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7-31 18:19:20수정 : 2009-07-31 18:19:21

만리장성, 트로이 방벽과 더불어 고대세계 3대 방벽으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로마 제국이 남긴 가장 유명한 기념물 가운데 하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영국 북쪽 ‘야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130㎞ 길이로 쌓은 이 방벽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경이로운 보물이다. 인공물인 이 방벽과는 달리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놓았다는 모세의 기적은 ‘모세의 방벽’이란 말도 낳았다. 밀·썰물로 인해 생긴 현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바다 바닥으로 길을 내기 위해 하나님이 양쪽에 방벽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한 뒤 애굽 군대가 건너려 할 때는 없앴다는 걸 연상해 붙인 이름이다.

21세기 들어 또 다른 ‘모세의 방벽’이 베네치아에서 홍수를 막기 위해 인간의 힘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모세의 방벽’은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이 베네치아 석호(潟湖)로 드나드는 관문을 거대한 금속제 방벽 78개를 이어 붙여 막는 착상에서 나왔다. 지난해 말 22년 만의 대홍수로 도시 전체가 침수되자 베네치아에서는 ‘모세의 방벽’ 건설을 앞당기자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 방벽은 평소엔 해저에 가라앉혔다가 거대한 밀물이 올 때만 내부의 빈 공간에 공기를 넣어 부력으로 세우는 방식이다. 이 방벽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2003년부터 추진해 2011년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발 때문에 2014년으로 늦춰졌다. 반대론자들은 “자연의 힘을 거슬러서는 안 되며 방벽이 바닷물의 순환을 방해해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논박한다.

엊그제 경찰이 선보인 ‘시위방벽 트럭’은 베네치아에서 건설 중인 ‘모세의 방벽’을 연상케 한다. 평소에는 접힌 상태로 있어 보통 트럭처럼 보이지만 차벽을 설치할 때만 유압장치를 통해 넓게 펼치는 원리가 ‘모세의 방벽’과 흡사하다. 경찰버스가 시위대의 화염병으로 인해 불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반대로 국민과 불통하겠다는 상징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촛불시위 때 컨테이너 방벽을 쌓아 ‘명박산성’이란 세계적 오명을 남긴 게 우리 경찰이다. 생각은 기발할지 몰라도 “방벽이 이명박식 소통법이냐”는 얘기를 들어도 할말은 별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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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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