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하나지만 나타날 땐 여러 얼굴을 지니곤 한다. 약간 화장하는 정도를 넘어 가면을 쓴 얼굴을 드러낼 때도 없지 않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 법화경은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로 가르친다. 같은 물을 두고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으로 보고, 인간은 그냥 물로 보며,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전설적인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라쇼몽’(羅生門)도 똑같은 사건을 4개의 다른 시선으로 ‘진실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1950년 흑백으로 처음 제작된 뒤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된 ‘라쇼몽’의 플롯은 단순하다.

 

   사무라이가 말을 타고 아내와 함께 녹음이 우거진 숲속을 지나간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이 사무라이 아내의 어여쁜 얼굴을 슬쩍 훔쳐보고선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산적은 속임수를 써서 사무라이를 포박하고,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한다. 한참 뒤 나무꾼이 사무라이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관청에 신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적은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사무라이의 아내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이어진다.


 

   겉보기에 명백한 듯한 이 사건은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진실의 다양한 거짓 얼굴을 보여준다. 산적은 자신이 속임수를 써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한 건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무라이 아내의 진술은 이와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뒤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남편의 눈초리 때문에 혼이 빠진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다. 무당의 힘을 빌려 강신한, 죽은 사무라이는 또 다르게 진술한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한 반면, 산적이 외려 자신을 옹호해줬다고 말한다. 사무라이는 산적이 자기를 죽인 게 아니라 자결했다고 고백한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 때, 우연히 숨어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이 나선다. 나무꾼은 사무라이 아내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시켜놓고 도망쳤으며, 남은 두 남자는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고 증언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준다. ‘관점에 따라 사건은 달라진다.’ ‘증언은 믿기 어렵다.’ 영화는 사람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한다고 꼬집는다. 최종 진술자인 나무꾼의 얘기도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관련 댓글사건도 1년이 다 돼 가지만, 하나의 진실을 놓고 진흙탕 싸움이 멈출 줄 모른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댓글에 이어 5만여 건의 트위트 증거, 국방부 직할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증거까지 명백한 진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당사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은 접점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인 국정원은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친북견제활동이라고 견강부회하기도 한다. 국정원장이 수사 받는 직원들에게 진술 거부를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여권은 ‘고작 댓글 수십 개의 글이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며 조직적 대선 개입을 부정한다. 그러면서 ‘대선불복 아니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뒤집어씌우려 한다.


   피해자인 야당도 선거법 위반에는 같은 시각이지만, 대선불복 뉘앙스에선 온도차가 나타난다.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는 양비론으로 중립을 표방하는 측도 없지 않다. 수사를 맡은 검찰 안에서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보는 측과,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며 정권에 영합하는 측이 혼란스럽게 엉켜 있다. 진실을 가려 국민에게 알려야할 의무를 지닌 언론마저 ‘분열된 진실’을 보여준다. 언론의 객관성 상실은 진실 없는 세상을 부추긴다. 권력과 정치권은 세분화된 언론을 능숙하게 다뤄 효과적으로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며, 날조해 퍼뜨릴 수 있다는 걸 안다.


   미국 언론인이자 작가인 파하드 만주는 ‘이기적 진실’이란 저서에서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보여준다. 보수주의자들이 새로운 것을 선택할 때 편향성이 더 심하다는 점이다. 특히 좌파보다 우파에서 당파적 편향과 이념적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좌파 지지자들이 객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우파의 폐쇄성이 훨씬 강하다는 얘기다. 심리학자 아론 로윈, 사회심리학자 쉬나 아이옌거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한국의 보수진영은 이와 반대 주장을 펼친다. 더 큰 문제는 분열된 진실이 사회적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신뢰가 사회적 자본의 핵심요소라는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말을 더 귀담아 들어야할 쪽은 현 집권층과 보수진영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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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