 매트릭스 개념은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이야기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장자> 내편 제물론의 마지막 장은 ‘호접몽’으로 너무나 유명한 대목이다.

장자는 어느 날 제자를 불러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꿈에서 깨고 보니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호접몽’은 피아(彼我)의 구분이나 내외의 차이를 뛰어넘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상징한다.

‘호접몽’은 카프카의 <변신>이 탄생하는 데 상상력을 충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카프카의 작품세계에서 나타나는 자아 분열은 그가 탐독한 장자와 노자의 세계관과 흡사한 구조를 띤다.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채 상호 순환하는 작중 인물들의 형상은 ‘호접몽’의 비유와 닮았다. ‘사회적 외부세계와 심리적 내부세계의 변증법적 교체관계’는 카프카의 서술 공간에서 자주 반복되는 광경이다.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일체의 존재를 하나로 보는 무위자연의 세계관을 바탕 삼았다고 해도 좋겠다.

‘호접몽’과 <변신>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며 새롭고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도 ‘호접몽’ 세계를 영상화한 매트릭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전 장자가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영화와 인터넷상에서 실현될 수 있게 된 것이 공교롭고도 경이롭다. <스노 크래시>가 그린 창조적 공간·사회적 평화·자발적 선택이 아침 출근시간이면 사라졌다가 밤이면 다시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실과 가상을 오가고, ‘호접몽’을 꾸며, ‘변신’을 거듭하고 사는 게 현대인의 참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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