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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하는 외교 격랑

 취임 첫날부터 외교전선 기류는 상쾌하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은 한국 대선 결과에 관해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다”면서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논평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라기엔 뜨악하다. 몇 시간 뒤 중국이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불간섭원칙을 견지해왔다”면서 “(미국이) 중한 관계를 이간질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나라 대선 결과를 두고 벌인 이례적인 신경전이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국익 위주의 실용외교를 선언하자마자 마주친 상징적인 일은 앞날을 보는 듯하다. 지구촌의 두 코끼리, 미국과 중국 모두와 잘 지내야 하는 한국의 처지를 보면 스리랑카 속담이 떠오른다. ‘코끼리가 싸움을 해도 잔디밭은 망가지고, 코끼리가 사랑을 해도 잔디밭은 망가진다.’


 트럼프행정부는 이미 동맹국들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정책에 경고장을 보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악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국방 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트럼프 대통령 구호)’를 뒷받침하는 강경 보수진영에선 이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사흘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통화한 것에도 뒷얘기가 따랐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당선하면 미국 대통령과 하루 이틀 만에 통화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게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이 대통령을 향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보수진영의 해석이 나온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빡빡한 외교 일정으로 말미암아 통화가 늦어졌다는 관측이 더 설득력 있긴 하다.


 이제 미국과 관세 협상 시한인 7월 8일까지 ‘윈윈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이 대통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없다. 관세협상은 침체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미국은 지난 3월 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에 25%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 대통령 취임일인 4일부터 관세율을 50%로 인상했다. 석 달 만에 두 배로 높아진 관세율은 한국 수출업체에 치명타를 안겼다. 가장 중요한 한미 관계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인 상호관세 25%가 됐다.


 막 닻을 올린 이재명정부에겐 협상팀 인선과 전략수립에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내달 8일에 끝나는 상호관세 유예기간을 연장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뒤 협상에 나서면 좋겠다. 하지만 협상 속도를 내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유예 연장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오는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올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트럼프) 다리 밑이라도 길 수 있다”고 국익 최우선의 정신을 내보였다. 초한쟁패 시기 한신(韓信)이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겁쟁이라는 굴욕을 참고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과하지욕(袴下之辱)’ 중국고사까지 동원한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은 관세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포괄적이고 큰 규모의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미국과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감축,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역할 확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뤄야 하는 과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우리의 주권을 본질적으로 시험하는 무대까지 펼쳐지는 셈이다.


 중국과는 사드보복으로 10년째 지속하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을 없애는 일이 큰 숙제다. 이는 한중 관계가 완전한 정상화에 들어가느냐를 재는 척도다. 시진핑 주석은 오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차원의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필요하다.


 이 대통령에게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안보실장 외교부장관 산업자원부장관 통상본부장 같은 정책 책임자들의 머리로만 타개하려 하지 말고, 조야(朝野)의 집단지성으로 슬기로운 방책을 찾아내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