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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빼앗긴 티베트에 봄은 오는가

입력 : 2008-03-21 17:33:26수정 : 2008-03-21 17:34:17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는 1959년 노르불링카 궁을 버리고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길에 오르며 처절한 한마디를 토해냈다. “그릇은 깨질지 몰라도 거기에 담긴 정신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민중 봉기가 실패로 끝난 뒤 인도의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세워진 지 내년이면 어느덧 반세기를 맞는다. 티베트인들에게 조국 독립운동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절규한 시인 이상화의 애원처럼 너무나 절절한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끔찍한 유혈 사태까지 불러온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처음엔 자유를 갈구하는 외침이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기화로 짓밟힌 비탄의 땅을 되찾아보려는 몸부림으로 상승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병상련의 슬픈 역사를 지닌 우리는 그동안 티베트인들의 애환을 더불어 느끼기보다 은연중에 그들이 ‘우주의 중심이자 지구의 배꼽’으로 칭송하는 카일라스(수미산)의 신비와 풍광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지 않았을까.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운동보다 그의 명상법이나 법문에 더 귀 기울이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이나 ‘마음공부’에 더욱 끌리지 않았을까. 인기 작가 박범신의 티베트 여행기를 담은 명상 에세이 ‘카일라스 가는 길’에 손길이 먼저 가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박범신이 미국의 권위 있는 티베트 학자 로버트 셔먼의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에 매료돼 그곳을 순례했듯이.

2006년 티베트로 가는 ‘하늘 길’ 칭짱철도가 개통되었을 때도 우리의 관심은 호기심과 문명의 이기에 더 쏠려 있었다. 칭짱철도의 개통이 ‘티베트에 대한 2차 침략’이라고 규탄하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목소리는 듣는둥 마는둥 기억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아무래도 좋다. 그렇더라도 티베트의 어제와 오늘을 조금만 더 생생하게 알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지 않을까 싶다.

독립을 애절하게 염원하며 27년 동안이나 중국의 감옥생활을 견뎌낸 티베트 여성 아마 아데는 용감한 투쟁의 기록인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궁리)에서 자신들의 구슬픈 역사를 피를 토하듯 증언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믿고 있다. 우리는 강한 바람에 쓰러져 사라져버릴 들풀과 다르다. 우리는 대지와 같다. 티베트인들은 다시 고유의 독립국가로 거듭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결국엔 무의미한 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지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에….”

아마 아데의 증언은 티베트 역사의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1949년 중국 공산군이 티베트를 침공한 이후 무려 120만명의 티베트인이 숨지고 6000여 사원이 파괴된 고난의 역사가 꿈틀거리듯 재현된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아마 아데를 미국인이 인터뷰해서 펴낸 것이니 ‘입으로 쓴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티베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삶이 한층 더 비극적으로 과장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증언에 대한 믿음은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아마 아데는 1985년 석방된 뒤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티베트에 관한 최초의 국제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수많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중국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에만 매달려 있다. 벌써 일흔여섯의 할머니가 된 아마 아데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티베트의 자주 독립을 기원하고, 저녁에도 간절한 기도를 드린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티베트인들의 상당수가 최소한 1년에 한번씩은 다람살라 망명정부를 찾는 것도 자주 독립에 너무나 목마르기 때문이리라.

‘지구상의 마지막 이상향 샹그릴라’로 불리는 티베트. 그들에게 이상향은 어디로 가고 슬픈 역사만 이토록 오래, 슬프게만 흐르는지 아마 아데의 목소리를 접하면 한결 애달프게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