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8-14 17:55:10수정 : 2009-08-14 17:55:12

일본의 가장 큰 콤플렉스 가운데 하나가 집이라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가 ‘토끼집’이란 말로 일본인의 삶의 질을 은근히 깎아내렸을 정도다. ‘부유한 국가, 가난한 국민’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생긴 데도 비싼 가격에 비해 좁아터진 일본인의 집이 적잖게 기여했다. 일본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의 하나가 ‘평생 구경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한국 아파트’라는 얘기도 있다. 1980년대 말 일본이 미국 마천루와 거대회사들을 거침없이 사들일 때도 미국인들은 잔디 정원이 딸린 넓은 집을 갖춘 자신들의 삶의 질을 내세우며 자위했다.

집에 관한 한 미국인들은 어떤 선진국 국민보다 자부심이 크고 집착도 강렬했다. 2006년 미국주택건설업자협회 통계를 보면 미국인의 평균 집 넓이는 2469제곱피트(약 70평)였다. 1970년의 1500제곱피트(약 45평)에 비해 몰라보게 넓어졌다. 욕실이 세 개씩이나 딸린 집은 1970년에만 해도 거의 없었지만 2006년에는 2만6000채나 됐다.

뉴스위크지의 대니얼 매긴 기자는 지난해 <집에 대한 갈망:미국의 집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최근 10년간 어디를 가도 미국인은 집 이야기를 하며, 다른 집을 물색하고, 이웃의 집을 질투하고, 대출기관을 바꾸고, 집을 살 사람을 감언이설로 꼬드겼던 그런 시대였다.” 미국인들의 집에 대한 갈망은 1600년대 후반 가난한 유럽인들이 몰려들던 당시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집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를 가져오고 급기야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까지 불러왔다. 아메리칸 드림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정신적인 혼란도 이만저만 아니다. 1994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 전년 대비 신규주택 넓이가 줄어들었다는 미국 인구통계국 발표가 며칠 전 전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1년 이상 팔리지 않던 뉴욕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를 매입하자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됐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그가 8월이나 9월쯤 경기 침체가 끝날지 모른다고 최근 언급한 바 있어서다. 한 경제학자의 아파트 구입이 이처럼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것은 지구촌 전체가 경기회복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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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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