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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소명있는 직업정치인’ 보고싶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에게도 어렵기 그지없는 물리학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나 보다.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는 아인슈타인에게 적성이 맞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가 실토했듯이 아무나 쉬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 통일의 첫 위업을 달성한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정치는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웬만한 각오가 없으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라고 애교서린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겪어본 이들은 국회의원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한결같이 고백하는 걸 보면 마약성분이 들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을 대하듯 조심하라는 정치에 셀 수 없이 많은 부나방들이 뛰어들고 진흙탕을 뒹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 좋다는 정치가 어려운 것은 권력 나눠먹기가 쉽지 않은 탓이 크다. 저명한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은 정치를 조금 속되게 표현하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 먹느냐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는 권력을 가치 분배과정에의 참여로, 가치를 욕망의 목표라고 정의한다. 정치에서 권력 쟁취뿐만 아니라 가치의 권위 있는 배분이 요긴함을 역설한 것이다.

특히 독일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나남신서)’에서 ‘정치란 정치적 조직체 내에서의 권력 배분이나 여러 정치적 조직체들 간의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최근 주요 정당의 총선 후보 공천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도 권력 분배문제로 귀결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기술을 현대 정치라고 한다면 권력 나누기 정치의 미숙과 과욕이 낳은 결과다. 베버는 이런 경우 ‘출구’를 마련하지 않은 강경책은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 책은 고전이어서 많은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 권력자들과 정치 지망생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잠언 같은 존재다.

베버가 이 책에서 직업 정치인의 자질을 열정·책임감·통찰력이라고 요약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사실 이 세 가지 자질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도 간단치 않은 숙제다. 열정과 책임감이 때론 이율배반적일 수 있어서다. 베버는 정치 지도자가 최대한 돋보이려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현실감각 상실과 책임 포기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계고(戒告)한다. 정치지도자에게 열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간추리면 정치 지도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열정과 책임감의 균형 잡힌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는 또 직업 정치인은 무엇보다 윤리의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베버는 정치가들을 임시 정치가, 부업 정치가, 본업 정치가로 나누면서 진정한 직업 정치인의 출현을 강조한다. 직업 정치인을 ‘정치를 위해’ 살거나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론 이 둘이 상호배타적인 건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위해’ 사는 동시에 ‘정치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적극 고려하다가 “난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동의어다. 베버는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확신이 있는 사람,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의 소명을 지니고 있다’고 마무리한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과 여야 공천자들의 면면을 보면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