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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한국의 모든 것은 K로 통한다?

 한국 문화콘텐츠를 상징하는 ‘한류’가 그예 정점을 찍은 걸까? K팝 성장둔화와 위기론을 운위하던 최고 기획사의 내분이 불길함을 암시하는 걸까? 노파심까지 발동한다.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을 거느리고 있는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와 걸그룹 뉴진스가 소속된 자회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충돌을 주시하는 이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잖아도 한류의 최전선에 있는 K팝이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느냐는 우려의 눈길이 적지 않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K팝을 포함한 한국문화콘텐츠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1년 77.7%로 정점에 다다른 뒤 2022년 72.5%, 2023년 68.8%로 2년 연속 인기가 줄어드는 추세다. 음악에 한정해도 2021년 73.7%에서 2023년 64.1%로 낮아졌다. 11개 분야 가운데 2021년보다 2023년에 호감도가 높아진 콘텐츠는 하나도 없다. 조사 분야는 K팝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예능 웹툰 패션 음식 뷰티 게임 출판물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전히 K팝(17.2%)이다. K팝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미국 음악잡지 빌보드의 조현진 한국특파원이 한국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인 ‘K-리그’에서 영감을 받은 이 용어를 처음 쓴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한류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2003년 일본에서 성황리에 방영되면서 시작됐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지난해 ‘한류 2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일본에서 열린 것도 그 때문이다. K-드라마의 중독성이 멜로드라마 역사물 판타지 공상과학 액션 로맨스코미디에서 서스펜스에 이르기까지 독특하고 예상치 못한 줄거리를 가족의 이야기로 친근하게 풀어내는 한국형 서사의 힘에서 온다는 데 세계인들은 주목한다.

                                                                                     

 이제 ‘한류’라는 말보다 ‘K-OO’이라는 용어가 더 흔하다. K-드라마 K-푸드 K-뷰티 K-웹툰 K-패션 하는 식이다. 2년 전쯤 영국 정론지 가디언은 ‘모든 게 K로 통한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음악은 물론 영화, 드라마, 음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K로 통한다며 전세계가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류 열풍을 자세히 조명했다.


 이처럼 한류가 지닌 힘은 몰라보게 커졌다. 영국의 국가브랜드 컨설팅 사이먼 안홀트가 부문별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2024년 ‘좋은 국가지수(Good Country Index)’에서 한국은 세계 문화 영향력 부문 6위를 차지했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전성기를 누리자 이제 아무 데나 K를 붙인 조어 열풍이 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K-푸드의 수출 급증에 신바람이 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뜬 이후 미국시장 수출에 급증세를 보인 대표적인 품목은 라면 김치 쌀가공식품이다.


 한국 방위산업체의 무기가 잘 팔리자 ‘K-방산’ ‘K-무기’란 말이 유행한다. 요란한 K-방산 홍보 탓에 외려 유럽 국가, 일본 같은 기존 방산 강국의 견제를 받게 됐다. 달 궤도선 ‘다누리’를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발사하는 데 성공한 이후 ‘K-우주산업시대’를 외치는 항공우주산업계와 연구기관이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한편에선 안랩 같은 보안기업들이 국제행사에서 ‘K-보안’의 우수성을 뽐내고, 로봇산업체는 ‘만능 K로봇’을 자랑한다. 한지(韓紙)의 본향임을 내세우는 전주시는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K 한지마을’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축구지도자들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자, 언론은 ‘K-감독 전성시대’라고 추어올린다. 박항서(베트남), 신태용(인도네시아), 김판곤(말레이시아) 감독에 이어 최근 김상식 전 전북 현대 감독이 베트남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발탁돼 가히 한국 축구 감독시대를 연 것은 분명하다.


 칠곡 할매힙합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일본 NHK 방송을 타고 전세계 140개국 안방 시청자 앞에서 랩을 선보이자 ‘K-할매’가 흥·끼를 대방출했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 ‘6억 아세안 사로잡은 K-빵의 비결’ ‘K-농업외교’ ‘몸 10개로도 부족한 K-직장인’ 같은 데도 K가 등장한다. 심지어 ‘K-정치’라는 말은 한국의 나쁜정치 행태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K-OO’은 대부분 한국의 자긍심을 넘어 ‘국뽕 증후군’이나 감성팔이로 이용되는 사례가 잦다. 한국처럼 특정 낱말에 무조건 자기 나라 머리글자(이니셜)를 붙여 자랑스럽게 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신문 가디언은 한국이 문화도 수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았고, 병적일 정도로 수출에 매달리는 나라라고 약간의 삐딱 시선을 보낸다.


 K를 모든 단어 앞에 붙이면 의미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획일화된 이미지를 전파할 수 있다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지적한다. 너도나도 K를 접두어로 붙여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