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를 제대로 마감하려면 필수불가결한 일의 하나가 김건희 여사 수사다. ‘검찰공화국’이었지만 ‘검사 위에 여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김 여사의 권력은 더할 나위 없이 셌다. 대통령 윤석열조차 김 여사에게 꼼짝 못할 정도였다는 정황이 한둘이 아니다. ‘김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했다. ‘김건희 대통령, 윤석열 영부남’이라는 조롱도 나왔다. 살아있는 권력에 유독 약했던 검찰이 온갖 의혹이 난무했던 김건희 관련 수사를 제대로 할 리 없었다.
수많은 사건 가운데 기소한 게 단 하나도 없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대통령실과 관저 리모델링 공사 수의계약,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시도, 2022년 지방선거와 22대 총선 개입, 20대 대선 불법여론조사 등 선거 개입,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인사 개입 등등. 굵직한 사건만도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운데 말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자 서울고검은 지난 주말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여섯달 전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걸 뒤집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정황은 명백하다. 대법원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 9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3일 확정했다. 김 여사와 비슷한 시세 조종에 계좌가 동원된 ‘전주’ 손모씨도 방조혐의가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받았다.
‘2차 주포’ 김모씨가 공범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건희 여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처벌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주가조작에서 김 여사 증권계좌 6개가 이용됐으며 김 여사와 어머니 최은순씨가 23억원가량의 이득을 취했음이 드러났다. 검찰의 칼은 김 여사 앞에서만 무디어졌다. 헌법재판소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탄핵사건에서 김 여사를 상대로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서울고검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면서 명품백 사건의 항고를 기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8월 김 여사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릴 때 여러 범죄 혐의 중 가장 봐주기 쉬운 청탁금지법을 적용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알선수재나 변호사법 위반,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 김 여사에게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사건은 더욱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 공소시효가 임박했다. 김 여사는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인 공직선거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된 피의자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202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대가로 윤석열 부부가 같은 해 6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동기가 김 여사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명태균은 지난 10월 “내가 구속되면 한달 안에 정권 무너진다”라고 엄포를 놨다. 실제로 얼마 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가 정권의 말로에 접어들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 여사의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등에서도 로비 의혹이 등장한다. 공수처는 이 사건 당시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김 여사를 수사해야 한다.
대통령 관저를 옮길 때 김 여사가 대표로 있었던 코바나컨텐츠의 행사 후원사로 참여했던 21그램이란 업체가 관저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종합건축업 면허가 필요했는데 자격이 안됐다. 준공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국가 예산이 투입된 관저 공사의 업체 선정, 수의계약 등에 관여했다면 국정농단 행위가 될 수 있다.
김 여사 관련 의혹들은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었다. 김 여사의 조속한 소환조사가 필요하다.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구 여권의 견제구를 의식할 필요없다. 정치보복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대선 전 실질적인 수사 마무리가 중요하다.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그렇다. 물론 새 정부 출범 후 김건희 특검으로 진상이 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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