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터키가 ‘칸카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르는 유일한 나라다. 터키는 6·25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견해 한국을 도왔기 때문이다. 터키는 1개 여단 1만4936명을 파병해 전사·실종자 896명, 부상자 2,147명을 낳았다.


   반면에 한국은 오랫동안 터키의 은혜를 사실상 잊고 지냈다. 1982년 케난 에브렌 대통령이 터키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환영 분위기는 그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1986년 투르구트 외잘 총리가 방한했을 때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터키인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심어준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다. 터키 선수단이 입장할 때 관중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이와는 달리, 소련 선수단이 입장하자 스탠드에선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하던 터키 국민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소련 지령을 받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구하기 위해 피를 흘렸건만, 소련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자 섭섭한 마음이 커졌다.


   설상가상은 서울올림픽을 취재하러온 터키 언론이 한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였다. ‘터키가 6·25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변 결과는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90% 이상의 어린이가 ‘모른다’고 답했다. 터키 유력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분노 그 자체였다고 한다. ‘우리의 영혼은 아직 한국의 하늘을 떠돌고 있는데도 우리를 잊었는가, 한국 형제들이여!’ 터키 국민은 자신들이 피 흘려 지켜준 형제의 나라가 급속한 발전을 이뤄내 올림픽을 연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곧바로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터키 지도층까지 ‘한국을 짝사랑하지 말고 잊어버리자’며 속내를 털어놨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자스민 의원>


   한국의 터키 푸대접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99년 8월 터키는 서부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막대한 사망자와 재산피해를 냈다. 한국정부는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의 위로전문과 함께 7만 달러의 구호금을 터키 정부에 전했다. 일본 정부는 외상(외교장관)이 터키 수도 앙카라로 날아가 100만 달러 구호자금 지원을 약속하는 장면이 CNN 방송을 타게 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도 10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러자 우리 정부의 지원금이 턱없이 적은 데다 성의마저 없다는 힐난이 일어났다. IMF 외환위기를 채 극복하지 못한 때라지만 ‘너무 했다’는 지적이 대세였다. 어려울 때 도와준 터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각계에서 자발적인 성금모으기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가까스로 체면을 세웠다. 터키 국민의 섭섭함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때 보여준 열렬한 응원으로 상당부분 극복되긴 했지만, 전과(前過)는 흔적 없이 말소할 수 없다.


   미국, 일본, 중국 같은 강대국이 재해를 당했을 땐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의 정성이 남달랐다. 2005년 미국이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입었을 당시에는 한국 정부가 즉각 3000만 달러의 구호금과 100톤에 이르는 생필품을 제공했다. 2011년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당시 한국정부와 기업, 한류스타들이 지원한 구호금은 1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도 이에 못지않았다. 기업과 민간인의 구호성금 규모도 커졌다. 대감 집에 불났을 때는 득달같이 달려가 눈도장을 찍으면서도 서민 집에 화재가 발생했을 땐 본체만체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 슈퍼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필리핀 피해 상황 자료 사진>

 
   슈퍼 태풍 하이옌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 필리핀에 대한 지원을 놓고도 터키 지진 때와 흡사한 뒷말이 많다. 한국정부 차원에서는 당초 500만 달러의 구호금과 수송기 2대를 지원한 게 고작이었다. 미국, 일본, 영국이 대규모 구조 병력까지 파견하는 등 해외 각국의 움직임이 빠르면서도 커지자 한국 정부는 뒷북을 치기 시작했다. 공병대와 의료팀을 파병하는 한편, 앞으로 3년 동안 2000만 달러 규모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에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국회의원이 모국의 태풍 피해 돕기 결의안을 제출하자 누리꾼(네티즌)이 벌떼처럼 나서 비난하는 협량을 드러냈다. 한국 국회의원인지 필리핀 국회의원인지 모르겠다는 까칠한 반응까지 나왔다. 댓글은 단순한 악플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사실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도 없다. 인터넷 언론은 필리핀에서 공개된 성금감사 포스터에 태극기만 빠졌다는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그러자 필리핀 현지에선 ‘한국 네티즌들이 이자스민에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필리핀은 6·25 전쟁 때 7420명의 병력을 보내 피까지 흘린 나라다.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민자도 중국·베트남 다음으로 한국에 많이 온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한류 열풍’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한 게 필리핀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이 재해를 당하는 충격파와 못사는 나라가 재해를 입는 건 차원이 다르다. SBS 김성준 앵커의 트위터 글이 촌철살인으로 웅변한다. “한국계 미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결의안을 내면 우리 반응이 어떨까요? ‘미국인 됐으면 미국 일이나 신경쓰지’ 이럴까요?” 그렇잖아도 나라의 품격이 점점 떨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을 다소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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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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