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사람이 편하면 듣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가왕(歌王)’ 조용필(76)의 노래철학은 완벽주의 장인정신을 표상한다. 현역에서 은퇴해도 괜찮을 나이인 그가 평생 지켜온 이 철학은 창작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이에게 폐부를 찌르는 감명을 안긴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듣는 이에게 완벽을 선물하겠다는 태도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창작자가 고통스럽고 치열하게 고민할수록 결과물을 받는 대중이 가장 편안하고 무결한 감흥을 느낀다는 생각을 한순간도 떨쳐버린 적이 없다.
그가 이 철학을 어떻게 실천해 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를 들으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조용필은 한곡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을 다시 녹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앨범 발매 직전에도 마스터 테이프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곤 했다. 창작자가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편안함과 타협하는 순간 미세한 빈틈은 고스란히 청중의 불편함과 아쉬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성공공식에 안주하는 게 편한 길임에도 조용필은 늘 젊은 세대의 음악을 연구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변화시킨다. ‘바운스(Bounce)’나 ‘헬로(Hello)’ 같은 젊은 세대 취향 곡이 그렇게 완성됐다.
그는 혼자 만들기 쉬운 기술적 환경에서도 동료들과 합주하며 음악을 완성하고 선율과 리듬에 따라 곡의 무게를 달리했다. 그는 곡마다 듣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 음악을 찾아주는 대중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엄격한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이 드러난다.

이에 비하면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법을 너무 편하게 일방적으로 만든다. 법은 시민의 기본권 보호와 사회 질서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다. 국민의 사소한 일상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정을 책임지는 거대 여당의원들은 이처럼 중요한 법을 큰 고민 없이 자기들 생각대로만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상징적인 사례다. 70여년 만에 검찰청이 폐지되는 형사사법체계의 격변으로 국민적 우려가 먹구름 같은 상태다.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는 다수 국민이 반대했다. 여당이 단독으로 열어 요식 행위에 불과한 공청회가 있었으나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범죄자에 유리하고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경찰 수사역량 부족과 경찰 불신감이 잔뜩 서렸다. 제주 경찰의 장미란 실종사건 허위종결의 후폭풍이 이를 방증한다. 앞으로 경찰 수사의 허점이 나올 때마다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관한 책임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허위조작 정보 근절과 과징금제도를 포함한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표현의 자유 위축과 언론 탄압 걱정이 크다. 법 왜곡죄를 담은 개정 형법, 재판소원제를 신설한 헌법재판소법 같은 법은 민생과 관련성이 부족하고 자신들을 포함해 권력자들의 기득권 보호가 숨은 목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심사 기간 단축을 뼈대로 한 국회법 개정안은 염려를 더한다. 국회는 최근 신속처리안건 심사 기간을 최장 330일에서 90일로 대폭 줄였다.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는지, 긴급성과 불가피성이 인정될 만큼 급박한 사안이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 같다.
그동안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본회의를 통과한 4건 가운데 3건(75%)은 모두 수정 의결된 것으로 밝혀졌다. 입법 속도와 품질을 함께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토론과 공청회, 전문가 의견 청취, 법률 검토가 형식적으로 흐르면 기간 단축이 품질 저하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법안을 너무 쉽게, 많이 발의한다. 국회가 마치 입법공장처럼 변해 무분별한 법안이 남발되는 현상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평가할 때 법안 발의건수가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하나의 법안으로 묶을 수 있는 내용을 여러개로 잘게 쪼개 발의한다. 이전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을 그대로 다시 가져오거나 문구 몇개만 바꾸는 단순 조문 추가 형태로 건수를 늘린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 국회는 법안을 내놓기 전 거쳐야 하는 검증절차도 아주 느슨하다. 정부가 법안을 만들 때는 규제개혁위원회가 경제나 사회에 미칠 부작용을 꼼꼼히 따진다. 의원 발의 법안은 입법 영향 분석이 의무가 아니어서 엉성한 규제 법안이 손쉽게 쏟아진다.
법 몇개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완성도 높은 법을 만들었는가, 불필요한 규제 법을 얼마나 줄였는가 같은 걸로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법은 한번 만들어지면 국민의 권리와 의무, 기업의 경영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조문 하나가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지까지 섬세하게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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